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콘크리트.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곳이라고도 한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대구경북은 타 지역 진보개혁 진영의 ‘공공의 적’이 된다. 대구경북에도 새누리당을 ‘타도’하겠다고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건 아니다. 4.13 총선 대구경북 출마자 131명 중 34명, 무소속을 빼면 17명이 그 사람들이다(3월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 기준). 가뭄에 단비처럼 대구경북 유권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내어준 ‘새누리 브레이커’들을 매일 만날 예정이다.
중남구는 대구에서 총선을 앞두고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다. 새누리당 예비후보 10명과 최창진 노동당 후보,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박창달 무소속 후보까지 경쟁이 치열했다. 신기하게도 새누리당 예비후보 10명 가운데 3명이 당에서 공천을 받았다. 중남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이인선 전 경상북도 부지사는 새누리당 수성을 후보로, 조명희 경북대 교수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19번)로 이동했다. 그리고 당초 달성군에 출사표를 던졌던 공안검사 출신이자 ‘친박’을 자임한 곽상도 후보가 새누리당 중남구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 사실 중남구 주민을 깔보지 않고서는 어려운 행보다.
이 가운데 3월 16일 후발주자로 김동열(48)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2012년 민주통합당에 합류해 19대 총선에서도 이 지역에 출마해 득표율 8.59%로 낙선했다. 당시에는 야권으로 분류되는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득표율 26.72%를 기록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김동열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담당 검사 중 1명이었던 곽상도 후보와 이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운동가의 맞대결을 자처하고 나선 김동열 후보를 만났다.
출마 선언이 조금 늦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대구에서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을 하다가 지난 총선 때 입당해서 출마했었죠. 그 흐름의 연장에 있어요. 지난 총선 때 아픔이 컸기에 가족의 만류와 더불어 용기를 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어요. 개인의 출세가 아니라, 대구의 변화,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출마를 늘 마음에 갖고 있었어요. 대구지역 시민들도 굉장히 많은 변화를 원하고 있는 만큼, 계속 부딪혀야죠.
2012년 총선 이후 4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실 정치권이 밥 먹여 주는 곳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밥벌이와 정치활동을 병행했어요. 고향인 군위에 가서 농사도 짓고, 농산물 판매도 했죠. 완전한 귀농은 아니고 ‘삼도여촌’했죠. 일주일 가운데 3일은 도시, 나머지는 농천. 그렇다고 꼭 날짜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요. 농촌 일이 바쁘면 더 오래 있고, 정치활동이 바쁘면 도시에 있고 그랬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다시 한 번 이 말을 생각했어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정치도 밭을 탓하지 않아야 하죠. 농사지을 때도 옥토를 만들기 위해 밭갈이를 계속하잖아요. 정치도 마찬가지죠. 한 번 밭갈이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야죠. 한 번 하고 그만두면 나무가 잘 자라겠습니까? 도시와 농촌을 오가면서 밑바닥 생활을 계속해왔어요. 지역위원장 활동도 같이 했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전태일, 조영래 등에 대한 역사복원을 강조했다. 같은 당 다른 후보들과 내세운 공약과 차별점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동안 한쪽 날개로 날았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한쪽 면만 보아왔기 때문이죠. 그렇게 가려져서 보지 못한 역사가 대구에는 있어요. 그런 역사를 재조명하면 대구의 이미지, 정체성을 세워나갈 수가 있어요. 대구시민으로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겠죠.
지금까지 대구시와 중구청이 근대 역사를 복원하려 한점은 인정하고 높게 평가해야죠. 하지만 가려진 사건과 인물에 대해 재조명할 때가 왔어요. 특히, 산업화의 주역은 너무 특정한 정치인으로 전도되어있는데요, 산업화는 정치지도력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헌신 때문이었죠. 이 상징적인 인물이 대구가 고향인 전태일이에요. 우리 노동자, 국민들이 해온 평가를 다시 할 때가 됐죠. 대구가 가볼 만한 도시로 느끼려면 보편적 가치를 가진 인물을 복원해야죠.?전태일역사인권노동박물관이라고 할까.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죠. 전태일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고. 이를 잘 정리하면서 청소년, 시민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태일-조영래 복원과 더불어 10.1사건 희생자 특별법 제정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구가 사실 저항적 도시였죠. 60년 4.19혁명 이전에 2.28운동이 있었잖아요. 해방 이후 1946년에는 최초로 저항적 에너지가 분출된 곳이기도 하죠.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도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세당하기 시작했죠. 대구가 굉장히 멋있고 패기 있는 도시였다는 측면에서 꼭 복원해야죠.
10.1사건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역사적 사건에 기초해 이미 법적으로 다 판명이 났는데도 이를 내버려두고 있어요. 해방 이후 최초로 일어난 저항에 대해 국가도, 지자체도 외면하고 있죠.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명예를 회복하는 ‘역사 화해’가 필요해요. 국가가 나서서 사과한다고 해야죠. 10.1사건 이후에 일어난 4.3항쟁이나 4.19 등은 다 명예회복을 했는데 유독 가장 먼저 일어난 10.1사건만 수면 아래에 있어요.
만약 당선돼 국회에 들어간다면 1호 법안으로 무엇을 발의할 생각인가.
방금 전에 이야기한 역사 복원 문제죠.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이 나를 지지할까, 이해관계를 많이 따지는데요. 정치인은 소신이 있어야 해요. 대구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어떤 일을 추진할 것인가 목표와 방향이 있어야죠. 대구가 키워준 야당 의원이 된다면 그런 문제 해결하는 게 보람이 될 것 같아요. 오랫동안 문제를 천착해왔던 유족들이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고 봐요. 그것이 대구 전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요.
시민운동 경험이 의정 활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시민운동 하면서 원폭피해자 지원활동을 많이 해왔어요. 노무현 정부 때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도 했고요. 한국과 일본이 협상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보더라도 협상이 너무 졸속으로 추진됐죠. 한일협정과 똑같이. 그런데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가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매우 많아요. 원폭피해자 문제도 있구요. 정부와 국회가 진상규명도 안 하고 사과도 안 하는데, 이런 문제를 국회가 해야죠.
출마자들도 그런 부분에 의견 표명을 해야 돼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제시 안 하면 그냥 흘러가는 거죠. 당선 여부만 중요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다면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고 봐요. 원폭피해자 문제도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 올라갔지만, 무산됐어요.
위안부, 원폭피해자 등 일제강점기 과거사 문제에 대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건가
그렇죠. 대구가 상징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원폭피해자 문제에요. 일본에 떨어졌으니 한국인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대구와 히로시마는 자매결연 도시인데요. 한국과 히로시마가 보편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나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징적으로 대구 국채보상공원에 한국인 원폭피해자 추모비를 만든다면 더없이 좋겠죠. 이는 인권문제이기도 하지만, 핵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죠. 대구와 히로시마가 동시에 비핵화 도시를 추진한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새누리당을 보면서 배우고 싶거나 빼앗아 오고 싶은 게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한계가 있다면, 역량에 맞게끔 해야죠.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셨듯이, 파도는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잖아요. 대구 민심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순항할지는 민심에 달려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