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글에서 인용한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전집 1(시)>에 수록됐습니다.
김수영은 1959년이 되어서야 첫 시집을 발간하지만, 1968년 불의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다시 시집을 발간하지 않았다. 그리고 1974년에 시선집 형식으로 『거대한 뿌리』를 냈으니까 그는 생전에 딱 한 권의 시집을 낸 것이 된다. 첫 시집 제목은 『달나라의 장난』인데 표제작인 「달나라의 장난」은 1953년에 퇴고한 것으로 전집에 나와 있다.
1959년 당시 시집 제목을 정할 때 어떤 문화적 흐름이 토대가 되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표제작은 시인 자신의 마음에 가장 깊게 각인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시집을 낼 즈음의 자신에게 「달나라의 장난」이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시를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김수영의 작품 중에 「달나라의 장난」은 상대적으로 난해하지 않은 작품처럼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강신주는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의 “공통된 그 무엇”을 인식의 일반성/상투성으로 읽었고, 김유중도 “일상성이 가지는 무반성적이고 반복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정식으로 비판을 제기”했다고 읽었다. 즉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팽이이다. 줄을 감아 던지기만 하면 내버려두어도 저 혼자 도는 팽이의 비애는 그만 돌고 싶어도 스스로는 절대 멈출 수 없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읽은 「달나라의 장난」은 ‘나의 설움’을 간과한 오독이다. 또, “공통된 그 무엇”의 대립항으로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이라는 구절을 놓고 접근한 탓에 이 시가 갖는 풍부함을 평면적으로 마름질하고 말았다. 강신주는 김수영 시를 일반성/독특성이라는 개념으로, 김유중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김수영 시를 연역함으로써 도달한 결론이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적 화자의 어떤 처지이다. 조금 더 산문적으로 시를 풀어보면, “나”는 볼 일이 있어서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뜻하지 않게 그 집 마당에서 어린이가 팽이를 솜씨 있게 돌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팽이를 돌리면서 “노는 아해”의 행위와 도는 팽이가 신기해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나”에게는 “아해”의 팽이 돌리기 놀이도, 그리고 “까맣게 변하여 서서” 도는 팽이도 신기로운 것이다. 왜냐면 팽이를 돌리는 “어린 아해”와 도는 팽이가 보여주는 것은 “나”가 처한 현실과는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이 작품에 이야기성을 부여해 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다 :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 등이다. 조금 더 추측을 밀고 나가면 이 작품의 “나”는 지금 어떤 사람에게 꺼내기 힘든 어떤 말(혹은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그런데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노는 아해”가 돌린 팽이가 만들어 내는 어떤 환영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거나 혹은 빠져들고 싶은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1953년이면 김수영이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해이고,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친구와 살림을 차린 “부실한 처”(「조국에 돌아오신 상병 포로 동지들에게」)를 찾아 헤매던 시절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생활은 궁핍했을 테고, 두 동생은 전장에 끌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나”가 “이 집 주인”에게 무슨 용무가 있어서 왔는지 그 구체적 사실을 알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의 설움이다. 어쩐지 자신만큼 궁핍하고 서러운 삶은 없을 것 같은 나르시즘에 휩싸이는데 이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심리 상태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노는 아해”가 돌린 팽이는 마치 “달나라의 장난”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는 팽이가 연출하는 “별세계”가 자신의 현실이 아닌 것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차라리 그 “별세계”가 현실이 될 수 없는 상황이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도리어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가진 사람인데, 주어진 현실은 “나”를 서럽게 하는 것이다. (사실 설움은 자신의 정신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그리고 그 간극의 깊이에 비례해 강해지는 정서이다.)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은 평생 동안 김수영이 언제든 자기 자신에게 내려치는 채찍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공자의 생활난」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사물과 사물의 생리와/사물의 수량과 한도와/사물의 우매와 명석성을//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의 뜨거운 산문에서도 거듭 확인되기도 하고 친구인 박인환을 코스튬만 배웠다고 비난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김수영의 언어는 허투루 뱉어낸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밀하고 치열하다. 어떤 연구자가 김수영을 ‘시의 희생자’라고 부른 것은 삶과 시를 최대한 일치시키려는 그의 순도 높은 의지와 정신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레토릭이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리는 것은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이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깊이 연관돼 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가졌기에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자신의 처지를 말(부탁)해야 할 사람 앞에서 느낀 비참이 그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김수영은 팽이가 돌면서 자기를 비웃고 있다고 돌려 말한다.
강신주와 김유중이 철학적으로(?) 읽다가 결정적인 오독을 한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구절은 그러니까 반어로 읽어야 한다. 도는 팽이가 보여주는 환영은 “별세계” 같고 “달나라의 장난” 같은데 그것은 “나”의 현실과 정신이 가 닿아야 할 데는 아니다. 팽이는 “나”의 “운명과 사명”이 갖게 될 험로를 역설적으로 보증해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 차라리 “너도 나도 도는 힘을 위하여” 각자 울자. 다시 말하면 “공통된 그 무엇”의 추구가 좌절될 수 있는 상태를 시인은 앓고 있는 것이다. 또 이렇게 읽는 것도 가능하다. 즉 팽이는 환영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나”가 깊이 빠져 있는 설음을 터뜨려주는 매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은 구체적 현실에서 몸을 얻어야 한다는 거듭된 각성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팽이가 돈다”를 마지막으로 두 번 반복하면서 끝맺는다.
김수영의 초기 시가 보여주는 설움과 비애와 고독은, 이렇게 현실과 정신의 간극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신파적인 감상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김수영에게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은 “제정신”(「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첨언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지겹도록 언급되는 김수영의 ‘소시민성’이다. 훗날 어느 산문에서 그는 자신에게 붙은 딱지인 ‘소시민적’이라는 말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붙여진 ‘소시민성’은 바로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치열하게 밀고 나가는 과정을 이해 못한 상황에서 내려진 평가이다.
우리는 자신이 갖는 신념을 거의 맹목적으로 되풀이하는 문학을 지겹도록 보아왔고 김수영 자신도 이른바 참여시적 전통에 그런 투박함이 있다고 직시하기도 했다. 역으로 김수영은 거기에서 허위를 본다. 김수영은 자신의 허위마저 끊임없이 경계하고 파괴한 시인으로 손색없이 전진과 성찰을 수행했다. 한참 나중 일이지만 「꽃잎3」에서 “열네 살 우리집에 고용을 살러 온” “순자”를 통해 자신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허위”를 파괴한다.
마지막으로, 만일 ‘김수영 신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의 작품의 발생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치밀하고, 사유가 깊고, 자기마저 파산시키고 가는 ‘자유의 이행’ 때문에 숱한 그리고 다종다양한 해석이 내려진 탓일 크다. 그러나 그는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는 자신의 테제만은 끝까지 신봉한 사람이다. 그에게 맹목이 있었다면 이것뿐이다.
따라서, 김수영을 참칭하면서 현실로부터 충전 받지 못하는 기호를 배열한 난해시나 김수영을 ‘패션좌파’라 부르는 일부 수구 이데올로그들의 평가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작품 전문은 저작권자와 협의하에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