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시장 취임 후 정책토론청구 제도를 유명무실화한다는 비판을 받던 대구시가 ‘불법허위서명’ 문제를 들고 나왔다. 대구시는 최근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청구된 8개 정책토론청구 서명자 7,310명 중 5명의 ‘무더기’ 불법서명 사례가 확인됐다며 수사 의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대구시, 정책토론 무더기 불가 통보···제도 유명무실화 우려 현실화(‘23.7.7))
11일 오후 황순조 대구시 기획조정실장은 언론브리핑에 나서서 시민단체 정책토론 청구인 서명부를 조사한 결과 명의 모용 의심 사례가 49건 확인됐고, 그중 5건은 명의 모용 사실이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황 실장은 명의 모용 외에도 ▲중복서명 ▲기재오류 ▲주소지 불일치 등이 다수 확인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실장에 따르면 대구시는 지난 5월 중순경 최종 접수된 8건의 정책토론청구 서명부를 3단계에 걸쳐 검증했다. 정책토론 청구자 대표로 나선 시민단체는 각 주제별로 700~1,200명 가량의 서명을 받아 대구시에 제출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전체 서명 인원은 7,310명이다.
대구시는 1단계로 주소, 성명 및 기재 사실 불명확 사례, 중복 서명 사례 등을 찾았다. 1단계 점검에서 대구시는 주소·성명 및 기재 사실 불명확 사례 1,125명을 확인했고, 1명이 여러 안건에 중복 서명한 사례도 3,589건 확인했다.
대구시는 2단계로 구·군 협조를 받아 서명한 이들이 실제 기재한 주소에 거주하는지를 확인했고, 972명의 주소지가 불일치했다. 황 실장은 이를 두고 “가짜 주소지”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3단계로 대구시는 1, 2단계를 통해 거르고 남은 1,635명에게 우편을 통해 실제 서명 여부를 확인했다. 대구시는 실제 동의사실이 없을 경우 달구벌 콜센터로 신고하도록 안내했고, 실제로 49명이 전화를 해왔다.
황 실장은 “44명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인 누군가 대신 서명을 했는지 알 것 같아 관계 없다’고 했고, 5명은 동의한 사실도 없고, 직접 서명한 사실도 없으므로 누군가 모용한 사실이 확실하다며 위법 사실을 확인해 줬다”고 설명했다.
황 실장은 “형법 231조 사문서 위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 등에 해당할 수 있어 위법 사실에 수사기관으로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3단계 검증 끝에 서명인 7,310명 중 5명 모용 의혹 확인
0.07% 수준에 불과한 의혹으로 언론브리핑까지 나선 대구시
홍준표 이후 토론 하지 않는다는 비판 무마 의도로 풀이
대구시는 시민단체의 정책토론청구가 불법적 하자가 여럿 확인돼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강조했지만, 대구시 설명에 따르면 실제 확인된 불법적 요소는 7,310명 중 5명(0.07%)의 명의 모용 문제 뿐이다.
1단계 검증 단계에서 확인된 정보의 불명확 사례나 중복 서명은 불법적 요소가 없다. 황 실장도 ‘중복 서명이 금지되어 있느냐’는 물음에 “금지는 아니”라고 답했다. 2단계에서 확인된 ‘가짜 주소지’ 역시 위장전입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오기 등 단순 착오일 가능성이 더 크다. 서명인이 정보를 허위로 쓰더라도 서명을 받는 이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런 사례는 수기 서명을 받아야 하는 주민 참여 제도의 맹점이기도 하다.
정책토론을 주도한 시민단체가 청구인 기준 300명보다 2~3배 많은 700명~ 1,200명의 서명을 받은 이유도 오류가 확인될 것을 염려한 탓이다. 오류가 확인되는 서명을 제외해도 기준 서명을 채우기 위함인데, 이번에도 대구시가 문제로 지적한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8개 토론청구 모두 청구요건(300명)을 충족한다.
대구시도 실제 미개최 결정 이유는 서명 문제가 아니라 정책토론청구 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진혁 대구시 정책기획관은 “주로 국가가 정책으로 반영해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나, 시가 진행 중인 정책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 행정적, 재정적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대구시가 이번 정책토론청구 과정에서 큰 불법적 요소가 확인된 것 마냥 언론브리핑까지 나선 건 홍 시장 이후 토론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대외적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토론 청구에 나선 시민단체 등을 ‘불법’을 일삼는 단체로 낙인찍어 미개최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대구시는 지난 3월 정책토론청구 서명 인원을 기존보다 5배 더 늘리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면서도 제도를 활용하는 단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당시 대구시가 마련한 입법예고문 개정 사유에는 ‘특정 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내용이 담겼다가 빠졌다. (관련기사=‘특정집단 주장’, ‘행정력 낭비’···대구시, 정책토론제 유명무실화 시도(‘23.3.20))
이날 브리핑에서 황 실장도 “시민단체들이 동인청사에서 시위를 할 때도 주제는 다르데 오는 분들이 거의 비슷하다. 그 이야긴 시민단체가 연대해 서로 동의 서명을 한다는 반증”이라며 “대구시가 보기엔 일부 특정 시민단체가 연대해 상호 도와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시민단체가 청구 서명을 연대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같은 날 오후 홍 시장은 SNS를 통해 “떼법 근절 차원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청구한 정책토론회 개최 서명부 진위를 자체 조사해본 결과 7,310명 중 1,635명만 서명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8건 중 1건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기각하면서 이는 참여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의적 행정 방해 사례로 추정돼 경찰에 수사의뢰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할 일 없이 시정 방해만 일삼는 이런 사람들은 철퇴를 맞아야 다신 그런 짓 못할 것”이라며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범죄 행각에만 나선다면 그건 시민들의 이름으로 징치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