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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1년도 채 되지 않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20년 동안 쌓인 대구지하철참사의 추모 역사를 두고 연일 ‘순수성 시비’를 걸고 있다. 대구시가 참사 수습에 오랜시간 무능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역 시민단체가 참사 희생자들과 함께해온 세월은 10여 년이 넘지만, 홍 시장은 “이제와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정쟁화시켰다.
홍준표, 연일 추모행사 순수성 시비
시민단체·민주노총 참여 10여 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2016년부터 참석
“대구 지하철 참사 1주년을 앞두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다양한 추모 행사가 대구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유족들은 16일을 시작으로 오는 21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종교, 시민단체와 함께 각종 추모행사를 갖는다.” (2004.2.17 세계일보)
2004년 2월 17일, <세계일보>가 참사 1주기를 맞아 준비된 추모행사 소식을 전한 보도의 머리글이다. 시민단체는 이때부터 줄곧 참사 추모 주간이 다가오면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준비해왔다. 전날 <매일신문>의 보도에는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참사 1주기를 맞아 준비한 추모행사도 소개된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공공연맹 대구경북본부와 일본 철도노조 등과 함께 `철도.지하철안전을 위한 한·일공동 심포지엄’을 17일 오후6시 대구가톨릭 근로자회관 2층 강당에서 갖고 2.18참사의 문제점 및 대구시 대응 등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게 된다. ··· 민주노총은 또 이와는 별도로 오는 18일 오후2시부터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참사 1주년 집회도 연다.“ (2004.2.16 매일신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아픔을 나누는 일도 홍 시장이 대구시장 취임 이전부터 이뤄져 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대구지하철참사 추모행사에 조전을 보내 슬픔을 나눴다. 2016년에는 유경근 당시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추모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14일 기관장 회의에서 “순수해야 할 추모 행사인데,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 민주노총, 시민단체까지 대구에 모여 활동하는 것은 정치 투쟁과 다름없다”고 말한데 이어 15일에는 본인의 SNS에 또다시 관련글을 올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홍 시장은 “20여 년이 지난 대구지하철참사가 이제와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번주 토요일 열리는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에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민노총, 시민단체 등이 모여 매년 해오던 추모식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정쟁화시켰다.
또 “앞으로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만 참여할 수 있는 유가족위원회도 유가족 자격이 안 되는 분이 있다면 배제 절차를 취해 나가도록 추진하겠다”며 20년 세월 동안 갈무리되어온 희생자 단체를 다시 가르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윤석기, 대구시 풀지 못한 이면합의 문제 지적
“대구시가 불리할 때 이런 문제 들고나와”
이를 두고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장은 16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홍 시장의 이같은 발언 뒤에는 과거 유가족들과 이면합의 문제 등 대구지하철참사 진상규명과 추모사업을 두고 대구시가 풀지 못한 과제들이 배경으로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윤석기 위원장은 “대구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추모사업 이면합의”라며 “어제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보면 시민안전테마파크라고 명명돼 있는데, 2003년 당시 유족과 대구시가 추모사업에 대한 합의에는 추모공원 조성과 추모재단 설립운영이 있는데, 추모공원에는 희생자 묘역과 위령탑, 안전교육관을 구성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 대구시가 지역 주민 반발을 고려해 표면적으로 추모사업을 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진행하자는 이면합의를 제안했다. 이것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됐다. 그것이 외형적으로 갖춰진 것이 지금 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추모공원이다. 대구시가 불법 암매장으로 매도하는 수목장도 있다”며 “실제 대구시는 이면합의를 제안했고, 함께 실행했던 추모사업을 지금 와서 이면합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불법으로 암매장했다. 이렇게 매도하고 있다”고 짚었다.
윤 위원장은 홍 시장이 언급한 ‘유가족 자격이 안 되는 분’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윤 위원장은 “2003년 당시부터 대구시가 필요에 따라서 그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던 것”이라며 “참사 당시에 제가 처형을 잃었다. 절대다수의 유족이 추대를 해서 임시로 위원장을 맡았다가 다시 정식위원장을 맡았는데 대구시가 필요할 땐 저보고 부탁하고 모든 합의를 저와 했다. 그런데 본인들이 불리할 때는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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