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스탕달증후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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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정신과의사 그라치엘라 마게리니는 피렌체를 방문한 관광객 가운데 방금 본 예술 작품에 대한 감동으로 자기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혼란해진 응급 환자들을 만났다. 107건의 임상 사례를 분석한 그는 1979년, 예술품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 넋을 잃은 심신에 스탕달증후군(Stendhal Syndrom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게리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예찬자였던 스탕달이 1871년에 쓴『로마, 나폴리, 피렌체』라는 여행기에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라고 쓴 것을 용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탕달에게 ‘스탕달증후군’을 일으키게 만든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한때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가 지목되었으나 스탕달이 피렌체에 갔을 때 그 그림은 로마에 있었다. 대신 떠오른 것이 산타크로체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화인데, 그 성당에는 조토뿐 아니라 치마부에ㆍ도나텔로ㆍ베네치아노 등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이 즐비했다니, 어느 특정 그림이 아니라 산타크로체 성당과 거기에 소장된 모든 작품이 스탕달의 정신적 면역체계를 무너뜨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의 그림을 보고 쓰러질 뻔 했는가를 밝히는 일은 쓸모없다. 누구의 것이 되었든 이탈리아하고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한 스탕달을 세계 여러 곳의 현대미술관으로 데리고 간다면 이 예민한 미술애호가가 다시 스탕달증후군을 경험하게 될까? 마르셀 뒤샹이 <샘>이라고 이름붙인 소변기, 체스판을 연상시키는 몬드리안과 화폭에 칼자국을 낸 것 같은 폰타나의 그림, 엘비스 프레슬리ㆍ마릴린 먼로ㆍ통조림 깡통을 복사해 놓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 앞에서 말이다. 현대미술관은 황홀을 선사하기보다 회의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현대적인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스탕달증후군은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했던 빛·상승·완벽·지복의 미에만 반응하지, 어둠·하강·미완·추악의 미를 추구하는 현대 미술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스탕달증후군은 인간은 미 앞에 취약하며 미에 반응하는 본질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 증후군은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은폐하거나 융합하기도 한다.

안토니오 타부키는『집시와 르네상스-피렌체에서 집시로 살아가기』(문학동네,2015)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영토에서 일어난 민족 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집시들이 피렌체 당국과 주민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기록했다. “장소는 어느 도로 신호등으로, 그곳에서 한 어린 집시 소녀가 자동차 앞유리 닦는 일을 하는 오빠와 함께 동전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빨간불에 멈춰선 어느 자동차에서 너그러운 손 하나가 소녀에게 예쁜 인형을 건네주었다. 파란불이 되자 자동차는 쏜살같이 출발했다. 마치 운전자가 자신의 너그러운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낀 듯 말이다. 집시 소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가슴에 껴안았다. 그 안에는 압력에 작동하는 폭발장치가 들어 있었고, 그 장치는 당연히 자기 임무를 이행했다.” 이 일은 1990년대 중반,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피사에서 일어났다. 미가 본성이라는 인간 중에서 이 뉴스를 보고 몇 명이나 혼절했는지 궁금하다.

2001년 벌어진 9·11테러를 대구 삼덕성당 뒤편에 있는 단골 재즈바에서 실시간 중계로 보았다. 방송국에서 무수히 되풀이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여주었지만, 그곳에 모인 우리는 혼절하기는커녕 단번에 그 스펙터클에 중독되고 말았다. 미에 취약한 인간 본성과 폭력에 적극적인 인간 본성이 잽싸게 융합하여 비극을 스펙터클로 변용한 것이다.

르네상스를 주름잡은 대가들의 작품은 가격이 환산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매물 자체가 없다. 손에 닿을 듯 말듯 것만이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들고 기력을 빼앗고 집착하게 한다. 그런 끝에 헐 수 있는 저금과 빌릴 수 있는 돈을 총 동원한다. 공상과 거리가 먼 실용적인 인간의 스탕달증후군은 벤틀리 신형 모델, 에르메스 백, 맥킨토시 앰프 같은 명품 앞에서 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