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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갈등을 먹고 자란다. 사회운동은 숨겨진 갈등을 드러내고, 정치는 갈등을 조정한다. 때론 사회운동과 정치가 그 역할을 바꿔 맡기도 한다. 둘 다 갈등 조정을 회피한다면 사회 갈등은 민주주의 성장과 멀어진다.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갈등에서 사회운동과 정치 모두 역할을 못 한채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먼저 대현동 한국인 주민과 무슬림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22일 대구 북구 대현동 경북대 서문 인근 이슬람 사원 공사가 재개됐다. 충돌은 없었지만, 사원 건립을 반대해왔던 주민은 현수막을 들고 공사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건축주 쪽은 법적으로 문제없는 공사를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북대 유학생을 중심으로 2020년 건축허가를 받은 이후 주민 반대가 시작돼 골조만 세워진 채 1년 6개월째 사원 공사는 진척이 없다. 주택가 한 가운데 대규모 인원이 드나드는 이슬람 사원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주민들과 종교의 자유와 재산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무슬림은 평행을 달리고 있다.
주민과 무슬림 간 갈등이 벌어지는 사이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낯선 이슬람교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겼고,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대구지역 사회단체는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원 건립을 지지하는 활동을 해왔다.
어느새 대현동은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갈등의 장이 됐다. 경북대 서문 앞 대현동은 원룸촌과 오래된 주택가, 작은 상점이 있다. 경북대 북문이 번성하기 전, 그리고 각종 동아리실이 있는 백호관에 드나들던 학생이 많던 2000년대 초반까지 이곳은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던 식당, 술집, 인쇄소가 활발히 운영됐다.
그러다 경북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국인 학생이 줄어든 서문은 공대, 자연대와 가깝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값으로 무슬림 유학생 수가 늘어났다. 대현동 주민에게 무슬림은 이방인이었다. 할랄 음식이 적은 서문 인근 식당을 드나들 일도 없고, 방값만 꼬박꼬박 내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옆 동네도 재개발한다던데, 우리 동네도 곧 재개발되지 않을까 기대도 있을 터였다. 그런데 TV에서나 보던 돔 형식의 이슬람 사원이 골목 안쪽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듣게 된 나이 육십을 넘긴 주민들은 어땠을까.
사원 건축 전까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경험한 무슬림 역시 마찬가지다. 국교가 없고, 불교 사찰과 기독교 교회가 공존하는 곳이다. 무슬림을 차별하는 유튜버는 있을지언정, 경북대를 다니며 자신을 향해 욕하는 한국인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북구청도 건축허가를 내줬다. 그랬던 북구청이 공사금지 처분을 내렸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대구시, 북구청을 포함한 행정과 정치인은 낯선 문화를 받아들인 경험이 별로 없는 대현동 주민과 종교의 자유를 확인한 대한민국 무슬림에게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 등 떠밀려 중재위원회를 열었지만, 행정과 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반대 속에 공사가 재개됐다. 국회의원, 지방의원은 이를 지켜만 볼뿐이다. 말하는 일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홍준표 대구시장도 말이 없다.
종교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회운동단체도 법적으로 문제없기 때문에 공사 강행을 지지하는 상황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사드 기지, 송전탑 공사 현장 모두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서로 다른 신념을 떠나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부족했고, 행정 결정권자의 부족한 신뢰가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대현동 주민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혐오자’라고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함께 부대끼며 문화적 차이를 좁혀 나가야 할 사회 구성원이다.
사회운동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소송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현동 주민을 만나 설득하는 조정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농민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운동가들은 농민과 노동자의 신뢰를 얻기 전까지 일부러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도 했다.
현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 양상은 최근 SNS에서 불거진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한 단순한 두 가지 해석과 똑같다. ‘왜 어려운 말을 하느냐’와 ‘문해력 저하’라는 편한 결론과 ‘이슬람은 안 돼’와 ‘낮은 인권의식’이라는 결론이 얼마나 다른가. 정치는 숨었고, 사회운동은 편한 방법을 택했다. 공사 강행만큼 편한 결론은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치와 사회운동이 본령에 충실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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