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이하 친구들)이 13일 전태일 열사 기림시집 ‘나비가 된 불꽃-전태일이라는 시’(삶창) 출판기념회를 대구청소년문화의집 대강당에서 열었다. 친구들에서 전태일 열사 53주기 추념일에 맞춰 펴낸 시집은 시인 29명의 시 58편과 에세이 2편, 판화 ‘전태일’ 연작 14점을 실었다.
출판기념회는 황규관, 이중기, 송경동, 권선희, 허유미, 오현주, 이정연, 김해자, 박승민, 이원규, 이철산, 조선남 시인 등 참여작가 12명과 송필경 친구들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와 시민 등 7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이철산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작가 대담은 송경동, 김해자, 허유미, 이원규 시인이 참여한 가운데 작가들의 근황, 그들의 삶과 문학활동에서 전태일의 의미, 작품 설명 등을 주제로 약 두 시간 동안 열렸다.
이철산 시인은 “이번 시집에는 32개의 시선이 담겨있다. 그 안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각자의 경험과 시인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고 본다. 여기 담긴 시선이 더 다양화되고 더 많은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노동자 전태일이 우리 시대에 살아오지 않을까 한다. 53년 전의 전태일로 남겨두지 말고, 가둬두지 말고.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든 어떤 꿈을 꾸든 그 안에 전태일을 담아보자”라고 말했다.
‘당산나무의 말씀’을 실은 이원규 시인은 “웬만한 대한민국의 문학 좀 한다는 사람은 살아있는데도 ‘생가 보존한다’, ‘문학관 한다’면서 40억, 50억 쓴다. 그런 분들의 문학관은 괜찮은데, 여기 이 집이 이대로 허물어지려고 한다”며 “다행히 전태일의친구들이 시민의 힘으로 큰돈을 만들어 이어가는 것이 뜻깊고 의미있는 일이긴 한데, 광주나 경기도 어디였다면 이랬겠나 싶다. 문학인들이 엄청 혜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소설로 제8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김해자 시인은 ‘수철리 산174-1번지’와 ‘시간 여행-옷장 속에서 야근을’ 등 시 두 편을 실었다. 그는 “이 시를 쓸 때도 제가 살아가는 우리 역사의 아픔이나 생태적인 아픔, 그리고 노동자의 아픔 이런 게 그냥 머리, 심장, 배 이렇게 통해 있듯 저한테는 그냥 한 몸”이라고 소개했다.
전태일의 시대를 어머니께 들었다는 허유미 시인은 제주 4.3과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연결시킨 ‘푸른 가까이’와 ‘4월과 11월’을 출품했다. 그는 “저는 크리스마스 때 제사다. 저희 고향집 할아버지 제사인데 고향 작은 마을에 17집이 동시에 제사를 한다. 17명이 동시에 죽었다. 사상범으로”라며 “제주 4.3은 어떤 정권과 미국의 묵인 아래 학살과 방관과 조장으로 인간 존엄성이나 자유가 없었다. 전태일 열사의 노동 환경은 인간 기본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조개를 캐네’와 ‘노래, 할 수 있을까’를 실은 송경동 시인은 전태일은 자신에게 종교 같다면서 “열사정신이라는 건 열사를 기리고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투쟁하고 싸우는 현장에 있는 게 진정한 열사정신”이라고 말했다.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은 “우리가 전태일의 친구가 되자 하는 것은 전태일의 삶을 본받고 나누자는 뜻이다. 전태일 삶의 가장 핵심은 어린 여성 노동자였다. 어리다는 것과 여성과 노동자라는 것.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지금까지도 소외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라면 끼니,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집은 조선남 시인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조 시인은 “지난해 전태일 골목길 시화전을 하면서 올해 기림시집 발간을 결의했다.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두운 죽음의 시대, 불꽃이 되었던 전태일도 있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희망, 가장 아픈 곳으로 연대, 하루 두 시간을 걸어 버스비를 아낀 실천 같은 전태일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여는 글에서 “전태일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하나의 시적 진실을 창출했다”며 “시대적 단절과 새로운 개벽을 일으키는 사건을 창출한 것이 ‘전태일이라는 시’다. 그리고 이 시를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서슬퍼런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시적인 삶, 자유로운 삶, 삶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가난한 우리가 가난한 집을 나와
가난한 생을 산다해가 떠도 어두운 도시 /
내일을 봉한 숲에서 /
고만고만한 꿈을 쥔 우리가 모여 /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병들어 죽어간다, 풋복숭아 같은 몸들 /
희망을 담보한 자본의 착취 /
부유한 환경이 외면하는 우리가 /
숨 가쁜 서로를 부축하며 버티는 /
이 꽃밭은 삶인가, 이미 너머인가 //기울어진 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
노동을 밟고 일어서는 부와 권력의 속도 /
그들이 거름이라 치부하는 고귀한 바닥의 권리 /
하루하루를 살아 이루고 누릴 당연한 자유 /
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를 위해 /
온몸으로 뜨거운 밑줄을 그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스물두 살이었다 /
모두가 귀 기울이기 시작한 스물두 살, 전태일이었다– 권선희 ‘밑줄’ 전문
객석 제안으로 즉석해서 작가와 관객의 시낭송 시간이 마련되면서 김해자 시인은 ‘밑줄’(권선희)을 낭송하고, 허유미 시인은 본인의 시 ‘4월과 11월’를 낭송했다. 관객으로 온 류경화 씨는 김해자 시인의 시 ‘수철리 산174-1번지’을 낭송했다. 황규관 시인도 자신의 시 ‘피로 지은 집’을 낭송했고, 이철산 시인이 그의 시 ‘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 마지막으로 낭송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