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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음력 날짜를 세는 버릇 탓에 갑진년은 한 달쯤 남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양력으로 새해를 맞는 현대 사회를 보면 나의 가벼운 버릇쯤을 무시해도 좋을 듯하다. 모두 갑진년 청룡의 기운을 따라 하는 일이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희망을 상징화한 한 해의 수호 동물에 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이곳저곳에서 받는 2024년의 달력이 아직까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흰 스케치북 같은 이유이다.
263년(음력 기준인 탓에 아직 2023년으로 계산) 전인 1760년 음력 11월 29일 하양현(현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일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경철은 서울에 다녀온 군포 색리가 잘 돌아와서 무척이나 반가운 기록을 남겼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세금을 통해 군역을 지던 사람들로부터 거둔 군포를 조정에 납부하기 위해 서울까지 다녀온 아전의 고생을 말로 다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 그가 돌아오는 길에 1761년 신사년(辛巳年) 책력까지 받아왔으니 그 반가움은 배가 된 듯했다.
책력을 우리말로 옮기면 달력이다. 조선시대는 당연히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 달력이 아니라, 음력을 기준으로 매월 단위의 달력을 만들었다. 당시 천문관측을 담당했던 관상감에서 1년 달력을 만들어서 조정에 올리면, 조정은 동지에 맞추어 모든 관료들에게 이를 나누어 주는 게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 달력은 각 관아의 서리들도 받아 갈 수 있었고, 필요하면 몇 부씩 받아 가서 친지들에게 동지 선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 전기 1만 부 정도 발행되었던 책력이 조선 후기가 되면 30만 부 이상 발행되었던 이유이다.
책력의 기능 역시 지금 달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 사람들과 현대인들 사이에는 달력을 통해 얻어야 하는 정보가 조금씩 달랐다. 당연히 조선시대 책력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한 해의 날짜를 세면서 함께 고려해야 하는 중요 정보들이 들어 있다. 농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정보 가운데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절기였다.
절기는 우리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24절기의 줄임말이다. 첫 절기인 입춘(立春, 봄의 시작)부터 마지막 24번째 절기인 대한(大寒, 큰 추위)까지 1년을 24개의 절기로 나누고, 거기에 ‘날씨’나 ‘기상’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들을 붙였다. 입춘이니, 우수니 하는 이름들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달력은 음력으로, 달의 변화에 따라 날짜를 셌다. 그런데 달의 변화는 날씨나 기상, 기온의 변화를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즉 서리가 오고, 날씨가 추워지며, 다시 봄바람이 불고 개구리가 우는 것과 같은 절기 변화는 기상과 기온을 결정하는 해의 운행 주기에 따른다.
당연히 농사는 기상이나 기온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음력 달력만 가지고는 씨 뿌릴 시기부터 수확해야 하는 적정 시기를 파악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해의 주기에 따라 1년을 24개의 절기로 나눈 것을 음력 날짜 위에 표기해 주어야 했다. 달의 운행이 만드는 날짜 위에 해의 운행 주기에 따라 기후의 변화를 알 수 표기해 줌으로써, 적절한 농사 시기를 정하고 날씨의 변화에 따른 대응도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보고 세금을 거둘 날짜를 정하고, 군사를 훈련 시기나 심지어 범죄자들을 사형할 수 있는 때를 정하기도 했다.
날짜의 진행에 따른 날씨 변화와 더불어, 책력에는 일상생활에서 좋은 날과 가려야 할 날도 표기했다. 당시 관점에서 길한 날과 가려야 할 날을 표시함으로써, 길흉화복에 따른 관습에 따라 생활을 계획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나 결혼처럼 택일이 필요한 경우 책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기능은 책력을 받은 관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그들은 절기와 국기일(선대 왕이나 왕비의 기일), 그리고 휴무일 등을 살펴 가능한 연휴 날짜를 파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새 달력을 받은 직장인들은 가장 먼저 연휴가 가능한 날을 세어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선물과 관련해서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름 선물로는 부채가, 그리고 겨울 선물로는 책력이 가장 좋다는 말로, 연말 책력을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책력은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잇는 증표’이기도 했다. 동지가 되면 조선은 황제가 내리는 책력을 받기 위해 황제국인 명나라나 청나라에 ‘동지사’라는 사신을 파견했다. 하늘의 운행과 날짜를 관할하는 하늘의 아들(天子)이 곧 중국의 황제임을 인정하는 의식이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조선의 왕은 하늘을 살피는 관상감으로 하여금 우리 하늘에 기반한 책력을 만들고, 동지가 되면 새해 책력을 전국에 배부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워낙 달력이 흔한 시기인 데다, 경제나 일상생활에 절기가 미치는 영향이 적은 시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달력의 중요성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사람들은 달력을 펴 놓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며, 새해에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과 성취하고픈 희망들을 담는다. 사실 1년이라는 개념은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정한 것으로, 그러한 개념이 가장 잘 투영된 발명품이 달력이다. 그래서 사람은 달력을 통해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면서 새로운 성취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오늘 하루쯤 다시 2024년 달력을 펴서 한 해 계획을 좀 더 촘촘하게 짜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