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 ⑦ 희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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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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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코로나19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도 방역과 백신 예방 접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사각지대로 거론된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에도 임시번호를 발급하여 짧은 시간에 백신접종을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 예방 접종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과 인도적 차원의 필요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내 보건·방역 측면의 필요성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둘 다 중요한 이유다.

지난 7월 기준 체류 외국인 수는 208만 1,350명이고, 미등록 이주민은 39만 5,068명으로 19.0%를 차지한다. 이주민 가운데 20~30대는 총 99만 9,377명으로 거의 절반(48%)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대한민국 총인구 5,157만 4,446명 중 20~30대는 1,317만 8,639명으로 전체 인구 중에 20~30대는 1,413만 7,817명으로 전체 인구의 1/4 수준(25.5%)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한국의 연령별 인구분포를 보면 2030 노동력 부족은 더 급격히 진행될 것이다.

한국이 이주민 정주를 막기 위해 고용허가제로 특정 연령대의 순환 노동력만을 수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영세한 제조업의 값싼 노동력 공급과 건설업, 3D업종이나 농어촌 지역에서의 심각한 인력난 때문이다. 결코 이주노동자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돕거나, 이를 통한 노동 송출국의 경제 발전을 도와주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을 해외에서 수입하여 사용하는 것은 그 노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한 사회적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고 또 높은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력 상실에 대한 책임까지 이주노동자 본국의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제한적으로 지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방편이다.

이주노동자가 법에 따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면 한국에서 돈도 벌게 해주고 좋은 마음으로 잘 대우 해주었는데 배은망덕하다고 쉽게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을 받고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하려는 노동력이 없어 이주노동자들을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건강한 20~30대에 비전문 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일하더라도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나, 산업재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높다. 여기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 경우 상상할 수 없는 의료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여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경우 어찌 되었건 알아서 해야 한다.

미등록을 비롯한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들을 돕기 위해 1999년부터 서울·경기에서는 사단법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이 의료공제조합으로 시작하여 건강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이런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이란 단체를 만들어, 의료 접근이 어렵고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을 돕고 이주민이 서로 도울 수 있는 공제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인도주의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이주민 노동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는 경제적 이익에 상응하는 정도의 부담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차별과 배제로부터, 타자를 수용하더라도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자국중심주의를 넘어, 궁극적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팬더믹이나 기후 위기와 같은 문제를 국제적인 연대와 상호주의가 아닌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박성민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목사

박성민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