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힌남노로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포스코. 고로 냉입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구성원들은 복구 작업에 허우적대고 있다. 피해 책임에 대한 지난한 논쟁도 예고됐다. 포스코는 힌남노에 대비해 사상 최초 모든 고로 휴풍(생산중단)이라는 강력한 조치를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방재 조치를 했다고 한다. 피해 원인이 포스코 외부에 있다는 의미다.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에둘러 포항시를 원인으로 짚는 셈이다.
포항시 책임론은 지방하천인 냉천 정비사업에 따른 치수 실패라는 시각이다. 포스코의 대응 부족이든, 냉천 정비 사업이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원상복구를 이루면 그걸로 끝일까? 기후위기의 시대, 또 다른 태풍, 폭풍해일로 인해 다가올지 모를 위기는, 현재의 논의만으로 포스코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낳는다.
사고 직후, 책임론은 당파적 경향을 띠었다. 문제 당사자인 포스코나 포항시 입장을 제외하고 보면, 국민의힘 측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등 경영진 책임론을 부각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냉천 정비 사업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신속한 복구와 앞으로의 재해 방지를 위해서는 좀 더 다층적인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 이번 재해 원인을 따지는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요인이 있다. 바로 ‘해수면 상승’이다. 해수면 상승이 이번 피해를 더욱 키웠을 가능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해수면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포스코와 포항시의 입장대로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는데도 이번과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태풍으로 인해 유사하거나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향후 태풍으로 인한 더 큰 피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한다.
포항제철소 범람 가능성 연구 결과
“위험성 점점 커져···바닷물 범람 부지 침수와 수증기 폭발 가능성”
포항제철소 부지 범람 피해 가능성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연구가 있다. 경북대학교 건설방재공학과 석사학위 논문인 <폭풍해일 범람에 의한 제철소 복합재난 연구>(조영재, 2016)는 포항제철소 부지를 모델로 범람 해석 수치모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폭풍해일 범람 가능성을 연구했다.
범람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매개변수는 ▲폭풍해일 반복 간격 ▲한 해 발생할 폭풍해일 가능성 ▲해일 높이 ▲기준 수위 ▲지역 해수면 상승으로 설정했다. 연구자는 기준 수위를 정하기 위해 포항제철소 부지 10곳을 답사해 10곳 각각의 부지고와 해수면 차의 평균치를 구했다.
연구 결과, 포항제철소 부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빈도의 폭풍이 올수록 범람 가능성이 커졌다. 구체적으로 2066년 200년 빈도의 폭풍이 왔을 때 조위는 2.73m까지 치솟는데, 이는 2016년 10년 빈도 폭풍 시 나타나는 조위(1.42m) 대비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연구자는 2066년, 200년 빈도 폭풍 기준으로 계산한 침수 예상 부지 모형도 제시했는데, 바닷물이 범람해 부지 내 선강지역과 압연지역의 연안 쪽 부지가 상당 부분 침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논문에서 연구자는 “2016년 100년 빈도부터 범람이 시작되며, 2036년 100년 빈도부터 범람 개소가 확대된다···2056년 50년 빈도부터 고열 용융 금속 취급 개소까지 범람이 확대돼 수증기 폭발 위험 가능성이 있다”며 “2066년부터는 급격히 범람해 수증기 폭발에 대한 위험도가 심각한 것으로 구현됐다”고 설명한다.
논문에서는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따라 연안 지역 바닷물 범람을 통한 시설물의 재난 피해 가능성을 따졌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해수면 상승이 바닷물 범람 피해 가능성뿐만 아니라 하구 지역의 하천 범람 가능성까지 높이는 요인이라고도 지적한다.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 수면 위를 지나갈 때, 저기압인 태풍 중심부를 향해 수면을 끌어당긴다. 이 효과로 파도의 크기(파고)가 더 커진다. 또한 하구 지역 하천은 감조하천(感潮河川, 조석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하구 지역 하천)이다. 감조하천에서는 특히 만조 때 바닷물이 강물을 밀어내면서 내륙 방향으로 역류하는 배수(背水)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강물이 바다로 빠지지 않고 고여, 내륙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6일 냉천 범람으로 본격적인 피해가 발생한 시점은 오전 6~7시 사이인데, 이때 동해안은 만조 시기였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포항 조위관측소에서 측정한 당일 최고 조위는 138cm를 기록했는데, 이때가 오전 7시 20분이다. 포항 조위관측소는 당시 조위가 35cm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예측치보다 103cm나 높았다. 포항은 해수면 관측을 시작한 1989년 대비 2020년 연평균 해수면 높이는 13.83cm 상승해, 전국 최대 상승을 기록한 곳이기도 하다.
