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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구도는 중독성이 강하다.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배하는 전개는 관객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에서 심리적 보상이나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걸까. 대중은 권선징악 논리를 믿으려 한다. 사랑, 증오, 희생, 노력, 진실, 용서, 자비, 만족 등 삶을 지배하는 이성과 감정 때문이 아니다. 체증을 풀기 위해서다.
과욕을 품은 악이 불우한 처지의 선을 괴롭히다가 끝내 선이 악을 함무라비식으로 복수한다. 응징의 플롯은 대중 소구력이 크다. 관객은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대입해 쾌감과 안정을 얻는다. 복수에서 재미를 찾지만 의미를 얻지는 않는다. 통쾌한 복수극은 시적 정의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복되는 주제는 뻔한 전개로 맥이 빠져 전달력이 약하다. 하지만 권선징악은 흥미를 보장한다.
<악인은 너무 많다2:제주 실종사건의 전말(2021년)>에서 선인은 없다. 영화 배경은 ‘악의’로 가득 차 있는 현실 공간이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이들은 ‘본래의 목적 숨긴’, 속을 모르는 사람이다. 추적을 의뢰한 제보자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만나게 된 모든 이들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위선’을 떨 뿐이다. 주인공이 정의구현하거나 악을 응징하는 결말 따윈 없다. 등장인물이 하는 말의 절반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절대선이나 절대악 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악인은 너무 많다(2011년)>는 인천에서 흥신소를 운영하는 전직 조직폭력배 강필(김준배)을 그린다. 그는 이혼 후 헤어져 지내는 딸과 함께 사는 게 소원이다. 딸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런 강필에게 이문희(설지윤)라는 여성이 거액의 수표를 들고 찾아와, 박용대라는 사업가를 미행해달라고 의뢰한다. 하지만 박용대는 실종 상태이고, 일을 의뢰한 이문희도 자취를 감추면서 강필은 곤경에 처한다. 알고 보니 강필은 과거 일본군의 금괴와 연관된 범죄에 연루된 것이었다. 강필은 이득을 얻지 못하고 칼에 찔린 뒤 칩거한다.
<악인은 너무 많다2:제주 실종사건의 전말>에서 강필은 10년째 은둔 생활 중이다. 그런 그에게 후배 병도(임정운)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건넨다. 제주도에 가서 3부 리그 축구감독 박영일(손정환)을 찾아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필은 우선 박영일의 거처를 수색하던 중 그가 승부조작에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축구선수와 학부형 사이 매춘이 벌어지는 것도 알게 된다. 강필은 승부조작과 선수와 국제학교 학부형 간 매춘, 아동성범죄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을 밝혀낸다.
영화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고전 탐정소설을 연상시키는 플롯이다. 개연성은 떨어지고 전개는 치밀하지 않다. 이유는 감독과 배우들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예산 부족 때문이다. 영화는 총 10여차 촬영으로 완성된 저예산 누아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꽤 강렬하다. 1편과 2편 모두 강필이 수상한 사건을 의뢰받아 함정에 빠진 채 혼자 힘으로 주변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나운 과거가 있는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 같은 강필은 인천 차이나타운과 제주의 밤거리에 혼자 서 있다. ‘겉과 속이 너무 다른 도시’에서 산다는 것의 고독을 시각적으로 요약한다.
풍광은 화려하지만 그 이면의 모습은 축축한 부패와 욕망의 습기로 젖어 있는 도시에서 가진 것 없고 믿을 데 없는 강필은 오늘 실망하고 내일 낙담하며 현실을 버텨낸다. 영화 속 대사처럼 ‘선량한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서 무너지고 나쁜 놈들은 뻔뻔하게 잘 산다’는 말은 공감된다.
영화는 권선징악을 원하는 이들에게선 낯설다. 현실에서 숱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승승장구하는 이들, 자신의 큰 죄는 모르고 손가락질만 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가상에서만이라도 ‘나쁜 짓 하면 벌 받는다’는 진리를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통속적이지만 제발 권선징악이 실천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복잡하게 얽힌 모순을 선과 악의 구도로 잘라내면 단순명쾌하다. 우리는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색이 분명한 권선징악의 세계를 구매한다. 하지만 이 기분이 진정한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복잡한 세상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