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년째 은둔 청년 지원한 복지사, “대구도 체계적인 시스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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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상 정책은 주로 일자리와 연관된다. 공공‧민간기관이 예산을 지원해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지자체 입장에선 정확한 수치로 실적이 확인되고 예산 소진이 쉬우며, 무엇보다 생색 내기 좋다.

최근 서울‧경기‧광주 등에선 일자리 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청년들’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 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가정환경, 학교폭력, 취업 실패 등 다양한 문제로 방 안에 고립된다. 눈에 보이지 않아 발굴이 어렵고, 찾아내더라도 다시 방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꾸준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대구시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 정책이 미미하다. 실태조사 계획도 없다.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청년베이스캠프에서 위기청년 상담·지원 업무를 올해로 5년째 이어가는 김희숙 사회복지사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어서 생활 전반에 대한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얼마나 많은 청년을 취업시켰는가’라는 고용 중심의 논의로 국한된다”며 기존 청년 지원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관련기사=은둔형 청년 1만 명 추정, 대구시 ‘실태조사도 아직’(‘23.04.06.))

▲22일 오후 1시, 김희숙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를 달서구 송현동에 위치한 청년베이스캠프에서 만났다.

지난 22일 오후 1시, 김희숙 사회복지사를 달서구 송현동 청년베이스캠프에서 만났다. 월성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이 공간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 복지관은 중장년층 이상을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데다, 청년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이미지도 있다. 월성종합사회복지관이 청년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한 이유다.

김 복지사는 “구‧군마다 청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달서구에도 최근 생겼다. 하지만 대구시 청년센터, 구‧군 청년센터에선 일자리 연계와 취미 관련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비교적 외향적인 친구들이 많다. 에너지가 약한 친구들은 한 번 가보고 다신 안 가게 된다. 이런 친구들이 여기로 온다”고 설명했다.

은둔청년 지원, 민간에서 공공으로 넘어왔지만 아직 시범사업 단계
범죄사건 발생했을 때만 반짝 관심,
“은둔하지 않아도 범죄 저지르는 사람 많아”

김희숙 복지사는 ‘월성복지관 청년베이스캠프’에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저활력 위기청년 발굴 지원체계 구축사업’을 운영했다. 대구에선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안심제1종합사회복지관, 남산종합사회복지관 3개 기관이 운영했다. 청년을 상담해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연계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 게 주 업무였다.

김 복지사는 사업을 운영하면서 기존 청년 대상 사업이 품지 못하는 위기청년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 월세‧공과금이 밀려 살던 집에서 퇴거 위기에 놓인 청년들은 행정복지센터에 가도 ‘청년이라’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김 복지사는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최소한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대구시에 역설했다. 지난달 대구시는 신복지사각지대 지원사업 중 일부 시범사업으로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쓸 수 있는 예산 3,000만 원을 배정했다.

“신복지사각지대 지원사업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위기 상황에 내몰린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실상 대구의 공공 영역에선 유일한 사업이다. 은둔‧고립 청년을 정확하게 타겟팅한 사업은 아니다. 이들을 상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에 연계하는 것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산 사용과 별개의 업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은 예산과 1명의 담당자, 시범 사업이라는 불안감 등의 열악한 상황에 따라 직접 발굴은 꿈도 못 꾼다. 한 명, 한 명의 사례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지자체가 예산을 내리면서 원하는 실적과 거리가 먼 업무이기 때문이다.

겨우 발굴한 사례의 청년이 다시 방으로 잠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김 복지사는 8개 구·군과 복지관 등 60개 유관기관에 공문을 보내, 위기청년을 연계해 달라고 요청해둔 상태다. 공문을 확인한 담당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위기청년을 발굴해 연락을 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시스템이 없고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니 단편적인 사업으로만 근근이 유지된다. 그럼에도 김 복지사는 다양한 은둔 청년을 만났고 변화도 지켜봤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현장에서 은둔 청년을 발굴하기는 쉽지 않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나 가족의 관심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나마 접근이라도 가능하다.

“기초생활수급이 끊겨서 찾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이 건강이 안 좋으니 다시 수급을 할 수 없겠냐고 문의하셨다. 아들을 만나보니 190kg으로,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정신을 놓을 만큼 건강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가족도 본인도 문제 해결을 원치 않았다. 주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댓글을 달며 사회와 소통하는, 은둔 청년인 사례였다. 이 친구처럼 가족과 사회가 방치하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사례들을 계속 만난다”

▲청년베이스캠프의 청년 공간. 김희숙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힘으로 사회에 나오기 힘든 청년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는데 센터에 나오니 숨이 쉬어진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는 청년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복지사는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에너지가 약하고 비자발적이며 사람들과 관계를 어려워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오랜 시간 교류하는 이가 없다가 또래와 소통하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삶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변화하기도 한다.

이들에겐 일자리를 찾거나 관계망을 넓히는 게 중요하지 않다. 김 복지사는 “방 안을 벗어난 것만으로 이 친구들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단계별 상담과 지원이 필요하다. 자신의 힘으로 사회에 나오긴 힘들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살피는 게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사건을 다루면서 언론은 ‘은둔형 청년’을 호명한다. ‘은둔형 외톨이 범죄’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은둔형 청년을 낙인 찍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복지사는 “정유정 상황이 은둔의 형태일 뿐 은둔 청년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언론에서 학창 시절부터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취업이 어려웠다는 내용을 봤다”며 “(정유정 처럼)졸업 후 사회로부터 고립되어도 청년이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주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례 강의를 들은 적 있는데 너무 부러웠다. 저활력 청년, 위기청년, 비구직 니트 청년과 소통을 위해선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담당자 역량으로만 업무를 수행하기엔 소진과 이직률이 높다. 사업의 지속성도 떨어진다”며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 무엇보다 청년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대구시에 적극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을 당부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