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미군정 시기 대구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철도노조 총파업을 주도한 노동운동가 류병화 선생이 3월 28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대구 한패밀리병원(수성구 동대구로 12)에 마련됐다.
고인은 1929년 경북 군위군에서 태어나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1945년 철도국 대구역 구내원으로 근무했다. 1946년 전평 철도노조 대구지부 조직부장을 지내며 9월 23일 철도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이 총파업은 미군정에 저항한 대구 10월항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고인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류쾌동)와 함께 국민보도연맹 관련자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고인은 수감직후에도 각종 시국사건 발생때마다 예비검속, 연좌제 등으로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잦은 옥고와 고문 피해 후유증으로 환청과 환상의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후 1970년부터 2006년까지 부인과 대구 수성시장에서 떡방앗간을 운영하며 살았던 고인은 2000년대 들어서 민주노총 철도노조 후배 조합원들에게 노동운동 경험을 전하면서, 부친 류쾌동 선생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10월항쟁유족회 활동을 했다.
이에 민주노총과 지역의 원로들은 ‘전평 철도노동자 류병화 선생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29일 저녁 7시 30분 고인의 빈소에서 추모식을 연다.
장례위원회는 대구지역 원로운동가인 권오봉, 강창덕, 한기명, 김병길 씨가 고문을 맡았고, 권택흥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호상은 이재식 전 민주노총 대구본부 수석부본부장(철도노조)이 장례집행위원장은 정현태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처장이 맡았다.
30일(수) 오전 8시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하고, 장지는 경북 영천 호국원이다. 아래는 고인의 약력이다.
고(故) 류병화 선생 약력 1929년 경북 군위군에서 부친 류쾌동 모친 서봉해 님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