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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4년 12월 도입된 달구벌건 강주치의 사업은 올해로 햇수로 10년 차다. 그사이 부침이 없진 않았지만,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던 복지 사각지대의 시민을 발굴해 희망을 안겼다. 절망 속에 있던 그들은 달구벌 사업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말한다. 희망이 건네진 이는 1,733명(2022년 9월 기준). <뉴스민>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의 과거를 톺아, 성과를 살펴보고, 더 큰 희망을 위한 숙제도 짚어본다. 본 기획 취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됐고, 7회에 걸쳐 나눠 연재된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① “달구벌 때문에 희망을 가졌어요”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② “이젠 끝이구나···” 사각지대를 제도 품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③ 고립 1020의 문을 열고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④ 8년간 복지사각지대 717명 발굴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⑤ 숙제=동북권+네트워크+규모·내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⑥ “돈 없어도 괜찮아. 나가서 봐줄게” 두 가지 원칙에서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1. “취약계층 희생으로 공중 보건 위기 극복···희생자, 무작위 선정되지 않아”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2. 더 나은 취약계층 의료지원 정책을 위한 제언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2017년 여름 어느 날, 이선화(가명, 43) 씨는 그날도 출근하는 남편 배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 천현수(가명, 55) 씨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했다. 대구에서도 금호강 넘어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살던 현수 씨는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선화 씨는 산책 삼아 버스정류장까지 남편과 걸어 나갔다가 되돌아 와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현수 씨는 일터에 나가서도 아내를 생각하는 살뜰한 남편이었다. 그는 고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곤했다. 그날도 그랬다. 다만, 그날은 신호음이 몇 차례 이어져도 휴대폰 너머에서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이, 바쁜 일이 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는 식사를 마치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현수 씨는 오후 3시쯤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아내는 마찬가지로 응답이 없었다. “걱정보다는 무슨 일을 하길래 전화를 안 받나 싶었다” 현수 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퇴근 후 돌아온 현수 씨의 눈에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내는 현관문 앞에 쓰러진 채 꼼짝을 못 했다. 외상도 없이 아내는 문 앞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가 싶었다” 현수 씨는 말했다.
번개가 치듯 번쩍 내리친 통증,
그 길로 몸이 내려 앉았다.
선화 씨는 여느 날처럼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와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다리 뒤쪽으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번개가 치듯 번쩍 내리친 통증, 그 길로 몸이 내려앉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선화 씨는 잠시 후 의식은 찾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려 용을 썼지만 의식 속에서만 몸은 일으켜졌다. 반나절 동안 그 상태로 선화 씨는 남편을 기다렸다.
“여보, 왜 그래, 몸 한 번 움직여 봐, 고개 좀 돌려봐” 현수 씨가 말했지만, 아내는 손만 겨우 까딱 움직였다. 근육 하나 없는 사람처럼, 아내는 일어나지 못했다. 전조 증상이 없던 건 아니다. 어느날부턴가 별로 무겁지 않은 물건도 아내는 잘 놓쳤다. 2kg이 채 되지 않는 세탁 세제를 놓치거나, 1.5L 생수를 놓치거나 하는 식이었다. “원래 이 사람이 좀 약하니까, 그래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죠.”
아내를 돌봐줄 다른 가족은 없었다. 현수 씨는 아내를 돌보는데 전념했다.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모든 일이 그의 몫이 됐다.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쳤다. 아내를 돌보는 것과 일용직으로 나가는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출근을 했다가도 점심시간마다 혼자 누워있는 아내를 돌보려 현수 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터 동료의 차량을 빌려,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선 누워 있는 아내를 일으켜 앉히는 데만 10여 분. 죽을 쒀 먹이고, 소화가 될 때까지 앉혀뒀다가 다시 눕힌 후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미 작업은 시작되어 있기 일쑤였다.
“누가 좋아하겠어요? 사정을 처음엔 봐주다가 나중엔 그러더라, ‘네 사정을 아는데, 한 사람 때문에 일이 안 돌아간다.’ 그 사람 입장에선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도 못 다니게 됐어요” 조금 모아 놓은 돈으로 잠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이내 그 돈도 바닥이 드러났다. 병원은 생각도 못했다. 생활비도 없는 처지에 무슨 검사를 하고, 얼마나 비용이 들지도 모를 병원을 간다는 걸 생각하기 어려웠다.
병원을 대신해 현수 씨는 스스로 의사가 됐다. 아내의 신경마저 못쓰게 된 것은 아닌지 알아보려 이쑤시개를 가져다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는가 하면, 하루에 3시간이고 5시간이고 7시간이고 아내의 몸을 주물렀다. 탱탱볼을 몸 아래 두고 이리저리 굴리기도 했다. “이쑤시개로 콕콕 찌르는데, 오른쪽 다리인가? 꿈틀하더라구요. ‘아파?’ 물어보니까 아픈 줄은 모르겠다구 하구요. 아픈 줄은 몰라도, 신경은 살아 있구나 싶더라구요” 지극 정성으로 현수 씨는 아내의 의사가 되었다.
