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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7) 베를린에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수도 베를린에서 전통과 보수의 바이에른으로
생명평화기행단은 4박 5일간의 베를린 일정을 마치고 바이에른으로 이동했다. 바이에른의 주도는 그 유명한 뮌헨이다. 세계 3대 축제라 불리는 10월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와 세계적인 축구 구단 ‘바이에른 뮌헨’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에른은 독일 16개 주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이며, 인구는 두 번째로 많고, 소득은 가장 높다. BMW, 지멘스, 알리안츠, 아우디 등 유명 대기업 본사가 바이에른에 위치한다. 2차 대전 이후 베를린이나 옛 동독 지역에 있던 회사들이 피해가 적었던 바이에른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한편 바이에른은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독일은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출현한 지역이다. 개신교세가 강한 북부 지역에 비해 바이에른은 천주교(가톨릭)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태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바이에른은 바이에른에만 존재하는 지역 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약칭 기사련, Christian Social Union in Bavaria)의 본거지다. 사회보수주의, 기독교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기사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을 제외하고 계속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주총리는 한 번 빼고 지금껏 계속 기사련 소속이었다. 기사련(CSU)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약칭 기민련, CDU)과 연대한다. 기사련의 자매정당인 기민련(CDU)은 바이에른에선 따로 후보를 내지 않고, 기사련을 지지한다. 연방의회에선 CDU/CSU라는 하나의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한국으로 치면 경북(전통/보수)과 울산(경제/소득)을 합쳐놓은 지역이라고 할까. 수도 베를린과 다른 분위기를 기대하며 바이에른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나니 오후 4시 정도가 되었다. 기행단은 함께 그 유명한 뮌헨 맥주를 마시러 갔다. 뮌헨 맥주 성지인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1L맥주를 주문했다. 한국과 독일 녹색시민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건배를 했고, 우애의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와 내년 녹색당 총선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최초의 나치 강제 수용소인 다하우 강제수용소
다음날 기행단은 독일 거주 전시기획자 유재현 당원의 인도로 최초의 나치 강제 수용소인 다하우 강제 수용소를 갔다. 유재현 당원은 전시기획자면서 독일인과 결혼하여 바이에른에 정착한 시골농부다. 한국녹색당 유럽모임을 설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한국녹색당과 독일녹색당 이중당적(?)이다. 유재현 당원이 속한 독일녹색당 지역모임에선 유재현 당원의 독일녹색당 당적을 인정할지 논의했고,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세계녹색당의 우애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1933년 설립된 다하우 수용소는 처음엔 나치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을 주로 수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유대인, 동유럽에서 온 죄수들, 집시, 성소수자 등 수용소 인원은 급격히 늘어났다. 30개국 이상 20만 명의 죄수들이 수감되었고, 1/3 이상은 유대인이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는 설계, 운영 등 뒤이은 다른 강제수용소들의 원형(prototype)이 되었다.
또한 바이에른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170개의 위성 노동 수용소의 중추 역할을 했다. 수용소 공식 집계에선 3만 명 이상 사망했지만, 1945년 전염병으로 인한 수 천명의 죽음은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은 최소한의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수용자들은 고문, 살인, 질병 등으로 희생되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기만적인 문구는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이다. 누구를 위한 노동이며 누구를 위한 자유란 말인가. 지구의 뭇생명, 세계 시민들을 학살하고 지배할 수 있는 노동이며, 자유란 말인가. 생명을 볼모로 잡힌 수감자들은 수용소에서 죽기 전까지 또는 해방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착취당했다. 그들은 강제 수용된 것도 모자라 야만의 전쟁을 위한 노동에 동원되었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버티고 있는 육체마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전체가 아픔의 공간이지만, 특히 고통스러운 장소는 화장터다. 수많은 수감자들이 샤워실에서 독가스 학살을 당했다. 샤워실에서 희생된 이들은 바로 불태워졌다. 화장터 주변에선 80여년전 희생된 수많은 영령들이 느껴졌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해 잠시 추모의 기도를 드렸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 바라보기, 가려진 역사 드러내기
다하우 수용소는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야만의 역사와 비극의 현장을 마주해야만 한다. 인간이 얼마나 같은 인간에게 잔인할 수 있는지, 나치와 같은 정치체제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비극의 역사를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다하우 수용소를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쓰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은 역사교육의 중요한 원칙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처럼, 자신들의 승리는 부각되고, 실패는 축소된다. 본인 나라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해야 더 나은 현재와 미래도 가능하다. 나치의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은 전후 국제사회로 편입되기 위한 독일의 필연적인 선택이자, 야만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다.
