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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적이 안 나오는 현 정부의 영화정책 앞에서
뭐든지 즉시 바로바로 써먹기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속된 말로 ‘경제성이 없는’ 분야에 대한 현 정부의 시각은 아주 차갑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은 정치평론이 아니지만, 정작 ‘실용’을 외치는 현 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도리어 ‘실용’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가며 경제사회적 침체에 대한 해법을 이념 투쟁으로 메우려는 ‘실용’만은 확실해 보이지만 말이다.
극한의 정치편향이 근래 한국사회의 대세다. 정치에 대해 극도로 냉소를 보이거나 모든 세상사를 정치화하거나 둘 다 정치편향이다. 지금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기본 인식은 이전 정부가 세금을 펑펑 낭비해가며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데 정치적 의도로 자기 세력을 심거나 우군을 챙겨주기 위해 사회적 경제니 커뮤니티니, 인문학이니 뭐든 급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 R&D 연구예산을 삭감하고 세금이 낭비되는 건 아닌지 정부의 각종 시민사회단체 지원금 사용내역을 내놓으라 한다. 거기에 새우등 터지듯 작은 도서관이나 지역영화 지원사업과 영화제 지원금을 싹둑 잘라내듯 항목 자체를 날리거나 대폭 축소하고 말았다.
관련한 언론의 질의에 현 정부 관계자들의 답변은 당혹스러웠다. 노파심에서 밝히자면 필자는 독립영화 지원정책이 현재 상당히 기이한 방식으로 변질되었거나 오히려 창작자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부여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난 몇 년간 계속 품어왔다. 현행대로가 아니라, 일정한 수정 혹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가깝다. 지금도 수면 아래에선 어떤 식이든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니 관망하자는 목소리도 확인된다.
하지만 현 정부의 시각을 드러내는 발언이나 실제로 개혁이라며 내세우는 조치는 긍정적 방향이 아니라 과거의 망령, 즉 정치권력이 제왕적으로 사회를 통제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 외에 다른 해석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대립하는 상대를 군사작전처럼 섬멸대상으로 보거나 최소한 길들이겠다는 태도다. 그래서 문화예술분야의 내부 해결과제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일방통행은 일단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지고 만다. 너무 수세적이지만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놔뒀으면 하는 지경이다. 그만큼 현 정부의 영화정책은 ‘야만’적이다.
◆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문화정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무척 우울한 입장이긴 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라면 최적의 모델이 되는 마법의 주문이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문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지원정책은 기본적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방향성을 견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논쟁을 거치며 최적 모델을 발견한 점은 대동소이했다. ‘수렴진화’라는 생물학 개념과 묘하게 유사하다.
여기에서 전제는 그 사회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와 인정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확립되었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떠돌이 음유시인들을 손님으로 환대하는 풍습을 지녔다고 한다. 이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다른 지방의 소식을 전해주고 개별 도시국가에서 접할 수 없는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전파했다. 신화와 문학, 음악이 그렇게 확산되었다. 그 대가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인심 좋으면 노잣돈 좀 챙겨주던 게 고작이니 몇 배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특정 사회에서 문화예술인에 대한 처우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고대 그리스 음유시인들이 받았던 대접은 기본이 되어야 할 테다. 그런 면에서 2023년 한국사회에서 현 정부가 일방 통행하는 몇몇 정책은 ‘바르바로이’(야만)라 폄하해도 될 지경이다.
