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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오늘(7월 31일)은 ‘씨부려대구 시즌2’ 첫 번째 모임입니다. 시즌1 만큼이나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을 모실 예정입니다. 오늘 참석자는 김나빈(분홍돌고래도서관), 김인혜(더폴락), 박경순(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법률원), 성민아(정의당 대구시당), 이미애(민주노총 대구본부)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김보현(뉴스민)입니다. 첫 모임 주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몸도 풀 겸 각자의 활동을 소개할 수 있는 주제로 정했습니다. 돌아가면서 간단한 소개부터 해볼까요?
김나빈: 올해 1월부터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분홍돌고래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중간지원조직, 시민단체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연극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재밌고 좋아하는 걸 따라가다 보니 두서없는 커리어를 갖고 있습니다.
이미애: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담당 업무는 선전이고요. 단체에 일이 많고 다들 바쁘다 보니 정리와 기록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교육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혼란스럽고 궁금한 게 많은 매일이지만 그냥 부딪혀 보고 있습니다.
박경순: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노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업으로는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일을 하기 위해 노무사 자격증을 땄는데, 생각했던 것과 일이 너무 달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대구FC 팬이라 토요일 경기를 보고 여기저기 들렀다 바로 오게 돼서 유니폼을 못 갈아입었어요. 가리기 위해서 민주노총 조끼를 입었습니다.
미애: 모든 정체성을 때려 박았는데. (웃음)
경순: 처음 노무사가 됐을 때 노동조합에 TO(정원)가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대구에서 워밍업을 하다 대구청년유니온 활동을 시작해 위원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작년 초 시작했으니 올해 말 임기가 끝나요.
성민아: 정의당 대구시당 총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사무처장, 그리고 저까지 셋이 일하기 때문에 잡다한 일을 모두 합니다. 이 외에도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공동체 이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김인혜: 대구에서 독립출판서점 ‘더폴락’을 11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간 거점인 북성로에 대한 책 등 지역에 대한 책을 많이 만들었어요.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 같은 독립 문화를 주제로 하는 책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거나, 독립 관련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주로 ‘독립’과 관련된 것들을 계속해 왔어요.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시대, 우리의 고민
보현: 시즌1은 주변 친구들과 모여서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며 씨부린다는 느낌으로 진행했는데요. 시즌2는 일부러 잘 모르는 분, 서로가 잘 모를 것 같은 분들로 섭외했습니다. 주기적으로 모여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귀하잖아요. 솔직한 말로는 품이 많이 들죠. 그만큼 관계의 확장도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주제는 ‘최근 나의 고민’입니다. 단체의 고민을 이야기해 주셔도 좋아요.
미애: 민주노총은 워낙 정치나 경제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갈수록 객관적인 조건이 어려워지다 보니 기존의 거버넌스(협의체계)가 무너지는 걸 경험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후퇴를 일선에서 계속 확인해야 하는 거죠. ‘그게 문제니까 이걸 하겠다’고 하는 조직이지만 저연차로서 돌파구가 안 보여서 늘 고민이에요.
최근 고민은 이거에요. 민주노총, 한국노총처럼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한 가지 멤버십을 가진 단체가 드물죠. 그런데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0%밖에 안 되거든요. 여기에서 괴리가 생기는 거죠. 민주노총에 뭔가를 바랄 땐 ‘너희가 최대 노조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낼 땐 ‘너희가 무슨 대표성을 갖냐’고 말하거든요. 둘 다 맞는 말인데 때론 마음이 상하죠. 패턴화 되어 있는 것도 알아요. 내가 건강하고 의지가 있을 땐 투지로 밀어붙이지만 번번이 깨지고 잘 안될 땐 ‘우리가 진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곤 해요.
보현: 박 노무사님은 어떤가요? 같은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으니 비슷한 고민을 하실 것 같아요.
