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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하 주차장 사고 희생자 안 모(76) 씨는 국가유공자다. 해병대에 복무하는 동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 탓에 7일 오전 포항의료원에 마련된 안 씨의 빈소 앞에는 대통령 조의기가 놓였다. 대통령 조의기 안쪽으로 유족들의 통곡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씨는 사망자 7명, 생존자 2명이 확인된 아파트에서 홀로 다른 단지 내 지하주차장에 고립됐다. 유족들은 혹시나 혼자 고립된 탓에 구조가 늦어지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안 씨의 조카는 “삼촌 혼자 따로 고립됐다. 유공자 유족으로서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건은 사고이지만, 구조에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 단지는 바로 붙어 있는데 행정구역이 오천읍이다. 우리 단지는 뉴스에도 나오지도 않고, 어떻게 됐는지 소식도 듣기 어려웠다. 여기는 한 명 실종됐다고, 이쪽은 늦게 됐다”고 말했다.
안 씨 조카의 말을 듣던 안 씨의 처제(63)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안 씨의 처제는 “형부가 딱 제시간에 밥을 드시고 건강하셨다. 어제도 아침을 차려 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방송 듣고 내려갔다가 못 돌아왔다. 10분만 늦게 방송했거나 10분만 일찍 했었어도···이제 우리 언니는 무서워서 여기서 못 살겠다고 한다. 딸네 집으로 가겠단다. 돌아가실 때 그 고통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7일 새벽 동안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주민 7명의 빈소에는 비보를 듣고 찾아온 유족들로 붐볐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 중에는 해병대 제복을 입은 군인이나 교복을 입은 학생, 미쳐 신발을 털어내지도 못하고 빈소로 달려온 유족도 있었다.
사망자 서 모(22) 씨는 해병대를 전역한 뒤 부모님과 함께 거주 중이었다. 서 씨의 삼촌은 6일 저녁부터 서 씨가 갇힌 현장에서 목이 갈라지도록 구조대에 호소했지만, 결국 조카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서 씨의 삼촌은 “조카가 해병대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소식 듣고 와서 구조 좀 해 달라고 외쳐도 안 됐다. 생존 타임이 있지 않나.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조카가 결국 나오는데, 모습을 보니 살려고 용을 쓴 거 같았다.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서 씨의 해병대 전우도 빈소를 찾았다. 부사관인 그는 “보고 안 된 인터뷰는 못 하는데···(고인이) 군 생활을 너무 잘했었어요. 그것만 말씀드릴게요”라고 짧게 답했다.
사망자 중에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학생도 있다. 사망자 김 모(14) 씨 학교 친구는 오전부터 빈소에서 교복 차림으로 유족들 수발에 나섰다. 김 씨의 친구는 여러 인터뷰 요청을 받은 탓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친구가 엄마랑 그 시간에 같이 나간 건, 걔가 엄마 껌딱지라 그랬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도 수해 현장 방문 뒤 포항의료원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별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오후 5시 11분 포항의료원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5시 43분까지 약 30분 동안 포항의료원에 마련된 빈소 7곳을 모두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조문한 부부 남 모(71) 씨, 권 모(65) 씨의 한 유족(남 씨의 동서)은 “지금 너무 경황이 없다. 대통령 하시는 말씀은 잘 안 들렸다. 우리는 그 하천이 평소에도 위험했다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는 저녁 7시께 부터는 친지 방문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친지를 맞이하는 유족들은 다시 눈물을 흘렸고, 뉴스를 통해 공개된 지하주차장 내부 모습을 보면서도 울음을 쏟아냈다. 이날 빈소 입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임종식 경북교육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의 근조화환과 조의기가 눈에 띄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장례식장에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근조화환이 비치됐다가, 화환 업체 관계자가 오후 2시께 급히 한쪽으로 치우는 일도 있었다. 화환 업체 관계자는 “대통령 조의기가 오지 않아서 치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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