물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정책이 (검열과 프로파간다를 전제로 한) 전체주의 국가들의 ‘예술의 정치화’와는 달라야 한다. 국가가 예술을 후견하는데 그치지 않고 방향을 규정해가며 창작활동에 개입하는 순간, 선택받은 일부는 관제예술가가 되고, 선호되지 않는 창작자 상당수는 활동을 제한받는다. 그 방식이 폭력적 탄압이냐, 여러 우대조건으로 길들이느냐 차이만 남을 뿐이다. 사실상 동전의 양면 격이다. 조금 더 세게 표현하자면 현 정부의 독립영화정책은 그런 수준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문화 선진국이라 선망하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다. 프랑스 영화계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아이콘이다. 이 공간은 앙리 랑글루아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여기저기 피난을 다니면서도 유럽 전역에서 전쟁의 불길로 인해 영화 필름이 사라지는 걸 참다못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필름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전쟁이 끝난 후엔 그렇게 수집한 필름으로 영화 박물관 개념인 ‘시네마테크’를 건립한다. 물론 시네마테크는 프랑스 정부의 재원을 지원받아 운영되었고, 문화부 담당자들은 관장이던 앙리 랑글루아와의 대립으로 그의 경질을 시도한다. 하지만 당대 프랑스 영화인들이 대거 집결해 격렬한 항의와 시위를 불사하며 정부 입장에 맞섰고, 끝내 앙리 랑글루아의 복귀를 이뤄낸다. 그로부터 3달 후에 훗날 ‘68혁명’으로 불리게 될 1968년 5월이 시작된다. 전설이 된 이 사건을 통해 프랑스 영화계의 자부심과 정책 방향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다.
◆ 문화정책 퇴행이 가져올 거대한 후퇴의 그림자 앞에서
사연이 많은 가운데에도 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를 주축으로 독립영화나 영화제에 대한 지원은 확대일로를 걸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주로 검열 문제로 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하던 독립영화 진영도 어느새 주요 파트너로 자리매김했고, 비록 넉넉하진 않더라도 꾸준히 늘어나는 여러 지원 시스템의 수혜가 익숙해졌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냐는 논란이 나올 정도로 현재 한국의 상업영화 바깥 영화와 관련된 행사는 공적 지원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일방적 삭감이나 사업 폐지가 태풍의 눈처럼 등장했다.
이제 한국의 영화제 뒤풀이나 독립영화인들과의 모임에서 최대의 화두는 각자 작품에 대한 논쟁이나 경향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어디어디 지원 신청이나 피칭(완성되지 않은 영화의 사전지원을 위한 선전홍보 행사) 관련 정보교환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떠돈다. (금전/교육/장비 불문) 제작지원을 받지 않으면 과연 창작이 가능하겠냐는 불안이 심화되어 왔다. 젊은 독립영화 창작자들에게 지원정책은 (늘 부족하고 아쉽더라도) 필수가 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열악한 조건의 신진 창작자/지역 영화계/실험적 작업 분야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거대할 수밖에 없다.
대구영화학교는 지역 대학에 정규 교과과정으로 4년제 영화학과가 없다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지역독립영화협회와 영상미디어센터 등 몇몇 단위가 힘을 모아 개설한 교육 워크숍이다. 매년 12명의 수료생이 각각 연출/제작(PD)/촬영 각 4명씩 3인1조를 이뤄 졸업 작품을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학교‘라 이름이 붙긴 했지만 4년제 학과의 정규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반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내에 진행되는 확장 워크숍 형태에 가깝다.
하지만 대구영화학교는 단편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에겐 상당한 평가를 받는 작품과 작가들을 속속 배출하는 중이다. 즉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 제대로 나오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대구영화학교 출범 이후 비슷한 형편의 지역들에서 대동소이한 구성의 영화학교 붐이 일어날 만큼 유의미한 영향력을 펼치며, 2023년 현재 5기째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의미 있는 프로그램은 현 정부의 지원사업 삭제로 내년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우리 영화는 우리가 소개한다. 팔색조 매력을 보여주마!
근래 몇 년간 한국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게 많았던 대구지역 창작자들의 요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떤 대처를 모색하고 있을까? 지원이 없다면 영화를 포기할 것인가? 지원정책을 강화하라고 항의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몰빵’하는 게 바른 방향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가운데 쉽지 않은 기회를 찾았다. 당장 지역영화 지원사업 예산 (12억) 전액 삭감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 대구영화학교 3-4기 수료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 중인 ‘월간 아마추어 필름’이 주최한 지역독립영화 상영회 자리였다.
