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하는 정은혜 작가의 성장, 경주서 영화 ‘니얼굴’ 상영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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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으로 유명해진 정은혜 작가 주연의 영화 <니얼굴>이 상영회와 GV가 열렸다. 19일 낮 12시 30분, 롯데시네마 경주황성점에서 열린 상영회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경주시지부가 주최했다. 정은혜 작가와 그의 아버지 서동일 감독, 어머니이자 출연자인 장차현실 작가가 함께했다.

▲영화 상영 후 영화의 주연이자 발달장애 캐리커쳐 작가인 정은혜 씨, 함께 영화에 출연한 정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가 참여한 GV가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영화 ‘니얼굴’은 올해 6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집에서 뜨개질을 하던 발달장애인 정은혜 씨가 경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며 사람들과 관계 맺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 작가는 ‘예쁜 얼굴도 안 예쁘게 그려주는’ 셀러로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인기를 끌며 4,000명이 넘는 얼굴을 그리고, 동료 셀러들과 소통한다.

문호리 리버마켓의 ‘니얼굴’ 부스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캐리커처 부스와 조금 다르게 운영된다. 정 작가는 그림을 의뢰한 손님 얼굴을 카메라로 찍은 뒤 인쇄한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예쁘게 그려주세요”하는 손님의 말에는 “원래 예쁜데”라며 특유의 툴툴대는 말투로 핀잔을 준다.

얼굴과 몸체의 형태를 잡고 세부적인 내용을 그리는 통상의 방식이 아닌, 머리 꼭대기부터 완성한 뒤 몸체로 내려오는 것도 정 작가 식이다. 덕분에 비율이 어긋나거나 얼굴이 찌그러지는 것조차 그의 스타일이 된다.

영화는 정은혜 작가의 일상을 특별하게 그리지 않는다.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거나 복지관에서 청소일을 하며 친구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리버마켓 셀러 동료들과 춤을 추는 날들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정 작가가 선배 작가들을 만나고 리버마켓에서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여는 모든 과정에는 엄마 장차현실 작가가 함께 한다. 그림이 그의 소통방식임을 깨닫고 더 많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엄마인 장 작가의 일이었다. 장 작가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정은혜 작가는 “동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게 즐겁다. 그림을 그리면서 시선강박증도 많이 나았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 대화에서 장차현실 작가는 “처음 은혜가 그림을 그렸을 때 이 수단으로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도록 도울 것인가 고민했다. 비장애인의 예술적 성장과 완전히 결이 다른 고민”이라며 “작가로 성장해서 그림값을 받고 다시 예술에 뛰어드는 구조로 가긴 어렵겠다고 생각해 그보단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장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집에서 잘 나가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시선강박증도 있었다. 문호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소통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장 작가는 정은혜 작가가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에 대해선 ‘관계’ 덕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관계가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동료들과 생일파티를 하고 카페를 가는 일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오는 즐거움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며 “발달장애인이 사회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 문제는 소통이다. 그들은 언어적 소통 대신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한다. 그걸 포착하고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수도권을 비롯해 경기도에서 시행 중인 권리중심 맞춤형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정 작가가 거주하는 경기도 양평에선 20명의 발달장애인 예술노동자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급여를 받고 예술활동을 한다.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의 자기 일로 돈을 버는 경험은 이들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피켓을 만들거나 거대 인형을 만들어서 지역 농성장에 합류해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서동일 감독은 “은혜 씨가 유명해지면서 영화가 덕을 많이 봤다”며 “집안에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지역사회와 관계할 수 있도록 나라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가 품어야 한다. (나라가) 당사자나 부모가 무엇을 필요해 하는지 조사하고 설계해서 여러 옵션을 제안해준다면 거리에 뛰쳐나와 삭발할 일이 뭐가 있겠나. 생애주기별, 장애유형별로 무엇이 필요한지 전반적으로 조사해서 지원 시스템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한 이유에 대해 묻자 정 작가는 “동료들과 같이 그리는 게 즐겁다. 시선강박증도 많이 나았다”고 답했다. 현재 정 작가는 전북 군산 이성당과 달력 협업을 준비 중이며 올해 연말까지 계속해서 영화상영회를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편 영화 <니얼굴>은 관객 수 1만 3,000명을 돌파하며 독립영화로선 이례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함께 발달장애인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담아낸 콘텐츠로 꼽힌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