김수전 인하대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는 “하구 하천은 배수(背水)영향을 받는다. 간조 때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었겠지만, 만조위 상태에서 태풍까지 왔다. 태풍은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는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파도 높이 1~2m 차이가 적어 보여도 실질적으로 연안 지역에 미치는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며 “특히 감조하천은 내륙하천과 다르게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아서 수위 변동을 일으킨다. 해수면 상승은 이번 냉천 범람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냉천 범람 피해 이후 일각에서 하천 정비를 통해 보호 빈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조치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냉천이 80년 빈도에 맞춰 설계됐는데, 이걸 몇백 년 빈도로 상향한다고 해서 근본적 해결이 되는 건 아니”라며 “하천 하나가 아닌 도시계획 차원의 문제다. 장기적 관점에서 하천 재해나 해일 재해 위험지구는 기본적으로 주거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도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위험 지역 시민 교육도 중요하다. 화재와 같은 재난에 비해 수해에 대해서는 대처 방법을 잘 모른다”며 “기후변화 때문에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 태풍 강도 증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극한에 가까운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산업, 그리고 포스코
기후 위기 초래하는 조업 활동···’자승자박’
재난 넘어서려면
“탈 탄소, 산업 전환은 필연적”
포스코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이다. 포스코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포스코 재난 위기를 초래하는 자승자박의 상황에 처한 셈이다. 해수면 상승이 예견된 기후 위기 시대, “극한에 가까운 적극적 대처”란 무엇일까. 방재 대책이 벌어지는 재난 피해를 저감하는 조치라면, 방재 대책만으로는 피해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는 포스코가 이번 재난 피해를 오히려 산업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온실가스 발생을 저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철강산업 자체의 전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국내 철강산업에서 고려되는 산업 전환의 아젠다는 생산방식 전환과 제철소 구조고도화 2가지다. 생산 방식 전환은 기존 방식인 코르크,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으로의 전환이 제안된다. 구조고도화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산업적 연계 기능을 강화하자는 의견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포스코 안팎에서도 상용화할 수준의 기술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포스코가 보유한 파이넥스(FINEX) 기술은 수소환원제철에 근접한 기술이지만, 여전히 수소보다 탄소를 주로 환원제로 사용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저감에 경각심이 환기된 상황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과 이를 위한 투자는 점차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고도화와 관련해서는, 수소환원제철 공법과 탄소 저감에 필수적인 그린수소(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수소 에너지) 생산과 활용이 제한되는 만큼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이외의 생산시설은 그린수소 생산이 용이한 제3국에 집중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 체제로 가야 한다. 이는 제철소 시스템을 상당 부분 재설계하는 것”이라며 “포스코가 보유한 파이넥스 기술 자체가 획기적으로 탄소 발생을 저감하는 공법 수준은 아니다. 이를 응용해 수소환원제철로 나아가야 하고, 이제 착수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한국에서는 부지 문제 때문에 탄소를 포집해 따로 저장하는 기술(CCS)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린수소 생산도 용이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제3국에 주요 생산설비를 만드는 쪽도 방법”이라며 “철강산업이 의외로 고용집약적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전환 자체가 미칠 지역적, 산업적 여파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탄소배출권(탄소를 배출해 생산한 제품에 붙이는 관세) 부가 시 비용 상승요인이 있어 포스코로서도 심각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걸로 안다. 담당자를 만나보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보인다”고 긍정적인 평가도 했다.
끝으로 “저탄소 철강재를 요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번 포스코 수해 사고도 기후 환경, 재난 이슈인 만큼 포스코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전환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자생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철강산업 발전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경제가 한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에 의존하다가 이가 쇠퇴하자 도시 자체도 폐허 수준이 됐고, 이후 재생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철강뿐만 아니다. 독일 브레멘의 경우 조선산업에 몰두하다가 쇠퇴 후 후유증을 겪었다. 도시가 제철소에 올인하면 된다는 관점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인건비나 환경 이슈에서 후발주자에 뒤처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급화된 상품을 만들고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대체산업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논의는 터부시된다”며 “지방자치단체가 대체산업의 중요성을 공론화하는데 나서야 하는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