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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 사회가 재난을 반복해서 겪는 동안 재난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점진적으로 나아진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우리 사회의 취약성이 발견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대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 조사 과정에서 사법적 관점만이 아닌 구조적 분석을 강화하고,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지원의 중요성도 인식해야 한다는 성찰이 나왔다.
7일 오후 4시, 경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재난의 사회, 사회적 재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서는 박상은 충북대 사회학과 박사의 ‘세월호와 재난의 사회학’, 유정 서경대 교수의 ‘대구지하철 참사와 4.16 참사-시민의 참여와 회복’, 최은경 경북대 교수의 ‘장애-렌즈를 통해 본 대구 지역의 환경 재난’ 발표가 진행됐다.
이들은 현대사회가 참사를 반복해서 겪을수록 피해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 등 다소 개선되는 점도 확인되지만, 참사의 조사, 피해자 회복,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재난인 ‘느린 재난’에 대한 연구와 쟁점화가 부족하다고 봤다.
전 세월호참사특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박상은
“특조위, 참사 구조적 원인 밝히는 데 소홀”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박상은 박사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참사를 만들어 냈다는 참사 초기의 사회적 인식이 관련 연구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박 전 조사관은 한국 최초로 단일 재난에 대한 조사를 위해 꾸려진 세월호특별조사위, 세월호선체조사위, 사회적참사위가 모두 실패로 끝났다며, 실패의 경험을 되짚었다.
박 전 조사관은 재난이 여러 사람의 결정적이지 않은 실수와 잘못이 모여 발생하는데도 사회적으로는 결정적인 책임자에게 큰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고 분석한다. 상층부에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법적 방식으로 죄를 입증해야 책임을 물은 것으로 인식되는 탓에, 세월호 참사 조사마저도 상층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결과에만 주목하게 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조사관은 세월호 특조위가 스스로 조사 활동에 미숙하다는 점을 의식해 형사 사건 수사 방식을 따르는 조사를 하면서 참사 자체의 구조적 원인 조사는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해야 했다고 짚는다. 선조위, 사참위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침몰 원인에 대한 기술적 설명에만 집중하는 등 구조적 원인 조사에는 소홀했다고 여긴다.
박 전 조사관은 “조사위의 고유한 임무는 구조적 원인 규명과 이를 바탕으로 한 권고를 통해 구조를 바꾸는 집단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라며 “재난조사위의 권위를 높이고 제도 개선 역시 책임을 묻는 한 방법으로 여길 수 있는 실천이 누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 트라우마 심각성 각인 계기
유정 교수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한국사회에서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각인시킨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여긴다. 화재 참사가 교통사고이자 방화로 인한 범죄사고라는 점에서 유례없이 심각한 사건임을 고려하면, 참사 직후 생존자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트라우마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그에 비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참사를 사회적으로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존자에 대한 심리 지원 체계 구축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이 때문에 다른 참사가 벌어졌을 때는 피해자에 대한 심리 지원 논의가 좀더 진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참사 직후 대구시청에 가면 ‘심리적 상처란 게 뭐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때는 사고 조사를 위해 특별한 조사위도 꾸려지지 않았다”며 “이후 벌어진 참사인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등에서는 당연하게 특조위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오히려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재난 개념, 느린 재난으로 확장해야
최은경 교수는 재난의 개념을 단발적 재난뿐 아니라 ‘느린 재난’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느린 재난은 환경적 요소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게 시공간을 넘어 확산하는 폭력적 상황으로 발생하는 재난을 의미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1994년 마산창원 식수 오염, 1996년 달성공단 폐수 낙동강 유출 사건 등을 환경 재난이자 느린 재난으로 꼽힌다.
최 교수에 따르면 환경 재난은 기형아 출산에 대한 공포 조장 등 비장애 중심주의와 만나며 장애 혐오로 진행됐던 문제가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상수도 오염을 정상 인구 중심적인 시각 외에도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회성 사건이 아닌 구조적 과정으로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표 이후 강동민 대구416연대 상입집행위원의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한 과제’, 조민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의 ‘장애인에게 일상화된 재난과 느린 재난’, 육주원 경북대 교수의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구조적 접근과 재난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축적 필요성’에 대해 토론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