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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공약 중심의 선거가 돼야 한다는 호소는 날마다 터지는 정치 스캔들에 묻힌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50여 일. 진영 대결만 남은 듯한 이번 대선에서 과연 정책 대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 중에는 논란이 되는 내용도, 시대착오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은 유력 대선 후보들의 정책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코스피 5000’은 가능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월 12일 경제 공약을 발표하며 ‘세계 5강의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주요 과제로 ‘금융 개혁’을 외치며 “주가지수 5천 포인트 시대를 열어젖히겠다”라고 말했다. 1월 3일 국내 주식시장 개장 첫날엔 한국거래소를 찾아 “(저평가) 원인을 제거하고 자본시장을 정상화하고 제대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 국고를 늘리는 길이고 국민들께 투자의 기회를 드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면서 “주가 조작, 시세 조종과 같은 불공정 행위를 엄단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을 들고나온 것과 대비된다.
이 후보는 청년을 향해서는 “기성세대와 똑같이 경쟁하는 실질적 불평등에 놓여있어 억울함과 배제를 느끼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청년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게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산업 육성에서 청년들에게 투자 기회를 우선 나눠주고, 수익률을 정부가 보증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또 지난 11월에는 청년의 투자가 많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1년 유예하자고 제안했고, 국회는 12월에 이를 받아들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국내 기업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문제로 지목하며 불공정행위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증권거래세 폐지 등 개인 투자자에 대한 세제 지원 ▲대주주 및 경영진 등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 제한 등 주식 시장을 위한 다섯 가지 공약도 발표했다.
하지만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의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개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9.4%였다. 국내 주식을 80조 원어치나 사들이며 역대 최대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웠던 뜨거운 분위기를 생각하면, 결과는 신통치 않다. 두 후보가 주식시장을 개혁하면 ‘개미 필패’ 법칙은 깨지기라도 하는 걸까?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실장은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시기가 도래한 상황에서 투기를 부추기고 2, 30대 청년층들의 투기를 북돋는 행위는 기만”이라고 지적하며 “당장은 표만 얻으면 되니 원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들을 뱉고 있지만, 나중에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과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홍 실장은 “주식활황은 코로나 때문에 유동성 장세가 형성됐던 것인데, 이제 유동성이 빠지는 시기여서 미국부터 시작해 통화 긴축을 하고 있다. 코인도 가치가 오르기 위해선 유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식처럼 하락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신라젠 상장폐지 사례를 들며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공방은 커질 것이고, 아무리 개인 투자자를 보호할 방안을 이야기해도 새로운 유동성 장사를 하지 않는 한 정치인들은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천만 비정규직 시대,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는 후보들
이번 대선은 특히 노동정책이 실종된 대선이라는 평이 많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월 12일 노동 관련 공약을 만들어나갈 노동정책자문단을 띄웠다. 늦은 감이 있다. 이 후보는 노동 정책에 대해선 “현 정부 노동정책과 새롭게 만들어질 노동정책 차이는 아무리 연구해도 크게 없다”라며 “현재 있는 노동 관련법만 상식적으로 지켜도 더 나은 노동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노동 기본권 확대나, 파견법·기간제법으로 확산해온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다는 말이다.
지난 1월 18일에는 300만 개 일자리 창출 구상을 발표했다. 공적자금과 민간자금 135조 원을 투입해, 디지털·에너지·사회서비스 대전환을 통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제시했다. 이 같은 대전환을 통해 쇠퇴하는 산업의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노동전환지원법’ 제정을 서둘러 일자리 전환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300만 개 새로운 일자리의 질의 문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창출 방법의 구체성도 떨어진다”라며 “일자리전환 관련해 노동자와 이야기하겠다고 하지만 대화 테이블만 만든다고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개선되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정책 수용성이 반감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 국장은 공무직위원회와 경사노위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공무직은 정규직 전환이 됐지만, 처우와 임금은 같아서 사실상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할 의지가 없다보니 매번 논의는 공회전한다”라며 “경사노위 역시 민주적 의결 기구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민주노총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거부하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사자 참여 등을 강조하며 포장하고 있는데, 민주적 기구 구실을 하려면 정확한 내용부터 제출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 부문 주요 개혁과제를 마쳤기 때문에, 노동 정책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하고 급박한 이슈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우 국장은 “개혁을 마쳤다는 건 잘못된 말”이라며 “민간위탁의 정규직화에 대해선 진전이 전혀 없었고 심각한 부정과 비리에도 정부 관리·감독이 부재해 사회서비스, 돌봄서비스 같은 중요한 노동이 소외되고 서비스 품질은 최저로 가져가는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법제화도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주요 노동 과제였지만, 추진조차 안 했다”라며 “비정규직이 904만 명까지 늘어나고, 청년 인구가 고용불안에 떨거나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있는데도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자격 시비와도 연관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시대착오적이며 편견에 휩싸인 노동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노동계와의 잦은 충돌이 예상된다. 우 국장은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탄압하는 게 기본 옵션이다”라며 “윤 후보가 당선된다면 최저임금은 동결하고, 가능한 많은 예외를 둬서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를 무력화해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대재해처벌법 폐기 등이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경제 공약에 끼워 넣은 기후위기 대응책
슬쩍 끼워 넣은 전력산업 민영화?
