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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또 다른 ‘우크라이나(들)’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부 쿠데타가 터졌다. 문민정부의 실세였던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정통 정부 대표자들은 모두 체포 및 가택 연금되었고, 집권당이던 NLD(민주주의민족동맹)는 군부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해산되었다. 미얀마는 지난 20세기 후반 내내 그랬던 것처럼 다시 군부독재로 회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얀마의 시민들은 쿠데타에 맞서서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건 저항을 시작했다. 처음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로 맞섰고 군부의 유혈 진압에 대항해 무장투쟁으로 전환해 소수민족 반정부세력과 연대하며 게릴라전으로 불씨를 이어가는 중이다. 벌써 2021년 3월 쿠데타 이후로 투쟁은 만 2년이 넘어선 상태다.
우리는 종종 1987년 6월 항쟁과 2016-2017년 ‘촛불혁명’ 성과에 도취되어 독재를 물리치지 못한 타국에 대해 낮춰보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사정을 파악해보면 미얀마 시민들이 우리 못지않게 더 오랜 기간 굴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87년 한국의 민주화에 용기를 얻은 미얀마 시민들은 총칼에 맞서 이듬해 ‘8ㆍ8ㆍ8ㆍ8투쟁’을 통해 군사정권 수장을 몰아냈고 1990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마치 12.12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5월 광주 판박이 마냥) 군부의 재차 쿠데타에 밀려나고 만다. 이때부터 아웅산 수치와 NLD를 중심으로 지난한 투쟁이 이어진다. 2007년에는 불교 승려들이 결합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비록 독재정권을 몰아내진 못했지만 거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부담을 느낀 군사정권은 2010년부터 점진적 민주화 제스처를 취한다. 여전히 군부가 권력의 핵심은 놓지 않으면서도 투쟁을 진화하기 위해 일종의 민-군 권력분점 형태를 제시한다. 그 결과가 2021년 쿠데타 직전까지의 NLD 중심의 민간정부였다.
하지만 여전히 온갖 기득권을 움켜쥔 채 배후로 잠시 물러난 군부는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불러온 로힝야 탄압 과정에서 미온적인 민간정부에 불만을 품고 재차 쿠데타를 감행한다. 민간정부는 군부의 눈치를 보면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일관했고, 시민들의 기대는 점차 환멸로 변해갔다. 그렇게 민주화 세력이 분열된 틈을 놓치지 않은 군부였다. 그러나 허약한 정부는 쉽게 무너졌지만 한계가 있을지언정 극악한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해온 시민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현재의 내전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가 나날이 늘어가는 데 반해 국제사회의 관심은 1세계 바로 옆에서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렇게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은 홍콩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 외면당해온 전철을 그대로 따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도 (홍콩과 아프가니스탄이 무관심 속에서도 여전히 저항하는 것처럼) 미얀마 시민 역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머나먼 외국의 민주화 투쟁을 강 건너 불구경 노릇하듯 ‘타인의 고통’으로 단정해버리는 우리의 선진국 놀음이 스스로 눈과 귀를 덮어버린 것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사자들은 우리의 무지와 외면이 낳은 고립 속에서도 희생을 감내하며 싸움을 이어간다.
◆ 우리 곁의 이웃이 담아낸 미얀마 민주화의 꿈
그렇게 외면당하고 있는 미얀마 내전이지만 21세기 글로벌 지구촌 시대인지라 그렇게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우리들이 피해갈 순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시민군의 고단한 분투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된 군사정권이 갖은 술수를 부리면서 독재를 이어나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행태가 보도되곤 한다. (그 와중에 무기장사에 눈이 뒤집힌 한국의 방산전시회에 군사정권 관계자를 초청하는 부끄러운 사건도 얼마 전 뉴스에 등장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의 후안무치함에도 시민들은 큰 도움은 못 줄지언정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조금만 입장을 고민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힘이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멀리 떨어진 외국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들 곁에도 적지 않은 미얀마 시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만 우리들에게 미얀마 시민이 아니라 그저 이주노동자 혹은 결혼이주여성 또는 난민 신청자 등등의 다양한 호명으로 불리는 것뿐이다. <지금은 멀리 있지만>은 우리 주변 곳곳에 침투(?!)한 미얀마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기획이다. 감독이 따로 표기되어 있지만 제작은 개인 작업이라기보단 미얀마 민주화 투쟁을 지원하려는 활동가들의 미디어팀 형태로 이뤄진 흔적이 역력하다. 여기에 지역의 한국인 활동단위가 조력하는 공동창작 방식을 취한다.
15분 남짓한 단편 다큐멘터리의 전반적인 구성은 도입부에서 초반부까지는 쉽게 예상하는 것처럼 분량과 주제에 맞춘 전형적인 규격을 따르듯 보였다. 한 미얀마 여성의 단편적인 지역 체류기가 시작된다. 고향에서 맛보던 신선식품이 한국에선 너무 비싸다는 푸념 같은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지만, 이윽고 그와 병행해 미얀마 쿠데타 이후 상황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진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대개 이주노동자로 간주되는) 미얀마 시민들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바라보는 현재 고국의 상황이 해설된다. 그와 함께 대구경북 지역 내에서 이들이 힘닿는 한 펼치는 지원활동이 실제 실천하는 현장영상을 배경으로 언급된다. 3D업종 제조업에 종사해 땀 흘려 번 월급에서 그들은 5만 원, 10만 원씩 각출해 매월 활동자금을 후원하고 있었다. 비싼 물가의 한국생활에서 한 푼이 아쉽고 쿠데타 이후 더 열악해진 고국의 가족들도 부양해야 할 이들로선 상당한 부담과 각오일 테다.
