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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편에서 살펴보았듯 국회 주최 ‘500인 회의’ 선거제도 공론조사의 다수 의견은 소선거구제였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도농복합 선거제도를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맞든 틀리든 간에 시민 패널들은 소선거구제를 대표성이 강하고 책임을 물어 심판하기 용이한 제도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이번 공론조사의 한 가지 결점을 짚을 수 있다. 절대다수제(결선투표제 또는 선호투표제)에 대해서는 설문을 실시하지 않은 것이다. 절대다수제 없이 소선거구제는 대표성과 정당성을 굳힐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로 한 번 투표해서 1등을 바로 당선시킨다.
‘한 번에 1등’했지만 유권자 다수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면?
단순다수제는 유권자 과반의 승인을 얻지 못해도 당선될 수 있다. 가령 2022년 6월 대구 중구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임병헌 의원은 당시 22.39%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보다 더 낮은 득표율로 당선되는 것도 가능한 것이 단순다수제다. 만화가 굽시니스트는 2012년 시사주간지 시사IN의 ‘본격 시사인 만화’에서 ‘전여옥 전 국회의원이 후보 난립 속에 12.8%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가상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중대선거구제는 여러 성향의 유권자를 대변하는 취지기 때문에 당선자 한 명 한 명의 득표율이 높지 않아 보여도, 당선자들 득표의 총합이 크고 사표 발생률이 낮다면 오히려 대표성을 살릴 수 있다. 반면 소선거구의 한 명뿐인 당선자가 낮은 득표율로 당선되면, 유권자의 불복 심리가 커지고 당선된 의원도 활동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 같은 절대다수제의 실시 필요성이 크다.
민주주의 선진국 중에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프랑스(하원의원선거와 상원의원 선거 일부)와 호주(하원의원 선거)다. 그런데 프랑스와 호주는 비례대표가 없는 전면적 소선거구제 국가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같이 실시하는 나라에서 절대다수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는 절대다수제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독일 선거제도에 잔존한 불합리성은 ‘절대다수제’ 부재
비례대표제 수용한 거대정당이 절대다수제는 수용하지 않은 탓
독일은 지역구 의원은 소선거구제에서 선출하되, 전체 의석은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서 배분한다.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보정용으로 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의회내 정당 구성만 보면 지지율과 의석수간의 비례성이 완벽하게 맞춰진다.
그러나 독일의 지역구 선거 결과만 보면 공정성이 관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2021년 독일 주류 보수정당인 기독민주연합–기독사회연합은 지역구 299석 중 47.82%인 143석을 확보했지만 기민련–기사련의 지역구 득표율은28.5%에 불과했다. 과반 유권자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지역구에서 한 번 투표에 1등만 하면 승리하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가 낳은 현실이다.
독일은 왜 소선거구제이면서도 절대다수제가 아닌 단순다수제를 실시하게 되었을까. 독일은 한때 대선거구–비례대표제 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은 비례대표제가 나치의 토양이었다고 판단하고, 자국이 실시하던 소선거구–단순다수제를 독일에 관철하려고 했다. 보수정당인 기민련–기사련은 이를 찬성했지만,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삼고 있던 진보정당인 사회민주당이 강력히 반대했다. 소수정당으로서 소선거구제에서 생존이 어려운 자유민주당도 비례대표제 유지론에 섰다. 결국 독일 정치세력은 ‘지역구는 소선거구제–의회 전체적으로는 비례대표제’라는 절충안, 즉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
여기서 독일 기민련–기사련이 절대다수제까지 수용하기는 어렵다. 절대다수제가 기민련보다 사민당에게 유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정치구도를 보라. 결선투표제에서(혹은 선호투표제 마지막 단계에서) 제1당, 제2당인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이 맞붙게 되면, 녹색당, 좌파당 등의 표가 사민당에게 가기 쉬워 최종적으로 사민당에게 좀 더 유리한 구도가 된다.
독일에 절대다수제가 실시되지 않는 건 단순다수제가 적합한 제도라서가 아니다. 어느 정치체제에서나 그렇듯 선거제도는 당파간 타협의 산물이다. 절대다수제까지 포함되는 선거제도는 독일에서 현재까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또 지지율과 의석수간의 비례성을 최대한 올려줄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의 비중이 크지 않다면, 지역구에서라도 절대다수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 유권자가 두 번 투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불평등 만들 수도
선호투표제: 모든 후보자에 대해서 선호 순위 표기하기 어려워
현실적인 방안으로 ‘1~3순위 선호투표제’ 목소리도
절대다수제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1차투표에서 후보들을 걸러낸 다음 최종투표를 실시하는 결선투표다. 결선투표제의 전형적 모델은 1차투표에서 1, 2위를 가려내 결선에서 유효표의 과반수를 얻은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프랑스 하원의원선거는 또다른 결선투표 법칙이 적용된다. 1차투표에서 총투표수의 과반을 얻더라도 총유권자수의 25% 이상을 득표하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다. 당선자가 없으면 총유권자수의 12.5%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2명만이 아니라 3명 이상도 결선투표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다수제의 또다른 유형은 ‘선호투표제’다. 결선투표의 최대 단점은 유권자가 2번(내지 여러 번) 투표장에 가야 끝까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유권자, 그 사이에 투표장에 가지 못할 사정이 생긴 유권자에게 불리한 제도로 불평등성을 안고 있다. 결선투표율이 예선투표율보다 낮을수록 유권자들에게 저항감을 안겨다줄 소지도 있다. 이와 달리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한 번만 투표장에 가면 된다. 선호투표제는 ‘즉석 결선투표제’라고도 불린다.
