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0月호] 반복되는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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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1주기를 맞을 동안 그날의 진실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도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 서울광장에서 이태원 유족과 세월호 유족의 합동 차례가 진행되었다. 두 참사의 합동 차례를 지내는 모습에 2003년 2월 18일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슴 아픈 비극들이 너무나 많이 반복되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안전권과 피해자, 유족들의 권리에 대해 소리쳐 왔다. 해당 유족들은 본인들의 목소리가 충분치 않은 탓에 다음 참사가 발생했다며 부채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유족들이 부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고 법을 제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국가가 주도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체계상 가장 아래에 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일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마녀사냥은 국가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참사 당시 국가가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각종 구조적 문제는 소수의 악인을 세우면서 중심화두가 되지 못했다. 2.18 참사 당시에는 기술이 있음에도 예산 감축 등의 이유로 가연 소재를 사용한 열차를 운행하게 만든 책임자가 아닌 화재를 낸 범인과 열차를 운행한 기관장을, 4.16 참사 당시에는 컨트롤 타워로 기능하지 못한 청와대와 구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없었던 구조적 문제 대신 배를 운행한 선장을, 10.29 참사 당시에는 당시 인파가 몰릴 것을 알면서도 경찰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고 빠른 대처를 보여주지 못한 서울시 대신에 뒤에서 밀기 시작했을 거라는 범인을 찾고 책임을 씌우려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 개인의 악마와는 분노를 엉뚱한 곳에 집중시켜, 진정 책임져야 할 주체가 어디인지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2.18 참사 1주기 당시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중앙로 시설 복구, 전동차 구매, 시설 개선과 시스템 개선, 기관사와 역무원 사이의 통신 체제 마련 등에 투입될 예산이 70퍼센트가량 삭감된 바 있다. 예산이 줄어들면 안전이나 보안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안전이 검증된 설비를 구축하는 것과 안전과 보안을 위한 직원들을 추가 배치하는 것 등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는 여전히 돈을 아낄 생각뿐이었다. 참사는 대단한 불운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기본적인 안전의 보장과 최소한의 사과, 추모는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넘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체계가 잡히도록 해야 한다.

홍준표 시장은 올해 2.18 참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추모의 글을 게시하는 대신 추모행사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민노총, 시민단체 등이 모여서 매년 해오던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갈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라며 논점을 흐렸다. 홍 시장을 대신해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던 행정부시장도 불참을 통보했다. 비극적인 참사에 유감을 표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언제부터 ‘정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건지, 그렇게 말하는 홍 시장 본인이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또한 홍 시장은 ‘유가족 자격이 안 되는 분이 있다면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위원회는 유가족들이 주축으로 이뤄지긴 하겠지만, 오직 유가족만이 소속될 수 있는 기관은 아니다. 추모와 사건기록 및 기억의 과정으로의 참여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고, 자격을 운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억이 이어지고 전해지며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은 점차 유가족의 범위에서 멀어지겠지만, 사건에 대한 아픔과 슬픔은 선명하게 이어질 수 있다.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배제’를 운운하는 모습에서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단편적으로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사건은 관련자가 모두 죽어야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상을 파악하고 사건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피해자를 위한 위로와 추모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유족들과 시민들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추모를 돕지는 못할망정, 여러 참사가 일어났던 지난 20여 년간 국가는 각종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제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잘못된 방향을 제시했다. 특별법 제정, 추모 공간 마련 등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들이 농성, 시위, 서명운동을 거쳐야만 겨우 이뤄졌다. 이런 모습은 그 어떤 위로도, 반성도 될 수 없다. 이에 대구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요구한다.

1. 국가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
2. 상인들의 생존권만 존중하며, 추모의 ‘온당함’이나 ‘순수성’을 따지지 말고 제대로 된 추모공간을 마련하라
3. 생명안전기본법혹은 그에 준하는 법을 하루빨리 재정하여 참사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라

유족들과 시민들은 주도적으로 추모의 움직임을 꾸려 나갔다. 그중 예술가들의 추모 전시가 있었다. 2014년 2월 12일부터 3월 8일까지 이어진 ‘CMCP : 대구 지하철 참사 11주기 기획전’은 2년간의 자료조사 및 준비를 거친 후 지하철역, 반월당과 중앙로의 야외 공간 등에 추모의 뜻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들은 유족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전시를 만들어 냈다. 그 중 ‘아빠, 나비 집을 지어요’라는 제목의 작품은 유가족과 예술가가 함께 협업하여 전시한 작품으로, 유가족 윤 근 씨가 딸을 기리며 참사의 역사를 10년간 추적, 기록해나간 아카이빙 작품이다.

이승희 작가는 무연고자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218 참사의 피해자 중 6명은 그 훼손이 심하고 신원확인이 불가능하여 무연고자로 분류되었다. 무연고 시신은 숫자와 알파벳으로 넘버링되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 그 누구도 찾지 않고 그리워해 주는 이 없이 이름을 잃고 사라져가는 피해자들은 이승희 작가의 ‘무제’를 통해 작품으로 다시 빛났다. 작품들은 사람들이 잊고 있던 사건을 다시 기억해 내도록 해 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추모는 바로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글_표출지대 김지민
pyochu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