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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밝은 모습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딸이기에 엄마, 아빠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진심으로 꿈꾼 우리 재희야. 너의 인생에서 권력과 부는 맨 아래 순위라고 이야기하던 네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생활도 사치라던 너를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지만, 너를 아는 많은 분과 함께 추모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필요할 때 도구로만 쓰이는 것 같을 때가 싫었다는 재희의 얘기를 여기 계신 분들께서 꼭 새겨들어 앞으로 재희 같은 사람들이 소외되는 심정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달라. 재희의 좋은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해달라” (故 박재희 활동가 아버지 박순철 씨)
22일, 故 박재희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49재가 경북 영천 청통추모관에서 열렸다. 49재에는 박 활동가 유족,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 박 활동가의 지인들이 함께해 엄수했다. 49재는 민중의례, 추도사, 추모사, 추모공연, 가족 인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임재현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추도사에서 “경산자립센터 야학 활동을 하면서 인권 운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 재희가 함께 활동하면서 내가 부족한 것을 늘 채워 줬다. 좀 더 도왔어야 했는데, 나 힘든 것만 생각하고 돕지 못했다. 재희는 티를 내지 않고 늘 긍정적이었다. 웃음 속에 힘듦이 있다는 걸 몰랐다”며 “박재희 몫까지 활동하겠다. 소중한 박재희 활동가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배예경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재희 씨와 10년 가까이 함께했다. 재희 씨는 인권침해나 불합리한 일을 두고 보지 않았다. 시설과 싸우며 고소·고발도 몸소 진행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재희 씨가 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나눴다면 하는 후회도 한다. 너무 많은 일에 몰아세우지 않았나”라며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일을 혼자 해내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죄스럽다. 재희 씨를 보내고 싶지 않아 모였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하지만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재희 씨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힘을 모아 시설 학대와 인권침해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박재희 동지는 철두철미하고 완벽하게 일을 하려 했었다.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감, 시설에서 계속되는 비리와 학대를 넘길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박재희 동지가 나섰다”며 “박재희 동지의 방송국 인터뷰를 들었다. 서울 지하철 타기 투쟁을 설명하면서, 경북 장애인 상황과 개선점도 이야기했다. 너무 안타깝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전장연도 동지가 못다 한 인권 운동을 함께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미자 성락원 인권침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손 한번 내밀지 못했다. 사랑을 받기만 했다. 잠바에 구멍을 수선할 시간이 없었는지, 테이프로 붙인 걸 보고도 보듬지 못했다. 장애인 가족이 동반자살 하는 아픔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보듬어 주자고 했었다. 활동가인 재희 씨가 이렇게 힘들었을 줄은 저도 몰랐다”며 “손잡아 주지 못한 죄인이라 아무 말도 못 하겠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재희 씨 무게를 한 번이라도 같이 짊어지려고 노력하지 못한 거 같고, 죄인인 거 같다. 이제 멀리 떠났지만, 그곳에서는 사랑받고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영희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는 “재희는 언제나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했고, 인권과 탈시설을 위해 앞장섰다. 이타심은 컸지만 큰 소리 내지 않고 참는 성격이었다. 과도한 역할이 큰 짐이 되지 않을까 염려됐다”며 “외롭게 분투하는 동안 우리가 버팀목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저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섣부른 말로 그의 삶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망자의 옳았던 신념을 이어가고, 센터가 재개하는 데에 이사들과 사무국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49재에 앞서 구성된 故 박재희 활동가 추모위원회에는 임재현 등 개인 51명과 13개 단체가 참여했다.
박 활동가는 2013년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상근 활동가를 시작으로 경북 지역의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 해결에 힘썼다. (관련 기사=[떠난 사람] 박재희, 변방의 장애 운동 뛰어든 활동가(‘23.4.30))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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