경순: 사실 법률원은 노동조합의 주된 방향을 정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은 아니에요. 말 그대로 법률적인 부분을 서포트하는 조직이라 외부자적인 시선도 있죠. 최근에는 노조든 대중이든 법률적 판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게 고민이에요. 옛날에는 법률원을 두고 ‘설거지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대응하는 거지, 우리(법률원)가 선제적으로 법률적인 대응을 노조와 같이 하진 않았어요. 노조가 실력 행사 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는 법률적 정보를 갖고 수습하러 들어가는 구조였던 거죠.
요즘은 법률원이 나서서 판단을 해주길 바라는 것도 같아요. 같이 하기를 원하기도 하고요.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주체들이 계속 물어봐요. 안 싸우려고 하는 거죠.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우리가 안 된다고 얘기해주길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속상하죠. 현장에서 투쟁하는 건 제가 아니니까 더 말할 순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윤석열 정부, 홍준표 시장 임기가 시작하고 이런 분위기가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죠. 우리 쪽에서 법적으로 대응하면 한계가 더욱 명확해지는 상황이고 그러다 보니 노조의 대응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아직 그걸 잘 돌파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민아: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고 있죠. 홍준표 시장이 행정소송을 걸면 우리도 대응을 하기 위해 고발하고, 법정으로 사안이 넘어가면서 시간도 길어지고요.
경순: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과 법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의 구분이 깨지고 있는 것 같아요. 법적 판단을 받는 영역이 커지고 있는거죠. 최근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잖아요. 이것도 헌법재판소에 맡길 게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물 수 있도록 의회나 우리가 움직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법원이 우리의 정치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들에게 판단을 계속 위탁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보현: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는 부분도 있겠죠. 자본이나 권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언론의 구조적 문제도 있겠고요. 뉴스민은 좀 결이 다른 측면에서 재정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합니다. 직원인 기자들이 돈을 벌어오지 않다 보니 계속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어느 단체나 ‘재정의 어려움’
민아: 맞아요. 제가 거친 모든 단체의 고민은 결국 ‘재정’이였어요.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지속가능성’입니다.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재정, 하나는 새로운 사람의 유입입니다. ‘조직이 돌아가는가, 확장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요인이죠.
서른을 넘어서부터 늘 조직의 재정을 담당해서 돈 굴러가는 게 잘 보여요. 시민단체에 있을 땐 공모사업이 중요했어요. 특히 인건비가 배정된 공모사업이 중요하죠. 정당은 후원금뿐이거든요. 후원금 외에는 소득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게 없어요. ‘후원금은 세액공제가 됩니다’라는 이야기밖에 못 해요. 국회의원 한 명 당선되는 게 제일 좋죠. 국회의원 수에 따라 당에서 내려오는 금액의 규모가 달라져요.
앞서 제가 활동한다고 말한 두 단체도 마찬가지에요. 회원들의 회비가 주 수입원이거나 혹은 공모사업, 교육 등을 통해서 마련하죠. 그래서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재정적 돌파구를 그쪽에서 찾으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쉽진 않았죠. 시민사회단체가 하는 일과 사회적 기업이 하는 일은 다르니까요.
그렇다면 재정 돌파구는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까요? 이게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정해지기 때문이기도 해요. 최저임금을 주기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다음 세대가 들어와서 일을 하려면 적어도 최저임금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이 임금을 받으면서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더더욱 어려워지니까 사람으로도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거죠.
활동당원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또 다른 고민이에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중단 캠페인을 하려고 전체 문자를 돌려도 결국 찍어서 연락해야 나와 주시는 거예요. 예전처럼 선의에 기댈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거죠. 생업이 바빠서, 효능감을 못 느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어쨌든 대면해야 활동이 확장되는데 그 인원이 객관적으로 줄어드는 걸 느껴요.
보현: 활동을 지원하고 활동가를 지원하는 관의 시스템 자체도 작년 선거를 치르고 많이 변했잖아요. 당장 현장에선 어려움을 피부로 느낀다는 이야기를 여럿 들었어요. 나빈 님이 일하고 계신 분홍돌고래도서관도 중간지원조직이잖아요. 어떤가요?
