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자료에 ‘최초’가 나오면 자세를 고쳐 앉는다. 기삿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전국 최초, 처음, 유일 같은 단어를 보면 자료를 좀 더 꼼꼼히 읽게 된다. ‘다른 지자체에서 안 하고 있는 게 맞나요?’, ‘시행 배경이 뭔가요?’ 담당자에게 전화해 추가 취재도 한다.
지난주 대구시 보도자료에는 최초가 여러 번 등장했다. ‘대구시, 어르신 무임교통 통합 지원 전국 최초 실시’, ‘대구시 대형마트 매주 일요일 정상 영업’이라는 제목의 자료다. 각각 ‘전국 최초’, ‘전국 특·광역시 최초’라는 문구가 담겼다. 기자 입장에선 분명한 기삿거리다. 자료가 메일함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쏟아졌다. 지자체 입장에선 기사화가 곧 실적이니 최초를 강조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시민에게도 좋은 일일까?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버스와 도시철도를 아우르는 어르신 무임교통 서비스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버스 무임승차 기준은 75세 이상부터 매년 한 살씩 내리고, 도시철도는 올해까지 65살 이상 무임승차 지원을 유지하되 내년부터 매년 1살씩 올리기로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7일 라디오에 출연해 “관련 문제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물음엔 “정부에서 할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정부에서 논의하기 전이지만, 대구시는 먼저 시작하겠단 뜻이다.
전국 특·광역시 최초로 대구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주말에서 평일로 변경된 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통령실이 진행한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서 불붙은 논의를 대구시가 받았고, 전국 특·광역시 최초 타이틀을 얻으며 완성 지었다. 마트노동자 3,355명은 반대 서명과 의견을 전달했지만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정의한 이해당사자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최초’가 되기 위해 마트노동자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 상인, 소상공인, 그리고 그 가족까지 정책 영향을 받는 많은 이의 의견 수렴 과정은 생략됐다.
민선 8기 들어 유독 ‘최초’가 많이 보인다. 공보물에선 지자체장의 파워, 유능한 실무진, 파워풀 대구시 같은 이미지로 연결 짓는다. 빠른 추진을 위해 가려지고 생략된 것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간다. 대구시 인근 지자체 혹은 비슷한 규모의 지자체는 오히려 좋다. 먼저 추진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대구시를 따라가면 비교적 안전할 테니 말이다. 이런 방향이라면 대구시민은 계속해서 검증되지 않은 ‘최초’를 겪어야 한다.
지자체장, 지자체 이미지가 아닌 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236만 대구시민이 중요하다면 지금 대구시에 필요한 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자세’다. 앞으로도 보도자료에 ‘최초’가 나오면 자세를 고쳐 앉을 생각이다. ‘누굴 위한 최초’인지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다. 취재는 최초에 가려진 것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