그러나 마치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자신들도 소작농 신세인데도 힘닿는 한 독립군을 지원했던 우리 선조들처럼 그들의 표정은 결연하다. 자신들은 한국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살고 있다며, 고국에서 체포된 이들이나 산속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상품화된 서구 다큐멘터리에서 연출된 장면과 차원이 다르게 화면 속 인터뷰 상대들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그런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안타깝지만 이미 다 끝난 일 아닌가, 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며 그들을 외면하는 자기합리화를 일삼아온 우리는 부끄러움에 처하고 만다.’
◆ 멀리 떨어져 있는 자의 슬픔을 온전히 전하다
하지만 본 작품의 효용은 그런 계몽적 의도로 그치지 않는다. 시장에서 채소 값을 흥정하고 거처에서 고향의 음식 먹방을 선보이던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내면을 휘감은 분노와 불안의 덩어리를 온전히 끄집어낸다. 그는 떨리는 가슴으로 스스로의 배덕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미얀마에 있던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해 겪게 된 체포의 기억이 쏟아져 나온다. 본인과 주변에 거듭되는 탄압과 그에 수반되는 공포에 대해 토로한다. 결국 신변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한국으로 피신하게 된 사연은 우리의 지난 20세기 민주화운동가들과 별 다를 바 없다. 미얀마 시민들이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통하는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한국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날마다 그는 다른 각도의 불안과 수치심에 휘말렸다고 진술한다. 자신은 어느 순간부터 안전한 한국 환경에 안주하며 다른 한국인들처럼 미얀마 상황을 멀찍이 거리를 둔 채 ‘관전’하고 있지 않나 하는 회의감이 주인공을 몰아세운다. 자신이 인터넷과 유튜브로 접하는 미얀마의 현재 투쟁 상황이 오히려 자신과 고국의 거리감을 벌리는 게 아닐까 하고 그는 두려워한다. 자신의 지금 행태가 그저 배부른 투정이 아닐까 번민한다. 감추고 싶을 자신의 내면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진솔함이 화면을 메운다.
그렇게 전환된 주제는 우리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현대 한국의 민주화투쟁 역사와 기억에 맞닿는 경지에 도달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행보에 대해 부끄러워하다 합리화하길 거듭하며 정신적 방황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런 방황조차 고국에서 목숨을 건 채 매순간 싸우는 이들에 비하면 사치라며 치열한 내적 투쟁을 벌인다. 주인공이 결국 당도한 다짐은 과거 엄혹했던, 그러나 이제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체감하지 못하게 된 한국현대사 야만의 시대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그 시절에도 ‘결정적 순간’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신념에 의해 싸우던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다수는 망설였고, 겁이 났고, 비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 소품 같은 작업은 그 시절 다수였던 이들의 상처를 건드려 헤집는다.
우리는 모두 당시 앞장서 싸우며 자신을 희생했던 이들에게 부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공은 부채의식을 용기로 변환시켜낸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도피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곳 실정에 맞춰 할 수 있는 싸움을 수행하겠다는 결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주인공의 내적 방황이 변증법적 결론을 도출하는 순간, 그동안 그를 괴롭혀온 지극히 인간적인 번뇌는 주인공의 투쟁을 지탱하는 연료로 전환되는 순간이 찡하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작은 기적이 <지금은 멀리 있지만>을 보던 이들에게 전이되기 시작한다.
◆ 속편이 예정된 프로젝트처럼, 우리 무관심에 불씨가 켜지길
영화 속 주인공의 정신적 방황과 의지의 귀결을 응시하는 가운데, 관객은 문득 깨닫게 된다. 영화 속 미얀마 시민들과 그들이 펼치는 소박한 민주화 지원활동 일체가 모두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이 고민을 쏟아내는 작은 거처도, 인터뷰에 응한 지원활동가들의 공간도, 그들이 소박하게 미얀마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온 거리도 모두 대구경북 지역이라는 게 눈에 확 들어오게 된다. 이 순간 미얀마의 민주화투쟁은 저 멀리 국제뉴스 지면이 아닌 바로 우리 이웃들의 절박한 현안이 되고 만다. 우리가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있지만, 자꾸 현실을 부정하며 곧 떠날 존재로만 치부하는 멀리서 우리 곁에 스며든 이방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만 이백만이 넘어선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다양한 사연이 우리들 일상 바로 곁에 있으며 남의 일로만 끝나지 않고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실감이 뒤따른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이소와 온라인에서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만 국경을 횡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만리타향에 온 이주노동자의 존재감이 아니더라도, 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을 통해 세계의 시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저 주가나 코인 가격만 연동되는 게 아닌 셈이다. 그러기에 지구 반대편 타인의 고통은 곧 우리에게 (시차는 좀 있겠지만) 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편의적으로 외면하는 우리의 방관은 결국 순망치한으로 돌아올 결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지금은 멀리 있지만>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지만 10여 분에 불과한 단편 하나에 모든 내용을 눌러 담을 순 없다. 하지만 단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은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을 압축하고 있다. 게다가 흔히 ‘지역영화’라는 개념이 갖는 협소함을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던지는 순기능 또한 더해진다. 바로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웃들의 사연이 ‘일국적인 차원’을 초월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렇게 굳이 해외로 나가거나 거창한 컨퍼런스를 개최하지 않더라도 접근 가능한 ‘연대와 교류’의 가능성이 열린다. 지역 내 미디어 활동그룹의 지원으로 완성된 본 작업은 어쩌면 새로운 ‘로컬리티’의 발견으로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작품정보>
지금은 멀리 있지만 Although Far Away Now
2022|한국|다큐멘터리|16분|전체관람가
제작 R.A.M(Rise Again Myanmar) 미디어팀
연출 흐뉸
도움 성서공동체FM
2023 11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폐막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