선호투표제는 투표지에 오른 n명의 후보자에 대해 유권자가 1순위부터 n순위까지 기표함으로써 이뤄진다. 유권자들이 1순위로 누구를 선택했는지를 가리고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면서 1차 개표를 마친 다음, 최하위 후보를 1순위로 가리킨 유권자들이 다음 순위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가려 통과 후보 각각에게 표를 넘겨준다. 그렇게 해서 또 그중 최하위가 가려지면, 그를 탈락시키고 그 표가 차순위로 누구를 지목했는지를 확인해 또 다른 후보들에게 넘겨주는 식이다.
선호투표제에서는 1차 개표에서 최하위만 면하면 최종 당선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가령 5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는데, 1차 개표에서 4위를 한 후보가, 2차 개표에서도 4위를 면하고, 3차 개표에서도 3위를 면하면, 2명이 맞붙는 최종 개표에 오를 수 있고 거기서도 이기면 당선된다. 결선투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개 1, 2위만 결선투표에 진출시키는 제도에서는 5명 중 1차투표에서 4위를 하는 수준으로는 당선이 불가능하다. 비유하자면 선호투표제는 ‘가을 야구에 진출만 하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는’ 제도이고, 결선투표제는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면 우승할 수 없는’ 제도이다.
선호투표제에도 단점은 있다. 후보자수가 늘어날수록 유권자의 고민이 가중되거나 유권자가 무성의한 투표를 할 공산이 크다. 3명이 후보일 때 1~3순위를 지목하는 것과 10명이 후보일 때 10순위까지 분별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필자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1~3순위 (제한적) 선호투표제를 제안한다. 3순위까지 지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3순위까지 지목하기 어려워하는 유권자도 있겠지만, 1순위나 2순위까지만 표기한다면 그것을 유효표로 하면 된다.
제한적 선호투표제는 결선투표제의 효과를 온전히 살릴 수는 없다. 모든 후보의 순위를 표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종개표 결과에서도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권자가 2회 (이상) 투표장에 가는 것이나 후보자수에 맞춰서 순위를 일일이 표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1~3순위 투표는 이론적으로는 차선책이면서 현실적으로는 최선책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회도서관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김종갑 박사(정치학)가 이 제도를 주창한 바 있다(참고 자료).
절대다수제, 소수정당의 지분 보장하지 않지만 독자 완주 기반은 돼
다양성과 공정성 위해 필요한 제도… 거대정당이 방해할 명분 없어
한국에서 아직 절대다수제가 실시되지 않은 것은 거대양당의 욕심 때문이다. 절대다수제는 비례대표제와 달리 소수정당의 의석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전면적 비례대표제에서 20%를 득표한 정당은 의석의 20%가량을 가진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 20%를 득표한 정당도 모든 지역구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결선에서 패배하면 단 한 석도 못가져갈 수 있다. 이런 정당은 선호투표제에서도 최종개표까지 살아남지 못하거나 최종개표에서 지면 의석을 못 가져간다.
(이렇게 본다면 절대다수제가 정당 난립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단견이다. 일정한 선을 돌파하지 못한 정당은 의석을 낼 수 없기 때문이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해당 정당은 더 큰 정당으로 흡수되거나 해산 또는 소멸하는 수순을 밟기 쉽다. 절대다수제를 도입한 나라에서 정당이 난립한다면, 그 주요 원인은 선거제도가 아닐 공산이 크다.)
다만 절대다수제에서는 소수정당이 독자 완주할 수 있는 넉넉한 기만이 마련된다. 가령 소선거구–단순다수제에서 A당이 45%, B당이 43%, C당이 12%를 얻었다 치자. 또 C당 유권자들 다수가 A당보다 B당에 우호적이라고 치자. 이 경우 C당 관계자들은 선거 직후 사무실 전화선을 뽑아둬야 한다. ‘C당 때문에 A당이 이겼다’고 항의하는 B당 유권자들이 득시글거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려고 ‘될 만한’ 거대정당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많다. 소위 ’사표 심리‘다. 소수정당은 갈수록 불리해진다.
절대다수제에서는 소수정당도 마음놓고 완주할 수 있거니와, 유권자 다수가 승인하지 않거나 나아가 비토하는 후보 및 정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시나리오도 막을 수 있다. 다양성과 공정성 관점에서도 필요한 제도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같은 정당이 이를 막아설 명분은 없다. 특히 중대선거구제를 결사반대하며 소선거구제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최소한 절대다수제를 도입하는 데는 협조해야 한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