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콘크리트.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곳이라고도 한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대구경북은 타 지역 진보개혁 진영의 ‘공공의 적’이 된다. 대구경북에도 새누리당을 ‘타도’하겠다고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건 아니다. 4.13 총선 대구경북 출마자 131명 중 34명, 무소속을 빼면 17명이 그 사람들이다(3월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 기준). 가뭄에 단비처럼 대구경북 유권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내어준 ‘새누리 브레이커’들을 매일 만날 예정이다.
구미시는 새누리당 텃밭으로 불리는 경북에서도 독특한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고, 매년 추모제를 지내는 곳이면서 동시에 대공장이 밀집한 노동자의 도시다. 또, 여러 시·군을 합쳐서 국회의원을 뽑게 된 경북이지만, 구미시는 포항과 더불어 유이하게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1야당, 제2야당 할 것 없이 구미에는 아무도 출마하지 않았다.
구미을 선거구는 새누리당 후보와 공천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한 현 국회의원만 출마했다. 다행히 구미갑 선거구는 신생 야당 후보가 나타나 새누리당 후보와 1대 1 대결을 펼친다. 전 국방부 차관 대 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대결. 백승주 새누리당 후보에 도전장을 내민 남수정 민중연합당 구미갑 후보를 만났다.
왜 출마했나?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 고향이기도 하고, 제가 출마한 구미갑 지역은 성추행 혐의로 새누리당을 탈당한 심학봉 의원 지역구이기도 해요. 그런데 야권 후보들이 아무도 나오지 못한 곳이기도 하죠. 경북에서는 구미가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기도 하고, 노동자 도시잖아요. 노동자가 많은 도시임에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죠. 그러던 가운데 민중연합당 창당을 거치면서 제가 속한 학교비정규직노조가 직접 정치를 해보자는 뜻이 모였어요. 30대고, 구미에서 태어나 초, 중, 고를 모두 구미에서 나온 제가 출마하게 됐죠.
구미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구미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나?
구미는 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성적과 학교문제에 많이 시달렸어요. 또, 아버지가 목수였어요. 비정규직 ‘노가다’로 불리는. 어렸을 적 생각하면 구미는 새까만 작업복 입은 노동자가 연상되는 곳이었죠. 그래서 저도 대학 가기 전까지 소위 말하는 ‘공순이’, ‘공돌이’ 그런 이미지를 싫어했어요. 나는 그렇게 크지 않아야겠다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노동자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구미지역을 살려온 것은 이 노동자들이었어요. 제 친구 중에서도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2~30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 많아요. 청춘을 다 바치지만, 대접은 못 받는. 이 노동자들이 바르게 대접받을 수 있는 도시가 되면 좋겠어요.
출마 전까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어떻게 출마가 가능했나?
학교에 휴직 신청을 했어요. 제가 일하는 학교에는 100여 명 가까운 선생님이 있어요. 학생들도 1천 명 정도 되고.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서무’라고 불렸죠. 그러다가 노조를 만들고 나서는 교무행정사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쉽게 말하면 학교의 온갖 잡무를 다 하는 일인 거죠. 학교에는 학교비정규직 대표로 출마하게 됐다고 하니 ‘열심히 하고 오라’며 흔쾌히 1달 무급휴직을 수락했어요.
당선되면 휴직이 아니라 사직을 해야겠다. 국회에 들어가 1호 법안으로 제출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학교비정규직 출신이기도 하니 교육공무직법을 1호 법안으로 올리고 싶어요. 19대 국회에서 김선동 의원이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발의를 했는데, 19대 국회가 끝나고 법안은 자동 폐기가 됐죠. 당에 가입하면서도 조합원들이 직접 법과 제도를 만들어 보자고 했었는데, 공공기관 정규직화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법안이라고 생각해요.
대개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역에 새로운 사업과 건물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낸다. 특정 지역에 예산 몰아주기라는 점에서 문제점도 많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한테 와 닿는 공약이 필요한 점은 사실이다.
맞아요. 다녀보면 구미는 크게 2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나는 공장 이전으로 인한 지역 경제 파탄문제, 또 하나는 부패정치에 대한 심판이에요. 구미공단에 입주한 대기업이 경기도 파주나 평택으로 이전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구미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경제파탄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도 나와요. 그래서 저는 새누리당이 말하는 ‘대공장 유치’가 아니라 ‘구미 국가산업단지 공동화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내걸었어요. 그리고 ‘갑질금지법’을 제정해서 영세상인과 지역상권을 보호할 계획입니다. 또, 구미는 대공장도 많지만 그만큼 비정규직이 많죠. 그런 점에서 ‘파견법’ 폐지 공약은 구미를 위한 지역공약이라고 볼 수 있어요.
구미 시민을 만나 공약을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특히,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어떻게 바라보나?
정치하기에는 너무 젊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새파랗게 젊은 게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 백성주 후보가 국방부 차관 출신이잖아요. 박근혜 정권에서 일한 거물급이 정치해야 구미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요. ‘큰 일꾼’이 필요하다는 논리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정치라는 게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재원을 가지고 분배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이 분배가 소수 기업인이 기업가를 강화하는 데 쓰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구미지역에서 어떤 방향으로 분배할 것인지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잘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들에게도 이 분배가 돌아갈 수 있게끔 말이죠.
새누리당이 참 가진 것이 많다. 혹시, 새누리당으로부터 배울점이나 빼앗아 오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을 한 번도 안 해봤다. 새누리당은 선거 때면 늘 이겼다. 지역조직 관리를 굉장히 잘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세력이 그만큼 안 되기 때문에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남 후보가 주로 만나는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편의점 알바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들이 있어요. 청년공약인 흙수저방지법 제정을 이야기하면 공감을 많이 해요. 반면,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공감해요. 아무래도 그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이 조금은 낫기 때문이겠죠.
대표적으로 내세운 공약 가운데 한 가지가 ‘여성이 행복한 구미’거든요. 지역 조직이 많은 것도 아니라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학부모총회를 찾아다녔어요. 30대~40대 초반의 엄마들을 만나면 불만이 많아요. 경북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기는 했지만, 보육문제가 자꾸 오락가락하니 불안한 거예요. 새누리당은 절대 찍지 않겠다는 엄마들도 있고, 병원비 국가책임제 등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이번에는 1번 안 찍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많은 거죠. 그래서일까요? 구미 지역 고교평준화 전면 시행, 고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초등 방과후 어린이 돌봄제도 강화, 남성 육아 휴직 의무제 실시 등의 공약에 대한 호응이 좋아요.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경북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야당, 특히 진보정당에서 끈질기게 지역에 정착한 정치인이 없어서다. 19대 총선에서도 구미갑에는 통합진보당 구민회, 구미을에는 통합진보당 이지애 후보가 출마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또, 민주노동당 최근성 후보가 17대, 18대 총선에서 각각 구미갑, 구미을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보정당에 보이지 않는다. 오래도록 주민들에게 인식된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맞아요. 얼마 전, 중앙당에서 구미지역 신입 당원이 가입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역에서 어떤 경로로 가입했는지 물어봤어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민중연합당은 60명이 출마했는데 평균 나이가 30대 후반에 절반이 청년 후보인 걸 보면서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분은 진보정당에 한 번도 가입한 적 없는 40대 노동자였어요. 앞으로 구미지역에서 이런 분들과 기존 활동하던 분들과 구미지역 진보정치를 위해 여러 모색을 해 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