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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이 연일 졸전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컵 4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4강전에서의 졸전과 팀 주전 선수들의 불화, 사후 경기를 평가하자던 감독의 느닷없는 귀가와 재택근무, 축구협회장의 무책임한 잠행, 감독의 경질로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일 없는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선발되고, 최선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행정, 재정적 지원이 뒤따른다. 그래서 모름지기 국가대표는 실력이면 실력, 인성이면 인성 모든 것을 갖춰야만 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실력은 출중하나 국가를 대표하는 자로서의 태도가 불량하여 퇴출되는 선수들도 부지기수였다.
사실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에서 실력만 좋으면 되지, 인성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만큼 누군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에서 국민의 일원인 나 자신을 대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납득이 될 만한 자질, 이른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자격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눈을 돌려 정치권으로 가보자. 대의민주주의의 대표를 뽑는 총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에 앞서 각 당은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경쟁할 후보의 자격을 운운하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은 정당이라는 편을 나눠 경쟁 준비를 하는 터라 상대 후보보다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기 위해 각 당이 요구하는 대표선수의 기준도 달리 정한다.
총선이 여러 정당 대표 간의 경쟁이라 각기 특색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바로 ‘대표’의 자격에 관한 것이다. 우선 각 당의 구분을 차치하고, 대표가 될 자격 요건을 무작위로 나열해보면, 성범죄, 몰래카메라(불법촬영), 스토킹, 아동학대, 아동폭력, 강력범죄, 마약범죄, 뇌물범죄, 재산범죄, 선거범죄, 도주차량 음주운전,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 뇌물 범죄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 경선 금품 살포, 직장 내 갑질, 학교폭력, 증오발언, 알선수재 등 부정행위는 안 된다. 입시·채용·국적·병역 비리는 본인은 물론 가족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며, 금고 이상 확정 시 세비반납도 안 하면 안 된다.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유력 정치인 또는 공직자와 친밀하면 좀 봐주는 것 같기도 하도, 뇌물은 경우에 따라 받아도 무방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당의 대표선수가 되지 못할 분위기가 감지되면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탈당하면 이런 기준조차도 무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민의를 대표할 공복을 뽑으면서 과연 ‘하지 마라’는 것만 안한 자들에게서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을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한 이력이나, 민생, 경제, 정치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온 이력 따윈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자격 미달자를 추려내는데 온갖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정치의 본질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선수와 정치인 모두 국민을 대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맡기는 신뢰받는 존재들이어야만 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 어떤 행위 따위를 “하지 않은”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 존재는 우리의 이상향에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정치와 축구를 불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대표’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존경받는 국가대표 선수와 정치인 모두, 국민들을 대표할 만한 일들을 꾸준히 해왔기에 그것으로 평가받고, 국민들을 대표할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런 대표의 자격이 더욱 강조되는 오늘이기를 바란다.
김현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