모든 역사적 기록은 주관과 해석의 여지가 있다. 같은 사실을 두고 다른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 사실과 해석의 긴장은 숙명이다. 중요한 것은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에도 주목하는 일이다. 특정한 사실과 해석만이 기록되지 않도록, 강자들의 기록한 사실만이 전달되지 않도록, 균형과 평등의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최근 독일에선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독일의 아프리카 침략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하우 수용소 피해자들의 역사에 있어서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를 겪은 유대인들에 비해, 독일의 집시나 성소수자들의 희생은 주목이 덜 하다. 어떤 이들의 희생은 국가적으로 기념되지만, 어떤 이들의 희생은 진상규명조차 쉽지가 않다. 녹색당에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끊임없이 바깥으로 내몰린 생명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탐색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은 독일 정치의 실패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 사회에선 가족 중에 전쟁을 겪지 않은, 조부모나 부모님 세대가 전쟁 경험이 없는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독일의 과거 청산을 이끌었던 68세대는 어느덧 노인 세대가 되었다. 최근 독일은 나치에 대한 부채감이 없는 세대가 늘고 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부상하면서, 과거사 청산의 모범 국가인 독일 사회도 완전하지 못 하다는 평가가 있다.
역사교육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 정치를 막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전후 독일은 야만의 역사의 교훈으로, 반성과 예방의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노력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의 공화국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 제국이 탄생했다. 표면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장 반민주적인 체제가 나타난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의 탄생은 좋은 법률과 제도만으로 좋은 정치가 구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정치’ 자체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바이마르공화국에선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운영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부재했다. 독일의 시민들, 정당들 모두 공화국 운영에 실패했다.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은 독일 정치의 실패였다.
이에 전후 독일은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제외한 좌우 정치세력이 함께 연방정치교육원을 설립하고, 보이텔스바하 합의라는 정치교육의 3대 원칙을 확립했다.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할수록, 나치와 같은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쉽다.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교육이 만능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교육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더 나은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시민들이 일상의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내고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적극 지원했다. 전후 독일의 정치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독일이 정치선진국으로 탈바꿈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막는 최선의 길인 생명과 평화의 정치
이와 함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와 사회적 갈등을 제도 정치로 수렴시키는 정당정치의 발전은 전후 독일의 정치 역량을 뒷받침했다. 최소한의 민주적인 정치질서를 거부하는 반대하는 정당은 헌법재판소가 해산할 수 있게 했다. 인물보다 정당이 강조되는 독일의 정치시스템에서, 다양한 정당들은 다양한 가치를 대변한다. 노동, 생태, 소수자, 온건보수 등의 가치와 이념이 정당들을 통해 제도정치에서 수렴되었다.
정당 지지율 그대로 의석수가 반영되는 정치시스템에서 한국처럼 30%대의 지지율로 과반수 의석을 독식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 단독 과반을 찾기 어려운 시스템에서 정치세력간 대화와 타협은 필연적이었다. 다수파는 1당이 되더라도 소수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고, 소수파는 집권을 하지 못 하더라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비해 의회는 훨씬 역동적이었고, 의회는 의회 바깥의 정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독일의 정치는 완벽하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국회의원 현역 교체율에 비해 국회 만족도가 낮은 한국 입장에선 훨씬 부러운 일이다.
최근 독일은 에너지 위기로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나치가 독일 시민들의 마음을 얻은 것은 민생 위기에 대한 호소가 먹혔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어려워질 때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막는 최선의 길은 더 나은 정치세력이 존재해서 경쟁하는 것이다. 평등과 다양성으로, 생명과 평화를 지키며 민생 위기를 유능하게, 다르게 헤쳐나갈 정치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서 생태와 공존을 지향하는 독일녹색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78년이 흘렀다. 세계 곳곳에서 다하우의 비극은 계속되어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과 평화가 짓밟힌 현장이 존재한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적으로 정치하는 세계녹색당의 소명을 확인하며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떠났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