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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집은 좁은 골목길 안 두 번째 집,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은 그 집을 철거하고 3층 양옥을 지었다. 비록 마당은 없어졌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고, 예쁜 첫 침대도 들여놓았다. 좀 더 특별함을 주고 싶어서 문구점에서 야광별 스티커를 잔뜩 사 천장에 붙여 꾸몄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밤에 불을 끄면 내 방 천장은 밝게 빛나는 별들로 촘촘했다. 그 별들을 침대에 누워 바라보며 기분 좋게 잠들곤 했다.
세월이 지나며 그 야광별들은 점차 빛을 잃어 갔고, 먼지 덮힌 마냥 뿌연 별들은 더 이상 나에게 감성적인 밤을 선사하지 못했다. 나아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별들을 잊고 살아갔다.
대학생이 되고 한창 술을 먹고 놀기 좋던 시절 어느 날, 매우 늦은 시간 귀가하며 피곤한 육체를 가누기가 힘들어 씻고 자는 걸 포기했다. 그냥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나의 육체를 던져버렸다. 그런데 내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 나의 야광별들이 처음 그 모습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며 눈앞에 우주를 만들어 냈다. 어떻게 된 걸까. 나는 그날 생애 처음으로 눈 안에 시력교정용 렌즈를 빼지 않고 잠을 청하려던 것이다. 빛을 잃은 건 야광별이 아니었다.
야광별을 붙이던 초등학생은 좋은 시력을 가졌지만, 청소년기를 거치고 자라는 동안 여러 이유로 시력이 점차 나빠졌고, 그렇게 선명하던 별은 내 눈에 점차 흐려 보인 것이다. 그렇다. 야광별은 죄가 없었다. 빛을 잃은 건 내 눈, 내 시력이었다.
한때 너무나 좋아했던 일이나 사람, 물건이 별로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좋아했던 본질조차 의심하고 소비했던 시간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그것은 때론 ‘선택’에 해당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고민 끝에 너무나 옳다고 선택한 시간이 지나 결과에 따라 잘못된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렇다면 선택하던 그 당시의 ‘선택’ 자체가 잘못인가? 아마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선택에는 죄가 없을 수도 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영화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 내레이션이 생각이 난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기 저 움직이는 것이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이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닌, 네 마음뿐이다.’
이보람 burst84@naver.com
‘공연예술가. 상세히는 서아프리카 공연단체인 원따나라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또한 타악기 연주자로 공연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젬베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명감으로 교육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살인 에너지 끝판왕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