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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SPC그룹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혼합하는 교반기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교반기는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없었고, 2인 1조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부 조사에서 교반기 9대 중 7대에 자동방호장치가 없었던 점이 확인됐다. 부검 구두 소견에 따른 사인은 질식사였다. 자동방호장치가 있거나 곁에 작업자가 있어 빨리 조치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SPC 그룹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사고가 있었던 당일에는 대응도 없었고, 다음날엔 영국 런던에 새 매장을 오픈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사고 장소를 흰 천으로 가리고 곧장 공장 재가동을 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사고 다음날 작업중지 명령을 받자 직원들을 대구공장으로 보내 작업을 계속했다는 보도도 있다.
동네 교차로마다 하나씩 있는 ‘친근한 빵집’의 소비자보다 공감 못하는 산업재해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자주 보이는 만큼 빵을 만들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노동자를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다. 부정적 보도가 이어졌고, 불매운동 움직임이 나왔다. 노조는 회사를 비판했고, 대학가에는 비판 대자보가 붙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SPC그룹 계열사를 공유하며 불매 결의를 다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SPC그룹은 사고 이틀 뒤에야 공식사과를 했다. 허영인 회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머리를 숙였다. ‘회장님’은 작은 목소리로 3년 간 1천억 원을 투자해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부터 모든 사업장의 산업안전진단 실시와 종합안전관리 개선책을 실행하기로 했다. 안전경영위원회를 만들어 외부 관리 감독과 자문 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부정적 여론에 떠밀려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에게’ 사과하는 느낌이었다.
23일 SPC의 또 다른 계열사인 샤니 경기도 성남공장에서 40대 노동자의 검지손가락이 절단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일주일여 만에 일어난 이번 사고는 상자에 담긴 빵을 검수하는 작업 도중 플라스틱 상자와 기계 사이에 손가락이 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친 노동자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봉합 수술을 받았고, 해당 라인 작업은 중단됐다. SPC 측은 노조와 함께 안전점검 실시를 한다고 밝혔다. 샤니 대표이사와 노조위원장이 직접 병원으로 가 다친 노동자를 위로했다고도 했다. 앞선 사고와 사뭇 다른 빠른 대응이라 성난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는 듯해 보였다.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SPL공장에서 기간제 협력사 직원 손이 기계에 끼는 사고도 있었다. 그렇지만 관리자가 다친 직원을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직원들을 모아놓고 “누가 벨트에 손 넣으라고 지시했냐”는 고함을 쳤다고 했다. 회사는 비정규직을 병원에 데려갈 의무가 없다고 방치했고, 대신 노동자에게 외부발설을 하지않겠다는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이같은 이야길 전했다.
임 지회장은 몇 달 전 파리바게뜨 측에 휴게시간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그때 SPC그룹은 ‘냉정한 빵집’이었다. 이번 산재 역시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다. 바로잡을 기회는 수 없이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 및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이 있었다면,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하는 뒤늦은 가정을 하게 된다. 많은 계열사를 가진 이 ‘빵집’이 좀 더 좋은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24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SPC 계열사의 산업재해자가 581명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2018년 이후 급증한 산업재해가 노조가 설립된 이후 제대로 신고되고 통계에 잡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SPC 그룹 차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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