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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는 게 맞죠. 공개 못 할 거 뭐 있어요.”
한 검찰 관계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는 일부 수사 내용이 노출될 수 있는 내용은 가리고 공개하면, 원본이라고 못 보여줄 이유가 있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수사 내용도 이미 완료된 수사면 비공개할 이유가 있나요?” 맞장구를 치며 이렇게 묻자, 그는 허허 웃으며 “위에서 생각하는 건 다를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검찰 ‘윗분들’의 몽니라고 표현해도 좋을 판결문 해석 덕에 야근으로 고생하는 검찰 실무자와 그 빈틈을 찾아 검증해야 하는 취재진 간의 허허실실 말씨름의 한 토막이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2019년 11월 검찰을 상대로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후 3년 7개월 만에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서, ‘비밀의 금고’가 열렸다. <뉴스민>은 7월부터 대구·경북 검찰의 비밀 금고를 검증하는 공동취재사로 함께 하게 됐다. 뉴스민이 대구·경북을, 부산은 <부산MBC>, 경남은 <경남도민일보>, 충북은 <충청리뷰>, 인천은 <뉴스하다>가 맡고, 뉴스타파가 서울, 경기를 포함한 공동취재사가 없는 지역을 커버한다.
전국 65개 검찰청 중 대구·경북에만 대구고등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을 포함해 서부, 안동, 경주, 김천, 상주, 의성, 영덕, 포항 등 8개 지청까지 10개 검찰청이 있다. 권역별로 놓고 보면 가장 많은 검찰청이 자리한 곳이 대구·경북이다. 그 덕에 뉴스민은 공동취재사 중엔 뉴스타파 다음으로 많은 검찰청을 찾아가 자료를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를 제외하면 상시 취재 인력이 5명에 불과한 뉴스민은 자료 수령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1’의 여유도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수령해야 할 자료는 방대하다. 뉴스타파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정보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후 2019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도 추가 공개 청구했다. 2017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6년 4개월치 자료가 공개되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를 ‘윗분들’의 판결문 해석에 따라 공개해야 하는 검찰청은 ‘보여줄 수 없는’ 정보를 가리는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지역 한 검찰청 관계자는 “낮에는 본 업무를 하고, 정보공개 자료 준비는 야근을 통해 준비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양해를 구했다.
각 지역 검찰청은 야근을 통해 마련한 자료를 쪼개서 공개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지청은 한 번에 6년 4개월치 자료를 공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검찰청이 2~3차에 나눠 자료를 준비 중이다. 여기에 “영수증 원본을 보관하다 보면 잉크가 휘발된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판독 불가능한 영수증에 대한 원본 대조도 해야 해서, 한동안 뉴스민은 대구·경북 이곳저곳의 검찰청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할 처지다.
이미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듯 이렇게 확보한 자료도 문제가 많고 부실하기 그지없을 테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문제가 ‘범죄 수준’이라고 꼬집는다. 2017년 특수활동비 자료 일부가 무단으로 폐기된 의혹이 있고, 용도와 목적에 어긋나게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정황도 확인되며, 멀쩡히 있는 자료를 법원에는 없다면서 속이려 한 시도가 있었고, 마땅히 공개해야 할 영수증 정보를 일부 가리고 공개하는 일까지. 어쩌면 이 모든 게 지역 검찰청의 한 관계자가 말한 것처럼 ‘위의 다른 생각’에서 비롯된 일 일거다.
‘윗분들’의 다른 생각이 낳은 폐해는 기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검찰청 직원들이 하지 않아도 될 야근을 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이며, 전자파일로 요청한 정보를 굳이 복사 및 인쇄해서 주겠다고 해서 쓰는 비용, 정보공개 수령자가 반복해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수고와 시간적·금전적 비용, 뉴스타파가 진행한 소송 비용까지 고려하면, 적지 않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투여되어야 한다. ‘윗분들’이 쓰는 ‘검찰의 비밀 금고’를 열어 그 비밀을 시민에게 공개하는 일이 이렇게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다.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현재까지 대구·경북 검찰청의 자료 수령을 위해 지역 10개 검찰청 중 8개 검찰청을 방문했다. 개중에는 벌써 2번을 찾아간 곳도 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각 검찰청을 오간 거리는 현재까지 600km가 조금 넘는다. 대구와 서울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대구와 서울을 왕복해야 검찰의 비밀 금고가 온전히 열릴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가 더 나은 ‘검찰 금고’를 만드는데 일조하길 기대한다. “이렇게 한 번 하면 좀 더 개선되지 않겠어요?”라던 한 검찰 관계자의 말처럼.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