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2월 31일, 홍콩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앞두고 상실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센트럴 거리를 걸었다. 그때 내 관심사는 허름한 행색의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마천루 네온사인이 닿지 않는 그늘 곳곳에 쇼핑백으로 벽을 쌓은 임시 숙소와 남루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사방에 밝혀진 휘황찬란한 불빛 때문에 더욱 주목됐다. 명품매장을 지나 지하철역 쪽으로 향하자, 수천 명은 됨직한 중년 여성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있었다. 돗자리나 아무 계단에 모여 앉은 그들의 대화 소리가 떠들썩했다. 돗자리 안쪽으로 간간이 그들이 돌보는 어린 자녀도 보였다.
중국,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영국계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 홍콩이라지만, 눈길을 끌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들 중 한 명에게 어눌한 말로 물어봤다. 그들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베이비시터(가사노동자)이며, 주말마다 거리로 나온다고 했다. 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주말마다 지낼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홍콩은 법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근무 동안 고용주와 함께 거주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근무일이 아닌 휴일에는 지낼 곳이 없어 길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 보였지만, 어린이는 따분했는지 들뜬 거리에 올라 어머니 손을 잡고 번쩍이는 조형물 구경에 나섰다.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 주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법안 개정안이 발의했고, 정부와 서울시도 관심을 보이면서 난데없이 ‘월 100만 원 가사도우미’ 정책이 논란이다. 해당 법안 발의 취지에는 ①한국 저출생 문제와 여성의 경력 단절을 해결하자 ②외국인이 음지가 아닌 같은 생활권에서 일하도록 해 부정적 사회 인식을 전환하도록 하자는 말과 함께 이를 위해 ③’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자’라고 적혀 있다. 저출생, 경력 단절 해결과 같은 지당한 말과 이어지는 차별의 말의 논리적 관계가 파악되지 않는다. 그 대신 10년도 전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유구하게 ‘반값 사람’으로 불리는가.
인권, 평등, 노동권과 같은 말은 양극화, 극단화하는 시대에서 이제 허울조차 없는 말이 된 것일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결혼이주여성,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이주노동자, 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고 떼먹힌 임금을 신고했더니 도리어 ‘불법체류’ 신고로 추방되어야 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절차적 하자 없이 사원을 지으려 했는데 어느새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무슬림. 제도의 그늘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려 보도해 왔는데 이제는 대놓고 차별하겠다는 국가와 정치에는 어떤 말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선진국이라는 체면을 지키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수입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려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주면 된다. 그래야 맞벌이 부부도 믿고 맡길 것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도시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농어촌 인구감소로 인한 일손부족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 내 여성들이 무급으로 감당했던 가사노동의 가치가 한국 돈으로 월 100만 원 정도는 한다니, 그 점은 새삼스럽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