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강자라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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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전환을 두고 ‘공정’ 논란이 일었다.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선 것은 사측이 아니었다. 정규직들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세대에서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거셌다. ‘을들의 전쟁’을 부추긴 것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이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기득권의 탓이 크다.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나쁜 일자리’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내가 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노조 혐오도 그런 맥락이다. 귀족노조, 강성노조, 노조 때문에 기업이 망했다니 같은 소리들이 무책임한 언론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는데, 소규모 사업장은 노조는커녕 노동법 사각지대인 상황에서 노조가 왜 악마가 됐을까. 노동기본권 조차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에 먼저 분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말이다.

지난해 뉴스민에서 시도했던 쇼츠에서 노조와 관련한 영상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씁쓸함을 남겼다. 날 것의 노조 혐오에 직면해서다. 노조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한 이들이 모두 회사 경영자였을 확률은 희박하다. 분명 대부분 노동자일텐데 왜 사장의 입장에 더 이입하며 노조를 악마화 했을까.

게다가 한국은 노동선진국이 아니고, 노조가 회사를 ‘먹은’ 적도 없다. 귀족노조라 욕하는 그 회사의 회장은 재벌 3세이고, 최대 주주들도 그의 일가가 상당수가 아닌가. 오히려 노조가 없거나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각종 통계와 경험에서 확인된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도 불합리한 노동여건에 대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다 결국 돌아서는 노동자를 여러 번 만났다.

기업은 국가가 만든 사회적 인프라를 활용하고, 여러 제도적 혜택과 함께 노동력을 통해 존재한다. 경영인의 온전하고 열정적인 희생과 자본, 의지 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모품으로 여겨진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위험한 일을 떠맡다가 다치거나 죽어나가는 일이 노동시장에서 직면한 문제들이다. 일하다 죽지 말자고 경영인들의 책임을 높인 법은 전면 적용을 앞두고 유예 여부를 다투고, 아직 그 역할이 증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는 강자도 아니고, 노동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해에는 슬프고 씁쓸한 노동 뉴스 대신 노동여건이 더 나아졌다던가, 노동권 개선이 빛을 발휘했다던가 하는 뉴스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던 어느 책 제목처럼 반민주적인 노동시장은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어야 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