[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지랄 좀 하게 해주세요. 너무 갑갑합니다.”

-「이 식물원을 위하여ㆍ4」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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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록 시인은 1973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달팽이」가 당선되고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두 개의 방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인은「달팽이」에서 “자기 시대에서 벗어나 오직 떡갈나무의/ 그 울울한 숲속에 묻혀/ 달팽이는 지낸다 한때를/ 이 얼마나 고적한 일인가./ 언제나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연약한 두 개의 뿔로/ 나무와 나무의 줄기와 잎들을 더듬으면서/ 맹인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고 썼다. 달팽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이면서 암중모색하는 시인의 은유이기도 하다.

「두 개의 방법」과「폭우기」에 “강건체”라는 표현도 있는 것처럼 시인의 시는 호방하고 직설적인데, 그의 시가 강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드러지는 단문과 명사의 활용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떨어지는 뉴스./ 침략하는 동남아에 관해서,/ 경제에 관해서,/ 뜨거운 문제점이, 나를 톱질한다./ 잘라내고, 못을 박고, 덜그럭거리는 식사./ 아내와 나의 건강./ 소리치는 자유./ 현관을 나와 머리를 긁적이고,/ 구두끈을 고치고, 바짓가랑이를 턴다.” (「겨울 화전민」) “비전도 없고, 사상도 없는 무정부주의, 문명과 비판에서/ 떨어져 살아온 역사 밖의 역사, 지리 밖의 지리,/ 이곳에서는 문법의 쉼표 마침표들, 또 말의 기침들까지도 얼어붙는다.”(「남극탐험」) “나는 깜깜한 노동의 뜰에 앉아/ 서걱이면서, 가장 깊은 밤의 내장을 잘라내고,/ 쓸쓸한 해방,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아내의 민주/ 그 젊은 의견과 튼튼한 발언을 본다.”(「심심한 사과」)

명사와 단문이 그의 시를 강건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의 시를 강건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시적 태도거나 시작 방법론이다. 일찍이 그는 등단작인「두 개의 방법」에서 “나의 눈은 투창을 한다.”, “나의 귀는 투망을 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눈과 귀는 어느 곳에든 날카로운 관찰의 창날을 던지고 현실을 낚아채는 그물을 던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다음 “하나하나 분석하고, 검토”하면서, “다시 구성”하는 것이 자신의 시적 태도며 시작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시인은「폭우기」에서 자신의 시론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건방진 신문과 라디오는 어디 있는가/ 일기예보를 알려줄, 새로운 뉴스란 놈은 어디 있는가./ 우리에겐 지도도 필요없고, 측량도, 방위각에 따른/ 정확한 계산도 필요 없다./ 오직 경험의 증언, 떠오르는 연상의식에 따를 뿐이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파헤치며 캐어 내고/ 캐어 내서 삽과 곡갱이로 검토하는 일, 찍어내는 일./ 방한모를 올리고, 얼굴에 묻은 눈을 털면서/ 우리는 얼어붙은 문법의 말들을 뱉어낸다./ 카랑카랑한 동사와 부사, 주어진 주어, 꼬리 긴 토씨,/ 또 강건체의 일절, 그 쉼표와 마침표를 뱉어낸다.”

한 시대를 분석ㆍ검토하고 재구성하는 시인의 방법론은「이 식물성 시대에」를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식물원’ 연작에서 활짝 피어났다. 이 연작에서 시인은 1970년대 말의 시대 상황을 식물원으로, 또 그 시대의 사람들을 식물로 표상했다. “누가 만든 식물원인지 식물원이 하나 동두렷이 공중에 떠있다. […]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이 잠든 거리를 식물들이 거닐고, 식물들 중의 어떤 놈은 자기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이 식물원을 위하여ㆍ서」) 온통 아맹(‘벙어리’, ‘장님’)뿐인 식물원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서로 합창합시다. 구화로/ 꽃을 피웁시다. 구화로”(「이 식물원을 위하여ㆍ5」) 정상적인 언로가 막히고 억압받는 시대는 구화(口話)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1977년 봄, 29살의 나이로 작고한 시인이 작품 활동을 한 것은 불과 4년 정도다. 그가 백혈병으로 별세한 뒤 첫 번째 유고시집 『이 식물원을 위하여』(흐름사, 1979)가 출간됐고, 이후 7편을 더한 『그대 나를 위해 쉼표가 되어다오』(고려원, 1992)가 나왔다. 두 권의 시집이 절판되고 난 한참 뒤에 미발표작 16편을 추가한 『나는 너와 결혼하겠다』(새미, 2007)가 ‘요절시인 시전집 시리즈 4’라는 요망스러운 이름과 연번을 달고 다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