이재명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에너지 산업을 새로운 신(新)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린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태양전지, 풍력발전, 에너지 저장장치 그리고 이를 활용한 친환경 미래차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서둘러 개발하겠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 성장까지 이루겠다는 것인데, 대기업과 산업계를 지원하는 정책들로 구성된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이 같은 기후위기 대응책은 그의 경제 공약인 산업대전환의 일부로 끼워져 있다. 많은 기후 정의 활동가들은 ‘경제 성장’과 ‘기온 상승 1.5도 미만 억제’는 양립할 수 없다며 녹색성장은 환상이라고 분개한다. 또 지구적으로는 이런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이 기술과 자본력을 가진 북반구 국가들의 주도로 이뤄지면서, “자원 채굴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1)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더 우려스러운 공약은 ‘에너지 고속도로’다. 에너지 고속도로란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재생에너지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과 결합한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망을 새롭게 구축한다고 밝혔다. 해당 정책은 이 후보가 지난해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발표한 것으로, 40조 원의 민간 투자를 계획해 “송배전망의 민영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라는 우려가 컸다. 기반시설 건설에 활용되는 민간 투자는 결국 운영권과 수익을 나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기후에너지특보 양이원영 의원도 최근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의 혁신과 활성화를 위해 사실상 전력시장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 기업들이나 젊은 친구들은 사실 전력 시장을 조금만 열어주면 엄청나게 클 수 있다”라며 누구나 전력 생산과 판매, 유통에 참여하는 것이 ‘에너지 민주주의’라고 밝혔다. 또 지난 12월엔 전력시장의 민간 개방을 주장하는 교수들과 함께 ‘에너지전환의 길 새로운 성장의 기회’라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집행위원은 “모호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에너지 고속도로는 현재의 전력과 에너지 시스템을 자유화,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몇몇 학자, 전문가들이 한전 등 공공부문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에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며 민영화, 자유화를 주장하지만 에너지 시스템의 민영화와 자유화는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민영화된 시스템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수행되며, 이익이 남지 않으면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안 한다. 빠르고 정의로운 전환이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후보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핵발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경제적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탄소중립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겠다”라며 “산업적 전환에 대비하면서도, 저탄소를 지향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원자력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즉시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원전 3·4호기에 대한 공사를 재개할 것이고, 소형모듈원전(SMR) 개발도 추진하겠다”라고도 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울진 주민들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핵발전소로 피해와 고통을 호소해왔다. 윤 후보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주장은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피해와 고통은 외면한 채, 핵발전으로 인한 이익만을 취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와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한수원의 부실 관리로 월성원전 부지 내에서 삼중수소가 누출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원전이 튼튼하다고 착각하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부실한 원전 안전 관리의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하기 바란다”라고 일갈했다.
여성을 다시 가족 안으로…여가부 때리는 두 후보
가장 논란이 되는 여성 관련 정책은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다. 지난해 10월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히더니 지난 1월 7일 자신의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남겼다. 추락한 청년층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라인 남초커뮤니티 등에서 요구하는 부처 폐지론을 서둘러 공약화한 것이다. 윤 후보에 대한 지지율 하락세가 멈추는 여론조사가 나오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틀 걸렸군’이란 다섯 글자를 남겼다. 윤석열 후보가 짧게 밝힌 여가부 폐지의 이유는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여혐 대선에 반대하여 권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모인 여성들(유권자)’은 1월 14일 SNS로 논평을 발표하고 “(윤석열 후보가) 신설된 부처에서 아이를 낳은 가정에 월 100만 원씩연1,200만 원을 전 국민 부모 급여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을 삭제하고 가족부의 기능만 살리겠다는 것”이라며 “주체로서의 여성을 지우고 가정 내 전통적 성 역할만을 강요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윤 후보는 청년 정책을 발표하면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해 많은 여성을 분노하게 했다. 지수 사회변혁노동자당 여성사업팀장은 “피해 증명이 어려운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금도 무고죄로 고통받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무혐의 판결 나오면 적극적으로 무고죄를 적용해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라며 “성범죄 관련 논의들이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가해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꽃뱀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여성운동과 여성의 목소리를 악마화하는 것은 윤 후보뿐이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의 여성 혐오적 정책에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비판했지만 여성들은 윤 후보 못지않게 이 후보 역시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후보 역시 두 달 전 ‘성평등가족부’를 만들겠다고 밝히며 여가부 공격에 가담했다.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 ‘민주당 의원들은 각종 페미(페미니즘)와 관련하여 젊은 남자들을 배척했다’라고 주장하는 글을 본인의 SNS에 “함께 읽어 보시지요”라고 공유해 역시 큰 논란을 빚었다.
지수 팀장은 두 후보 당선 시 지금까지 진행돼 온 성주류화 전략은 종결될 것이라 예상했다. “여성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사라지고, 젠더 정치 담론 속에서만 여성이 호명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 후보는 ‘고용공정위원회’를, 윤 후보는 노동시장의 남녀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하는데 성평등한 노동의 권리가 실현될 방안은 없고, 여성 노동 정책에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공정 키워드를 가져왔다”라며 “돌봄 제도 강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민간에 맡겨져 있는 돌봄 서비스를 국가 전환으로 할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돌봄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서비스 제공자가 돼야 한다는 점인데 여전히 관리·감독, 재정 투여만 하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를 거스르는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여가부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여성가족청소년부로서의 자기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여성 인권 신장을 억누르기 위한 남성 정치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일까? 지수 팀장은 “여가부를 둘러싼 반복되는 논란은 우리 정치가 여전히 발전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유지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기사제휴=참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