나빈: 분홍돌고래도서관은 존폐의 위기에요. 올해 초 입사하면서 ‘내년에 당장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대구시와 3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그 시기랑 딱 맞게 떨어진 거죠. 면접 볼 땐 ‘일단 괜찮습니다’라고 했지만 일하면서는 불안해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있는데 도서관이 낼 수 있는 성과라는 게 많지 않잖아요. ‘정성적인 성과는 어떻게 내지, 정량적인 성과는 어떻게 내지’ 고민하면서 처박혀 있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예산도 대폭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하던 사업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여러 사업을 통합시키는 경우에 대해 들었어요. 사업을 유지하는 매니저는 물론, 사업 참여자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에요.
인혜: 더폴락은 마을기업이에요. 사업 초에는 인건비 지원을 받은 적도 있는데 지원 사업을 점점 줄여왔어요. 처음엔 단위가 작은 지원사업도 신청해서 받았는데 대부분 인건비를 못 받고 했어요. 에너지가 고갈되더라고요. 지원사업을 받았어도 결과물을 잘 남기고 싶어 우리 돈을 투자한 경우도 있었어요. 지금은 매년 하는 독립출판축제 정도만 예산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것도 어쨌든 인건비를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거죠.
먹고사는 일에 대해선 항상 고민이에요. 10년 정도 하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일이 들어오는 것에 따라 월 수익의 기복이 있죠. 책 자체는 수익률이 낮은 상품이라 서점을 운영하는 것만으론 쉽지 않아요. 책을 제작하거나 행사를 여는 등의 방법을 고민해요, 저희가 만드는 책은 대부분 소수자, 지역의 이야기에요. 페미니즘이나 청년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운영하는 저희부터 구매하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 대부분이 청년 세대죠.
최근에는 솔라시 등 시민사회·노동 영역의 모임에 나가면서 ‘어떻게 접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거든요. 씨부려대구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그 일환이죠. 독립출판 형태로 책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대구시나 행정에 대한 불만’부터 ‘정치적인 부분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걸 함께 쓰며 각자가 풀어내는 삶의 고민에 대한 접근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애: 더폴락에 대해 항상 궁금했어요. 독립서점 부흥기가 지나갔잖아요. 더폴락은 그 흐름에서 선두주자이자 버티고 살아남은 존재로인데, 부담은 없나요?
인혜: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어요. 독립문화에 관심이 많았죠. 오래 살아남은 이유도 결국 ‘재미’인 것 같아요. 누가 의미에 대해 물어보면 저흰 항상 ‘재밌어서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독립출판이 되게 빨라요. 어떤 이슈든 가장 이야기가 빠르게 나오는 곳이죠. 다른 한편으론 최전선에 있기도 해요. 이슈들이 빠른 만큼 민감하기도 하거든요. 그걸 보는 재미와 그런 작가들을 만나는 즐거움, 사람들에 둘러싸여 세상을 읽는 맛이 있어요.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보다 훨씬 잘하는 팀이 많아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거든요. 처음 마을기업을 시작했을 때 대구에 있는 서점과 책 제작자들을 불러서 한 달에 한 번씩 노는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2015년쯤을 기점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됐던 것 같아요.
#연대의 방식이 바뀌었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들’
보현: 최근엔 어떤가요? 앞서 확장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하셨는데 업계 내부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요.
인혜: 이런 이야기가 꼰대 같이 느껴질까봐 걱정되긴 해요.
미애: 꼰대 중에 제일 열려 있는 꼰대가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혜: 확실히 연대감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달까요. 우린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축제를 열 때도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어요. 후발주자는 사람을 모으기 힘들 수 있잖아요. 새로운 서점이 많이 생겼는데, 생각보다 잘 모이지 않아요. 쭉 연락을 돌려보면 필요성을 못 느끼는 팀이 많아졌어요. 나오는 팀도 물론 꽤 있지만요. 예전보단 수가 많아지면서 각자의 방식이 생기는 거라 이해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예전과는 활동하는 방식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진 것 같아요. 물론 문화 내 다른 영역까지 일괄적으로 읽을 순 없어요. 독립영화 쪽은 여전히 끈끈하고, 그런 지역 내 관계망이 좋은 성과로 나오고 있죠.
