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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하는『문학과 지성』1975년 가을호에「竹」외 5편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바람이 바람을 불러 바람 불게 하고』(문학과지성사,1981)를 상재했다. 이 시집의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찾아다닌 장소다. 그 장소는 판자촌(「탈놀음」), 해장을 하기 위해 찾아 들어간 스낵코너(「스낵코너」), 뒷골목 대폿집(「性」), 허름한 실비 식당(「물」), 만화방(「만화책」), 시외버스 정류장 주변(「지게꾼」), 관광버스 안(「관광버스」), 지하도 어귀(「지하도 어귀」), 여인숙(「협객」), 공원(「공원에서」), 증권거래소(「증권시장」) 등이다. 그러나 말이 장소(places)지, 시인이 선별한 이곳들은 비장소(non-places)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ㆍ표시하고, 타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발생시키며, 역사로 이어지지는 장소에 비해 비장소는 정체성ㆍ관계성ㆍ역사성이 얕거나 전무하다.
옛날에는 단골 식당이나 주점조차도 대안적 장소의 역할을 했으나, 오르는 전세금과 도시 개발은 단골 가게가 장소가 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10년 넘는 단골조차 갖기 어려운 우리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자본주의는 이처럼 장소를 파괴하여 비장소(부스러기!)로 만들지만, 사회적 신분과 부에 따라 개인이 비장소를 경험하는 강도는 제각기 다르다. 정규직은 오랫동안 장소와 관계하면서 안정되고 장기적인 기획을 할 수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퇴직과 이직을 되풀이해야 하는 비정규직과 일용직의 불안정한 삶은 장소 없는 비장소만 마주할 뿐이다.
장소에 미달하는 비장소에는 시민의 자리에도, 출세나 성공에도 미달하는 주변인이 득시글거린다. “따라지목숨들”(「바람불어」), “일자무식 장돌뱅이”(「誤記」), 지게꾼(「性」,「지게꾼」), 고물 행상(「행상」), “외항선을 타는 내 초등학교 동기생 양이석군”(「해」), 거지(「지하도 어귀」,「비렁뱅이」,「邪說 1 – 올 여름엔」,「알거지」,「無題」,「공원에서」,「거지아이의 무사마귀 난 손이 있는 힘 다해 그러잡은 한 귀부인의 치맛자락」), 넝마주이(「잡나무」), 길거리 배우(「「邪說 2 – 한 실패한 무언극을 위한 가설 무대」), 무당(「독사」,「꽃」), 남사당(「남사당」)이 그들이다.
1960년대 중반에 시작하여 1980년대에 주류가 되다시피 한 민중시의 중요한 시작 방법 가운데 하나는 지식인 출신 시인들이 기층민중의 전기(傳記)를 써 바치는 거였다. 민중시는 입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 해 말이 되어 주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 없는 주변인ㆍ낙오자들이 대거 출몰하는 최석하의 첫 시집은 기층민중의 전기를 대필해주던 민중시의 관행 혹은 방법론에 입각해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대구 문화방송(MBC) 라디오 프로듀서였던 시인에게서 축제날 도시의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보고 심사가 뒤틀어진 거지가 “뭐이 잘났다구 팍팍 폭죽인지 뭔지 터뜨리냐 남 화딱지나게스리 샹!”(「비렁뱅이」)이라고 내뱉는 한 줄짜리 시도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집에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먹물 든 시인이 기층민중의 전기를 대필하는 마음가짐으로 쓴 것과는 또 다른 방법론이 혼거한다. 바로 제2부에 집중 배치된 선시풍의 시들이 그렇다. “앞서 가는 山僧 따라가는데/ 어느새 가물가물 멀어지고/ 어느새 흰 머리/ 흰 눈 밟으며 예까지 왔나”(「山」) 이 계열의 시들은 무상(無常), 곧 모든 것이 덧없음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전도(轉倒)가 있다. 시인은 입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들의 말이 되어준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자신의 무상관을 드러내고자 성공이나 출세와 거리가 먼, 사회가 낙오자로 낙인찍은 이들에게 애정을 기울인 것이다.
이 시집의 맨 앞에 시인의 등단작「竹」이 놓여 있다. “츈향아/ 니가 밥 생각날 때 니는 밥 묵고/ 내가 죽 생각날 때 나는 죽 묵을끼다”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가난해도 굳세게 살겠다는 선비의 자존심이 표명되어 있는 것으로만 읽혀졌다. 하지만 이 시에 드러난 유가적 사유의 더 밑에는 시인의 불교적 세계관이 있었으니, 이 시는 유불습합이 만들어낸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