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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40분이면 배기현(80) 씨의 일과가 시작된다. 4년 전부터 칠성시장 일대를 돌면서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가져다 판다. 가게 밖에 내놓은 폐지들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여서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배 씨는 “목수로 일했는데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나서 하던 일을 못하게 됐다. 아프니 다른 일도 시켜주려고 하나, 가만히 있으려니 답답해서 하게 됐다”며 “오늘처럼 따뜻한 날보다 오히려 추운 날이 낫다. 따뜻하면 경쟁자들이 더 많다”고 했다. 실제로 27일 오전,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배 씨와 같은 폐지 수거 노인 3명과 마주쳤다.
배 씨가 처음 폐지 수집을 시작할 때만 해도 1Kg에 100원이었던 것이 ‘재활용 대란’ 이후 50원으로 반토막 났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면 7,000~8,000원을 손에 쥔다. 그러니까 배 씨가 하루 종일 수거하는 폐지가 100kg가 넘는다는 말이다. 한 달 내내 그렇게 해서 배 씨가 버는 폐지 수집 수익은 20만 원 정도다. 배 씨는 “집사람이 ‘종합병원’이다. 여기저기 아파서 일을 못하고 아내 앞으로 기초 수급비가 나온다. 노령 연금이랑 이것저것 더하면 한 달 수익은 100만 원 쯤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구 칠성동행정복지센터에선
주민자치사업으로 폐지수집인에 마일리지 적립 사업
배 씨는 작년 어느 날 고물상에 갔다가 주인으로부터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폐지 가격을 더 쳐준다는 반가운 이야길 들었다. 지난해 8월부터 대구 북구 칠성동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사업의 일환으로 폐지 수집 마일리지 사업을 하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주민이 칠성동행정복지센터에서 판매 금액의 50% 또는 재활용품 교환 무게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1인당 5만 원 한도로 온누리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배 씨는 “10번 정도 왔더니 다 채웠다고 하더라. 나중에 연락이 오면 받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일찌감치 한도액을 채웠다. 지금까지 배 씨를 포함해 10명이 혜택을 받았고, 올해 관련 예산은 60만 원이다. 예산은 칠성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내놨다.
칠성동행정복지센터 측은 “현재 폐지 수집하는 분들에 대한 지원은 주로 안전 문제에만 맞춰져 있어 실제로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뭘까, 저희끼리 고민을 해서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며 “주민자치위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셔서 실행하게 됐다. 조례 제정으로 예산이 더 안정적으로 확보돼 확대 지원되면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폐지수집인 발품으로 이뤄지는 ‘자원순환’
지원 정책, 시혜적 차원에 머물러선 안 돼
배 씨와 같은 폐지수집인들의 활동은 예상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때문에 칠성동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는 사업처럼 폐지수집인들이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에 실질적으로 보상하는 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고령의 저소득 노인이라는 측면에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도 접근이 요구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지난해 내놓은 폐지수집 노인의 수와 노동실태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 1만 5,000명의 주당 총 노동시간은 31만 1,053시간으로 주당 4,731톤·연간 24만 6,023톤의 폐지를 수집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의 폐지수집과 재활용 기여율을 보면 전체 폐지 발생량의 7.9%, 전체 재활용량의 16.8%를 담당한다. 특히 주로 활동하는 곳이 도시 단독주택임을 감안하면 하루 폐지 발생량의 34.8%, 재활용량 73.9%로 더 비중이 커진다. 특히 해당 자료는 적극 폐지수집 노인에만 한정했기 때문에 실제 기여량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는 “폐지수집 노인이 폐지수집과 재활용에 기여하는 부분이 예상보다 크다. 그동안 폐지수집 노인의 사회 기여가 정량적으로 분석되지 않았다”면서 “폐지수집 노인의 지원 정책이 시혜적 차원에 머무르는 단기적 지원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환경에 직접 도움을 주는 파급효과가 큰 정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구시 정책, 대부분 ‘안전’에만 초점 맞춰
실태조사 역시 단순 숫자 파악에 그쳐
일부 자체 지원도 안전용품 추가 지급만
하지만 현재 폐지수집인에 대한 지원은 ‘안전’에 맞춰져 있다. 대구시는 지난 2020년 폐지수집인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듬해부터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안전조끼 등 안전장비 지원에 나섰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지원 사업은 안전장비 확대 품목을 늘려왔다. 배기현 씨 손수레에도 대구시에서 배포된 ‘배려, 안전’이라고 적힌 밴드가 부착돼 있었다.
대구시는 ‘재활용가능자원 수집인 안전에 관한 지원 조례’를 통해 ‘재활용가능자원을 손수레 등으로 수집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65세 이상·장애인·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등으로 지원 대상을 정했다. 지난해 실태조사에서 ▲65세 이상(981명) ▲장애인(44명) ▲구군 추천(45명) 총 1,070명 지원대상자를 파악했다.
대구시는 이들에게 야광조끼, 우의, 야광쿨토시, 베임방지장갑, 쿨스카프, 안전밴드를 지급했다. 대구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현황 조사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을 통해서 파악된 것으로, 올해도 다음 달부터 실태조사를 해서 7월 중 지원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안전용품을 수령 거부하시는 분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대구 구·군 5곳에도 별도 조례가 있다. 대구시 보다 먼저 수성구(2018)·동구(2020)가 조례를 제정했고, 이후 달서구(2021)·서구(2022)·달성군(2023)까지 차례로 조례가 만들어졌다. 수성구는 지난해 구예산 550만 원을 들여 110명에게 안전화를, 달서구는 구예산 3,000만 원을 들여 모자·마스크, 형광밧줄 등을 각각 지급했다. 동구는 별도 지원이 없고, 서구·달성군은 조례가 최근 지정돼 아직 구체적 예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폐지수집인들에 대해 안전문제로만 접근해서는 부족하다. 문제를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물론 폐지수집인들 중에서도 일부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나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건강과 빈곤 등 다양한 노인 문제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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