민아: 공감해요. 여유 자체가 없어진 느낌을 받아요. 후원 회원이 줄어드는 걸로 가장 실감하거든요. 장기로 후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단체에 친구가 있다거나,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장기적으로 후원하기보단 특정 이슈가 있어서 단기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청년들을 상담하는 과정에 물어보면 ‘튀르키예 지진’에는 후원하지만 장기적으로 단체에 후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느슨한 연대를 강조한단 말이에요. 느슨한 연대, 가벼운 관계가 최근 사회운동 트렌드처럼 얘기되는데 실제론 느슨한 연대도 잘 안 돼요. 지구의날에 한 번 나오는 것도 어렵죠.
나빈: 개성이 중요해지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술이 구축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끈끈하든 느슨하든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나 가치, 그것이 낼 수 있는 폭발적인 성과를 경험하지 못했을뿐더러 별로 바라지도 않는 것 같아요.
인혜: 한편으론 특정이슈에 대해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경우를 많이 보잖아요. 방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미애: 변화하는 분위기를 봤을 때 ‘사람들이 (연대를) 안 하는 심정을 알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소속된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부담감, 활동의 피로감도 느끼고요. 같은 목표를 갖고 모이지만 길어지거나 잘 안됐을 때 책임을 누가 질 것이며, 그 책임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그렇다 해도 그걸 감당하는 게 윤리적으로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드는 거죠.
경순: 비슷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요. 최근 대구청년유니온에서 프리랜서를 조직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모임에 당사자들이 많이 나와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느끼거든요. 다만 주제에 따라 확연하게 온도 차가 있어요. 친목모임으로 시작하면 10명, 20명씩 모여서 활동에 의욕을 보이는데 그 안에 사업 목적에 따른 교육을 집어넣거나 문제의식을 나누려 하면 거부반응을 확 보이는 거죠. 코로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글을 써 표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같고요.
민아: 먼저 인정합니다. 전 꼰대가 되었습니다.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에 일부는 동의를 하는데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거예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고 거기까지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들이 강하다보니 ‘댓글 열심히 달아 줄게’, ‘서명해 줄게’ 정도에 멈춘 게 우리가 돌파해야 할 지점이 되어 버렸어요.
예를 들어 볼까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잖아요. 누군가는 국회든 청와대든 가서 하지 말라고 얘기해서 압력을 줘야 하는데, 그건 인터넷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걸 최근 느껴요. 이걸 아무도 안 할 순 없으니 누군가는 새빠지게 하는거에요. ‘아무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노총이 모든 투쟁을 정지하면 어떻게 될까?’ 한 번씩 상상하거든요.
보현: 민주노총은 최전선에서 그 온도 차를 느끼시나요? 전 박근혜 탄핵을 외치던 광장에서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지금은 굉장히 조용하다고 느껴져요.
민아: 전 반대로 윤석열 퇴진을 열심히 말하는 게 약간 의아하거든요. ‘민주주의로 뽑았는데 마음에 안 들면 다 퇴진시켜야 하나?’란 의문인 거죠. 문재인 퇴진 운동 하셨던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시킨 경험이 엄청나게 큰 거에요. 전 그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를 보지 않고 무조건 탄핵을 외치는 건 되게 위험하다고 봐요.
경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박근혜 탄핵 때도 사실 헌법재판소 판단으로 탄핵시키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하야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갔어야 한다고 봐요. ‘무조건 끌어내’가 답이 아니잖아요.
민아: ‘2017년의 촛불과 코로나의 경험이 우리 사회를 굉장히 많이 변화시켰는데 그걸 일선에 싸우는 사람들이 못 따라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사실 일반 대중이 관과 싸울 일은 잘 없잖아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혹은 내가 꼰대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죠.
(2편에서 계속)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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