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어떻게 해서 종교적 충동을 갖게 되었을까. 레자 아슬란이 『인간화된 신』(세종서적, 2019)에 소개해 놓은 영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1832~1917)의 설명이 그럴듯하다. 그는 종교적 충동의 근원을 “영혼을 육신에서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믿음”에서 찾았다.
인간에게 육신과 분리될 수 있는 영혼이 따로 있다는 믿음은 어느 특정한 시대나 문화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지구의 전역에 그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은 다름 아닌 무덤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10만 년부터 매장을 시작했다. 매장은 조상 숭배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지만, 영혼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는 수고다. 최초의 인류는 가족과 친구의 시신을 매장하여 자연의 맹위로부터 그들을 보호했고, 고인에게 존경을 바쳤다. 그들은 시신을 똑바로 펴거나 태아 자세로 웅크리게 조절했고, 태양을 마주할 수 있게 머리를 동쪽으로 놓았다. 망자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믿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류는 인간에게 죽지 않는 독립적인 영혼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테일러는 “꿈과 환상”이 인간에게 영혼을 사유하게 만들었다고 대답한다. 이를테면 털가죽으로 옷을 해 입은 최초의 인간이 그날 저녁 식사로 매머드 등심구이를 배불리 먹고 나서 마른 나뭇가지 위에 엎어져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고 해보자. “꿈속에서 사실적이면서도 낯선 세계, 경계가 몽상처럼 분명하지 않은 세계, 즉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또 아버지도 좋고 누이도 좋고 고인이 된 친척을 꿈에서 마주친다고 해보자. 그때 최초의 인간은 꿈속에서 만난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들이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고 추정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이 세계만큼이나 분명히 실재하는 다른 세계에 존재할 거라고 추정하지 않았을까? 고인의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오랫동안 혼령으로 존재할 거라고 결론짓지 않았을까? 그렇게 결론지었다면,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나 누이의 무덤을 찾아가 사냥을 잘하게 해주고, 비가 그치게 해주고, 아이들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혼령에게 간구하지 않았을까? 타일러는 종교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인간은 꿈에서뿐 아니라, 깨어 있을 때도 환시와 환청을 경험한다.
타일러의 가정대로라면, 인간의 ‘꿈과 환상’이 근원인 종교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만약 꿈속에서 아버지나 누이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 난 최초의 인간이 “인간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야”라고 호들갑하며 ‘혼령’ 운운할 때, 이웃에 프로이트가 살았다면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혼령이 출연한 게 아니네. 자네의 무의식이고 소망일세.” 과학과 이성이 발달하면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종교를 믿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줄지 않았다.
기독교복음선교회는 그 좋은 이름을 두고 총재의 이니셜인 ‘JMS’로 더 유명해진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사이비 기독교 교파(교회)의 첫 번째 특징이 개인숭배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자꾸 돈을 가져오라는 것(십일조)과 교회 세습. 정명석의 성범죄는 그만의 고유한 네 번째 특징처럼 보이지만, 기성 교회에도 ‘빤스 목사’는 많다. JMS를 파면 한국 교회의 지반이 나온다.
아슬란은 이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형식적인 무슬림으로 있다가, 십 대 때 기독교로 개종하여 열렬한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종교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이번에는 다시 그가 “완전히 새로운 이슬람 종파”라고 표현한 수피즘(Sufism)에 귀의했다. 그가 받아들이고 이해한 수피즘의 핵심은 각자가 모두 신이 되는 범신론이다. 여기엔 놀라운 게 있다. 모두가 신이 되는 이 완벽한 범신론이 바로 하나의 신으로 수렴된다는 것. “신은 내가 믿는 신, 하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온갖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신은 무한히 많으면서, 그 무한한 신들이 바로 하나의 신”을 가리킨다는 지은이의 말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