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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절 불법구금·고문 등 인권 침해를 당한 대구·경북지역 5.18유공자 7명에게 국가가 정신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10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6민사부(재판장 허명산)는 1980년 6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불법구금돼 형사처벌까지 받은 김종길(70, 당시 경북대 학생) 씨 등 6명과 故 A 씨의 유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종길 등 3명에게 각 6,244만 원, B 등 3명에게 각 2,690만 원, A 씨의 유족 2명에게 각 1,614만 원과 1,076만 원을 국가가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1980년 당시 김종길 등 경북대학교 재학생 6명과 영남대 재학생 C 씨는 “알려 드립니다”는 제목으로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 5,000부를 제작해 6월 14일 대구 시내에 배포했다. 이들 7명은 그해 9월 초 영장 없이 강제연행되어 당시 원대동 소재 안기부 대공분실에서 30일간 조사받으며 고문 및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복역하거나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후 2001년 10월 24일 포고령 위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계엄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되었고, 그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여 집회·결사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 사건 계엄포고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원고 등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길 씨는 “늦었지만 대구·경북지역 5.18유공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고문 가혹행위와 이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처음으로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를 환영한다”며 “이 판결을 계기로 5.18유공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승소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오는 13일까지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으면 이들에 대한 법원 판결은 확정된다. 원고는 일부승소 결정을 받아들여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14일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방송을 하다가 계엄군에 체포됐던 박모 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부승소 판결을 했고, 당시 법무부는 항소하지 않았다.
법무부 국가소송과 관계자는 항소 여부가 결정됐느냐는 <뉴스민> 질의에 “진행 중인 사건이라 판단 여부를 답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대구·경북지역 다른 5.18유공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전두환 정권 시절 불법구금·고문 등 인권 침해를 당한 김균식 씨 등 16명과 가족들 100여 명이 국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대구지방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한편,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는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보상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받을 길이 열리자, 전국적으로 손배소가 제기되고 있다.
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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