이제 5년 차에 불과하지만, 대구영화학교 수료생 기수에 따라 일종의 흐름이 눈에 언뜻 보일락 말락 하기 시작했다. 1-2기는 기존에 지역 내에서 활동하던 선배 창작자들과 스태프 등으로 교류하며 영향 아래 있던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3-4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특별한 인연 없이 문을 두드리는 형태가 다수였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단체일정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한풀이를 3기가 4기 활동 지원으로 약간이나마 해소하면서 앞 기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생면부지의 지역 내 동년배 그룹이 마치 ‘어벤저스’처럼 만남과 협동을 이어가면서 끈끈한 우애 but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확고한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개별 창작자들의 품앗이 협력을 넘어서는 고민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열과 성을 다해 완성한 결과물을 (갈수록 변별력이 떨어져 가는) 영화제의 선택만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아마 이런 고민의 발로에서 출발했을 테다. 다양한 각도로 자신들의 작업을 조명하고 창작자 그룹 내에서 경쟁의 긴장감과 피드백의 효용을 창출하기 위해 큰 지원 없이 매달 1편씩 순발력 있게 단편을 제작하고, 통상적인 상영회 + 관객과의 대화 토크 방식을 넘어서는 기획을 제기한다. 그런 노력이 바로 {점점 퍼져가 멀리멀리}라는 형태로 집약되었다. 이들의 슬로건도 재미있다. 아마 모든 독립영화 창작자들의 꿈이자 로망일 것이다. 바로 ‘점점 퍼져가 멀리멀리’다 운치가 철철 넘치지 않는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커뮤니티시네마 활동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약간의 지원을 마련한 이 그룹은 여름부터 지역독립영화 상영회를 기획하는데 선구안이 참신해 눈길이 간다. 지난 8월, 오오극장에서 ‘소용돌이 with 장르영화’라는 표제로 자신들의 영화학교 실습 워크숍 과제를 몽땅 가져와 상영했다. 자체 기획이 아니었다면 그저 외장하드 속에 과제물로 남게 될 것들이었다. 공포, 액션, 페미니즘, 부조리극 등 비록 습작의 투박함은 있지만 특정 색깔에 갇히지 않는 다양성이 폭발하는 기획이었다. 처음 상영기획이 재미있어 자연스럽게 두 번째 상영에도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가을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표제로 추석명절을 앞두고 진행된 상영회는 2022년 4기 영화학교 수료 작품 3편으로 채워졌다. 8월에 열린 대구단편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들이라 지역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제법 봤음직한 라인업이다. 하지만 이번 상영회의 핵심은 영화 라인업보다는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방향성이었다. 상영작 3편(<운동회날>, <못>, <휴식과 나의 남자친구>) 모두 관객과의 대화 손님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감독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쩌다 객석에서 호명되어 인사만 해도 다행일 제작총괄 담당, 즉 PD 3명이 감독을 대신해 무대에 섰다. 아예 감독들은 상영회에 못 오게 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 확인해 보았다.
천편일률적인 GV가 아니라 객석의 관객 대부분이 실제 동료에 가까운 이들이고, 그들 내에서 얼굴은 자주 보지만 꾹 참아서 담고 있던 속내와 고충을 나누기 위한 취지인지라 불편할 위험이 있는 감독들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아마 감독들 모두 귀가 간질간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덕분에 다른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진솔하고 흥미진진한 뒤 배경과 일화가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기획은 발군의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 외압에 당당한 사자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영화제작현장은 감독과 배우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스쿨밴드를 하더라도 보컬과 기타만으로 음악을 공연할 순 없다. 하지만 대개 그렇게 비춰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소외되거나 그 역할이 간과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록그룹 사운드의 핵심은 드럼과 베이스이고, 영화 현장에선 촬영-녹음-제작부서 각자의 역할분담이 절대적이다. 이후에도 편집, 음악 등 각자의 소임을 맡은 이들의 노력이 합해져야 온전한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수많은 창조적 충돌과 갈등이 생성되게 마련이다. 그런 곡절과정에서 발생한 서로 다른 시각과 견해를 피력할 한바탕 난장을 마련한 셈이다. 그것도 가장 할 말 많을 법한 PD들을 내세운 것이다.