생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건 정성만으로 되지 않았다. 세간살이를 하나씩 팔고, 지인들에게 몇 십 만원씩 빌려 이어가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TV도 팔고, 노트북도 팔고, 옷도 내다 팔았지만, 월세 조차 낼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점점 극한 상황으로 두 사람은 몰려갔다. ‘아, 진짜 우리가 이제 죽어야 하나보다···’ 절망에 누군가 응답하듯, 희망이 찾아왔다.
세간살이를 팔며 이어간 생활
‘이젠 정말···’ 절망에 응답한 희망
한 번도 밀리지 않던 월세가 3개월째 들어오지 않자, 집주인이 현수 씨 부부를 찾았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거동하지 못하는 선화 씨도 선화 씨였지만, 현수 씨의 몸 상태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집주인은 현수 씨 부부의 상황을 행정복지센터에 알렸다. 현수 씨 부부는 국가가 ‘발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였던 셈이어서 행정복지센터에선 즉시 현수 씨 부부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선화 씨의 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들 부부의 사회 복귀도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행정복지센터는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을 대안으로 삼았다. 끊어진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으로 대체됐다. 넉넉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한 수준에서 수급비가 지원됐다. 물론 수급비만으론 충분치 못했다.
2014년 12월 도입된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은 보건·의료·복지 원스톱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지역 내 의료사각지대 발굴이 주요 역할이다. 기존에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 복지제도가 의료적 지원에 국한된다면,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은 대상자의 보건·복지 측면의 지원도 연계되도록 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차이는 대상자 발굴부터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복지센터 뿐 아니라 지역별로 분포된 복지시설, 보건소를 통해 대상자를 발굴해 지원이 이뤄지면, 의료원에 배치된 사회복지사가 대상자의 행정복지센터 등을 통해 추가로 필요한 지원사업도 연계한다.
현수 씨 부부는 집주인을 통해 동 행정센터를 경유해 대구의료원으로 의뢰되어서 수급 지원과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이 거의 동시에 추진됐다. 추후 주거 복지 정책도 연계해 거동이 불편한 선화 씨가 병원 치료와 생활에 더 도움받을 수 있는 곳으로 주거지도 옮길 수 있었다.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방문 진료와 2·3차 병원 연계 시스템이다. 대상자가 내원이 수월한 환자라면 의료원으로 불러 치료를 진행하지만, 선화 씨 처럼 거동이 어려운 경우엔 의료진이 먼저 대상자의 자택을 찾는다. 이를 통해 대상자에게 필요한 추가적인 지원을 찾는다.
필요하면 대구의료원과 연계된 3차 상급종합병원으로 대상자를 연계해 대구의료원에서 할 수 없는 의료적 지원도 이뤄진다. 대구의료원은 2015년 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 5곳과 ‘달구벌건강주치의 진료지원 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대상자 중 대구의료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5곳과 연계해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치료비는 기업 후원 등으로 마련된 자금으로 절반이 지원되면, 연계된 상급종합병원에서 나머지를 변제해 주는 방식이다.
2016년부터 2022년 9월까지 3차 병원으로 연계된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수혜자는 305명이다. 이들에게 한국가스공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특한 기부금 7,317만 원이 사용됐다. 5개 병원도 그만큼의 진료비를 변제해주었기 때문에 실제 이들이 치료 받는데 쓰인 비용은 1억 5,000만 원에 가깝다. 5개 병원 중엔 경북대병원이 대구의료원과 함께 가장 많은 환자를 돌봤다.
대구의료원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팀 전담 박찬주 간호사는 현수 씨 부부 사례를 “운이 좋았던 사례”로 기억한다. 박 간호사는 “관리하던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발굴 대상이었던 셈인데, 동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서 협업이 굉장히 잘 됐다”며 “우리가 의료적으로 서포트를 하고, 동에선 긴급 생계 지원 같은 걸 도우면서 검사를 했는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인을 지금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간호사 말처럼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팀은 선화 씨를 칠곡경북대병원에 의뢰해 각종 검사를 진행하고 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선화 씨 병을 확정하지 못했다. 선화 씨는 2017년 발병 이후 현재까지 척추 협착 의증으로 치료 받고 있다. 확정하진 못했지만, 선화 씨는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사실 달구벌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가졌어요. 정말 달구벌 지원이 아니었으면 너무 막막했을 거예요. 모든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고, 병원에 가기 어려우니까 구급차도 지원을 해주셨구요. 정말 감사하죠. 병명이라도 알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마련해 주신 거잖아요. 물론 분명하게는 안 나왔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진 게 있어요”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