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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3일, 한국의 대중적인 진보정치인 노회찬 국회의원이 스스로 삶을 멈추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노회찬의 삶을 다룬 다큐 <노회찬 6411>이 개봉했다. 다큐 <노회찬 6411>은 노회찬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가족, 친구, 동료들을 비롯한 다양한 주변 인물을 통해 노회찬을 이야기한다. 노회찬의 마지막 흠결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 다큐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치인 노회찬의 삶에 더해 인간 노회찬의 삶을 구석구석 비춘다.
진보정치에 평생을 걸었던 정치인, 노회찬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제 현실의 ‘불평등’을 조정하는 일은 정치의 몫이다. 진보정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의 문제를, 가부장제에 가려진 성평등을, 나이에 따른 차별에 맞서 청소년 시민권을,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 인권을 말한다. 이러한 진보정치의 가치를 조직적으로 담는 그릇이 진보정당이다. 노회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바깥에 내몰린 노동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민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 활동에 한평생을 걸었다. 다큐 <노회찬 6411>은 진보정치에 평생을 걸었던 그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정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
정치인 노회찬의 특별한 점은 ‘정치’를 통해서, ‘정치’라는 현장에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주요 행위자인 ‘정당’의 중요성도 일찍 간파했다. 한국 사회 진보적인 운동권의 ‘반(反)정치주의’와 ‘정치혐오’와 달리, 그는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을 한평생 실천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진보정치를 실천하는 국회의원,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노회찬들과 함께 한국 정치의 단계를 한 단계 높였다. 노회찬 이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한국 정치를 만들어냈다. 다큐 <노회찬 6411>은 정치를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머가 있는 정치인, 노회찬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승패는 결국 쪽수로 결정된다. 소수파 정치인인 노회찬에게 다수 시민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유머’는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을까. 그는 사람들을 웃길 줄 알았고, 기득권을 풍자할 수 있었다. 그가 원래부터 유머러스했을까.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지극히 부족했던 진보정치, 진보정당의 한계를 직시하고, 짧은 시간에 다수 시민들을 설득하고자 했던 처절함이 그의 유머를 만들었다. 그가 구석구석 누빈 민생의 현장에서 우러나온 노회찬의 유머에는 눈물이 배어있다. 다큐 <노회찬 6411>은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인간미가 담겨있다.
그가 멈춘 길에서 다시 걷기
노회찬은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했다. 여기서 ‘당’은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정의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별과 불평등을 개선하고 자유, 평등, 평화,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정치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다큐 <노회찬 6411>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노회찬의 삶을 비추며,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사람들과 나누는 다큐다. 다큐의 취지대로 인간 노회찬, 정치인 노회찬을 기억하며, 그가 멈춘 길에서 다시 걷고자 한다. 먼 훗날 수많은 이들에게 다큐 <노회찬 6411>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원하며 하루하루 걸어가겠다.
*경북북부 독립예술영화 동아리 <시네마약국>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허승규(녹색당 안동시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