대화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회자 또한 작업의 동료이자 일원이고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 또한 동업자(?!)이거나 최소한 지근거리에서 창작과정을 관찰한 이들이다 보니 보통의 GV 자리와는 비교 불허일 정도로 현장의 공기는 농밀하고 진했다. 대화 한 마디마다 중력의 압박이 감도는 자리는 요즘 독립영화판에서도 흔치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무겁기만 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감독의 온갖 만행을 폭로 및 고발하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성토의 대환장 파티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영화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하드코어 체험’ 그 자체여서 받은 문화충격과 좌절의 회고담이 만담처럼 술술 쏟아지던 자리다. 낯선 이들 간 소통의 어려움과 열악한 제작환경이 촉발한 고난의 회고는 밤을 새워도 모자랐음직하다.
바깥에서 보면 공고한 자신들만의 서클을 형성해 타인의 진입을 차단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 같지만 속내를 조금 엿들어 보니 (같이 고생하며 쌓아올린 우애가 만만찮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각자가 그동안 속에 묻어뒀던 고민과 회한이 상상초월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친분과는 별개로 각자의 영화제작 당시 역할수행에 대해선 평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철했다. 세대적 특성이 일정부분 반영된 것도 같다. 상호 간에 공사를 구분해가며 다양한 각도로 평가가 이뤄진다는 건 기본적으로 환영해야 할 일이다.
우애가 넘치는 소규모 공동체 내의 ‘작은 사회’는 동전의 뒷면처럼 어두운 이면을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익숙하지 않다 보니 평가에 인색하기 쉽다. 평가는 곧 비난으로, 조언은 시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구의 지역영화인들이 너무 친하고 가깝다 보니 그런 우를 혹시나 범하지는 않을지 골방에서 괜한 걱정을 한 적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목격한 냉정한 평가는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아비판 급으로 제작 당시 본인의 임무 수행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회와 함께 미래를 위한 성찰과 전망이 꽤 근접도 높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내부 상영회 관객과의 대화가 아니라 지역 영화제 네트워크 포럼 주제로 삼을법한 밀도였다. 장외에서 노파심을 갖고 궁금하던 걱정이 일정부분 기우로 확인되던 발견의 찰나라 해도 그리 어긋남이 없겠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역 영화창작자의 동년배 집단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취업난과 지역 정착의 어려움은 영화인들에게도 의외가 아니다. 진로 고민 과정에서 영화작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들이라도 과연 미래를 걸 수 있을까 혹은 후회하지 않을지 답을 내리는 건 결국 자신의 실존적 결단 외엔 가능하지 않다. 그런 풀리지 않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3인 3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던 가을밤의 대담 현장을 목격하니 비록 조만간 겨울 태풍이 몰아치더라도 봄을 준비할 희망의 씨앗은 존재한다는 믿음을 남길 수 있었다.
적어도 이들 중 일부라도 지원금 한 푼 못 받더라도 메인스트림 아래 ‘지하’에서, 빚진 게 없으니 간섭받을 일 없이 하고 싶은 바대로 ‘자주’적인 영화 창작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그들이 지역에서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한 조건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숙제가 하나 또 추가되었다. 결국 주변 조건을 면밀히 파악하되 종속되진 않으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새롭게 RESET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 계기가 지독하게 일방적이고 악의적이긴 하지만 변화에는 응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