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원 플러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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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현재까지 4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와 그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또 다른 기록을 갖고 있는데, 역대 대통령 부부들 가운데 그들에 대해 씌어진 글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백악관을 차지한 부부들 중에 루즈벨트와 엘리너에 대한 연구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생산물을 낸 부부는 2년 10개월이라는 짧은 재임에 그쳤던 피츠제럴드 케네디와 재클린 케네디 부부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는 분량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퍼스트레이디가 맡았던 역할과 영향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루즈벨트와 엘리너는 역대 대통령 부부 가운데 최초의 ‘공적 부부’로 평가되며, 엘리너는 남편의 행정부에서 공직을 얻은 최초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민방위국 위원이라는 미미한 공직보다 중요한 것은 엘리너가 대통령을 위해 수행한 여러 순시 활동과 남편에게 미친 정책적 영향이다. 루즈벨트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실업 상태에 있으면 독립심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고, 현대 산업국가의 정부는 굶주린 사람에게는 음식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직업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그는 대통령 재임 첫해인 1933년에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New Deal)정책을 내놓았는데, 연구자들은 남편과 공유했던 엘리너의 이상주의와 간섭이 뉴딜 정책을 입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미 카터의 아내 로절린 카터는 남편이 조지아 주지사였을 때부터 정신건강에 주안점을 둔 활동을 했고, 그가 대통령이 되자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 명예의장으로 국회에서 증언을 하고 법안과 예산에 관여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퍼스트레이디의 공적 활동에 결벽증을 보였다. 1978년 6월, 로절린이 대통령 대신 혼자서 카리브해 7개국 순방을 했을 때 여론은 영부인의 자격을 캐물었다. 케이티 마튼의『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이마고,2002)의 한 대목이다. “로절린이 맡은 역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그럴 자격이 없으며, 대통령의 전통적 내조자라는 그녀의 이전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는 선출된 대통령의 선출되지 않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도 없는 퍼스트레이디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아내는 현모양처를 연기하는 것으로 유권자에게 안정감을 선사해 왔으나, 빌 클린턴과 그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유세 기간 내내 ‘일석이조’라는 선전 문구를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실제로 힐러리는 클린턴이 당선되고 나서 수석 보좌관들의 참모회의에 참가하여 지시를 내렸고, 의료보험 개혁을 담당할 의료정책위원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워싱턴 정가와 언론에서는 ‘공동 대통령’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국민은 대통령 부부가 공사를 구분할 것을 주문하고 감시까지 한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28대)부터 조지 W. 부시(43대) 사이에 주목할 만한 12쌍의 대통령 부부와 퍼스트레이디를 분석한 케이티 마튼은 그런 기대는 비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유권자들은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믿지만 부부를 떼어낼 방법은 없다. 주문과는 반대로 “공과 사를 혼합하는 일은 대통령 부부들에게 있어 일종의 규칙이었다. 남편이 대통령이면 아내도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출마에서부터 인사, 정책 등 국정의 가장 중요한 조언을 아내에게 구한다. 최고 권력자에게는 친구가 없으며, 아내는 그 어떤 비판을 하더라도 해고되지 않는 유일한 대통령의 측근이다. 때문에 대통령의 역량이 부족할수록 결점을 보완해줄 배우자의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엘리너·로절린·힐러리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공직까지 수행하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퍼스트레이디는 모두 민주당에서 나왔다. 공화당 대통령들의 영부인은 아동·교육·문화·도서 등 젠더화된 영역에 얼굴을 내비치며, 낙태 문제에서 남편과 이견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 발언보다는 침묵을 택한다. 공직에 나서지 않을 뿐 이들 또한 용의주도하게 인사 결정에 개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