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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16일 새벽, 경북 칠곡의 다부동에 불청객이 방문했다. 야반도주하듯 나타난 그의, 아니 그 청동 덩어리의 정체는 이승만 동상이었다. 2017년 제작된 이래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던 이승만 동상을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 (이하 동건추)가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기습 설치한 것이다.
해당 기념관은 6.25전쟁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으로, 전쟁 속에 죽은 이들이 사후라도 평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보수성향 민간 단체인 동건추가 오직 그들의 의지로만 세운 이승만 동상은 기념관을 보수층의 미술관으로 전락시켰다. 이 상황에 대한 각 집단의 의견 대립이 격화되며, 호국영령들은 또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17개의 시민단체는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목소릴 높였다.
한편 해당 동상을 조각한 홍익대 김영원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었음에도, 공이 크다면 허물보다는 공적 위주로 평가해야 한다며 이승만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은 허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볍지 않다.
이승만은 ‘멸공’을 위해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어 시민들을 강제로 가입시킨 뒤 최대 43만의 민간인을 학살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가해자이다. 또한 6.25전쟁 당시 본인의 안위를 위해 피신하면서 한강 다리를 예정보다 일찍 폭파해 피난민 800여 명을 수장시킨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장본인이다. 이승만은 독재와 장기 집권에 눈이 멀어 헌법에까지 손을 댔으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까지 본인의 손바닥 안에 두려 했다. 말도 안 되는 횡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계엄령 발포로 진압했다.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부정 선거를 시도한 정부에 1960년 4월 19일 민주 항쟁을 일으킨 학생들과 시민들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그를 기리는 동상 따위는 그 어디서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민주적 절차를 파괴했다.
이처럼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본인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수많은 사람을 고통받게 한 인물이다. 동건추가 2017년 이승만 동상을 비롯한 트루먼, 박정희 동상을 제작한 것 자체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사회적 합의 없이 이승만 동상을 기습 설치한 것은 분명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다.
동건추가 아무리 이승만을 추종하는 집단이라지만, 그의 반민주적 행보까지 그대로 이어받는 것은 삐뚤어진 사랑 아닐까. 이것은 개인숭배를 목적으로 개인 공간에 설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다부동전적기념관은 6.25 전쟁 당시를 기억하고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 시설이자 시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공공장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습 설치를 칠곡과 경상북도가 용인하면서 이곳은 공공적 성격을 잃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외 17곳의 시민단체의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제막식을 강행한 것을 미루어 보아 이미 칠곡과 경상북도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을 보수전적기념관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충돌을 피하고자 새벽 시간 기습적으로 동상 설치한 것은 시민들의 반대 의사를 알고 있었음에도 설치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의 공간, 즉 커먼즈를 완전히 파괴하는 일이며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동건추가 이승만의 행보를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어지럽히고 많은 사람의 불쾌감을 자아내고자 하였다면 성공했다. 가히 완벽한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동상은 존재 이유가 없다. 이승만이 내세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의 잘못과 부당함을 지적하고 그에 맞서 싸운 4·19 혁명의 주역들이 지켜냈다.
동상은 이들을 포함해 광장을 빼앗긴 시민들, 목소리를 무시당한 시민단체들을 모욕한다. 우리가 이 모욕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침묵, 방관한다면 또 다른 독재자의 모습이 광장에 나타날지 모른다. 실제로 정부와 시도 청은 다부동전적기념관을 보수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이승만기념관을 만들기 위한 비용도 배당하는 등 점입가경의 행태를 보인다.
동상 건립을 밀어붙인 많은 이들은 진실을 억압하며 사람들에게 이승만을 존경하기를 강제하기보다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현재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집합이며 역사의 축적이다. 반성 없이 쌓아 올려진 현재는 나아가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해, 절차를 무시하고 세워진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
글_표출지대
사진 박소윤 | 편집 김지민 최령은
pyochu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