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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사람들은 박정희 때문에 구미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숭모관 짓는 거 찬성한다. 그런데, 1,000억 원은 너무 많다. 전부 우리 세금이다. 100억 원도 많다고 생각한다. 구미 시민을 위해서 좋은 병원을 만들거나 하는 데 더 돈을 썼으면 한다 – 김 씨(67, 송정동)
26일 오후 구미역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구미시(시장 김장호)가 1,000억 원이나 들여 박정희 숭모관을 새로 지을 계획이라는 소식에 놀랐다. 이미 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이들은 하나 같이 반대 뜻을 밝혔고, 처음 듣는다는 이들은 ‘과하다’며 ‘불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뉴스민>과 구미참여연대는 이달부터 한 해 동안 ‘구미 1,000억 희망 씨앗’ 캠페인을 통해 구미시가 밝힌 ‘박정희 숭모관 건립’ 대신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 발굴에 나선다.
첫 캠페인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제안된 주요 정책은 앞서 1,000억 희망씨앗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공개된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2개소, 100억 원) ▲공공형 실내놀이터 설치(5개소, 50억 원) ▲초등학생 치과주치의 시행(연 1억 원) ▲교복지원금 20만 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연 9억 원) 등 4가지다.
시민들은 자신에게 당장 정책 혜택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저출생 문제에 공감했고, 시민들의 삶과 괴리된 박정희 기념 사업에 난색을 표했다.
이상연(69·아포읍) 씨는 “놀이터가 많이 생겨서 애들이 놀기 좋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일행이던 문영숙(70·남통동) 씨도 “젊은 사람들이 돈 문제로 아기를 안 낳으려고 하니까, 산후조리원이 생기면 좋겠다. 여기에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더라”고 했다.
문 씨는 “(박정희 숭모관은) 시민들을 위한 건 아닌 것 같다. 역사에는 남겠지만 좀 그렇다”며 “지금도 예산이 없어서 그런데 그게 추가적으로 또 필요하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김구열(50대 중반·인동동) 씨는 “요즘 연금이나 정년 연장 문제들이 생기는데 근본적인 게 출산 문제 같다”며 “출산 부분에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정희 숭모관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 씨도 공공산후조리원 설치에 한 표를 더했다.
정재학(21·봉곡동) 씨도 공공산후조리원에 스티커를 붙였다. 정 씨는 “요즘 저출생 문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관련 복지가 좋아지고 배려를 받으면 좋겠다”면서 “(박정희 숭모관은) 안 좋게 보인다. 굳이 그걸 지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정 씨는 “개인적으로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도 쓰면 좋겠다”며 평소 불편하게 생각하던 대중교통 문제를 덧붙여 지적했다.
최근 직장 문제로 대구로 이사를 갔지만, 가족들이 있어 자주 구미에 오가는 노은숙(48) 씨는 조카들이 떠올라 교복 구입비 지원을 선택했다. 노 씨는 “부모들에게도 부담이 많이 되니까, 조카들이 그런 혜택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많이 드니까 다들 애들을 안 낳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정부에서 이런 걸 해줘야지 쓸 떼 없는 데 돈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 씨는 “박정희 숭모관 건립에 완전 반대다. 1,000억이 국민들 세금이 아니냐,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해야하지 않겠냐.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나더라”고 했다.
최근 구미대를 졸업한 최원철(22) 씨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늘었으면 좋겠다며 놀이터를 선택했다. 그는 “1,000억이나 들여서 숭모관을 짓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 돈을 들여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했다.
물론 박정희 숭모관 건립에 동의하는 이도 없진 않았다. 다만 그 역시 1,000억 원이나 들여 짓는 것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캠페인에 참여하며 교복지원금 상향에 스티커를 붙인 김 모(67) 씨는 “구미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구미가 이렇게 됐는데, 박정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나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비용이 1,000억 원이라는 이야길 듣곤 “그건 너무 많다”며 “1,000억 원이 누구 집 애 이름인가, 전부 우리 세금이다. 100억 원도 많다고 생각한다. 구미 시민을 위해서 좋은 병원을 만들거나 하는 데 더 돈을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