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d by Amazon Polly

[편집자주]
한국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 이주민이 있다. 그들은 한국의 필요로 한국에 초대됐지만, 여전히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는 못한다. 쓸만하고 값싼 인력. 또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고 보호받지는 못하는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이 겪는 한국은 어떤 곳인가. 이주민 한 사람의 이야기에 한국 사회의 결함이 중첩돼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배경으로 대구 이주민이 겪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본다.

① 어린 딸 혼자두고 출입국에 잡혀간 엄마

2021년 추석 연휴에 우웬티양(44) 씨는 경찰 단속에 걸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됐다. 등록되지 않은 오토바이를 탄 것이 문제였다. 미등록 신분이라 정식으로 오토바이 등록을 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 딸을 기르며 공장에서 일도 해야 했던 우웬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시간을 절약해야 했다. 강제추방 절차가 시작됐다. 집에는 딸이 혼자 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없이 홀로 딸을 길렀기 때문인지 딸은 말수도 적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에도 익숙한 거 같았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이 엄마 없이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에 소지품을 반납하고 머물다 보니 며칠이 지났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딸 걱정에 머릿속도 복잡했다. 우웬 씨보다 늦게 보호소에 들어온 사람들 몇몇이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되는 동안에도 우웬 씨는 출입국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때 출입국은 우웬 씨 딸에게 다른 보호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출입국에 보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우웬 씨의 사정이 고려된 것인지, 출입국은 우웬 씨를 당장 추방하지는 않았다. 추방 전 신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일시보호해제해 우웬 씨는 보호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수중에 차비도 없었다. 출입국 직원에게 1,300원을 빌렸다. 일단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긴 했지만, 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우웬 씨는 지하철에 올랐다.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한 우웬티양 씨

결혼이주여성으로서 받은 위협
이혼 후 미등록 이주노동자 처지
아이 키우며 성서공단 주 6일 출근
잘해주던 사장님, 전치 12주 산재 모르쇠
의료보험 적용 안 돼 병원비 과다 지출
한국에서 낳은 딸의 모국은 어디인가

■결혼이주여성·미등록 이주노동자

우웬 씨가 미등록 상태가 된 것은 남편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에 입국한 우웬 씨는 베트남에 신붓감을 구하러 온 남편과 결혼했다. 나이 차이는 스무 살이었다. 남편이 살던 서울에 정착하고 보니 술버릇이 좋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욕설과 난폭한 행동을 했고, 점점 심해지다가 흉기까지 손에 드는 일이 생기자 우웬 씨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수중에 있는 돈은 40만 원. 서울에서는 한 달 치 월세 내기에도 빠듯했다. 우웬 씨는 대구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대구로 향했다.

결혼한 친구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 15만 원짜리 셋방을 구해 급한 대로 성서공단 섬유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미등록 상태라 마음이 불안하긴 했지만, 걱정한다고 별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대구 생활 2년, 일하며 알게 된 베트남 이주노동자와 살다가 딸을 임신했다. 출산 후 4개월, 같이 살던 사람은 서울에 잠시 다녀온다더니 연락이 끊겼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베트남에 갔다고 들었다.

우웬 씨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딸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베트남에 보낼까도 생각해봤지만, 베트남에 있는 우웬 씨 부모님은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았다. 딸 이름을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다니던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한국 아주머니가 사정을 듣고는 한국 이름 하나를 지어 줬다. 아주머니는 딸이라도 약한 이름을 지으면 안 된다면서 남자같은 이름을 지어 줬다.

■워킹맘·한부모 가정

월세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필요했기 때문에 우웬 씨는 옹알이하는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직했다. 사정을 아는 사장님은 잔업을 주지 않고 오전 8시 반에 시작해 저녁 6시에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사정을 아는 어린이집 선생님도 저녁 6시를 넘겨서 딸을 데려다줬다. 우웬 씨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우웬 씨 사정을 이해해줬고, 주변 사람 도움 덕분에 혼자서도 어린 딸을 기를 수 있었다.

잔업을 하지 않았더니 수입은 백만원대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딸을 길러야 하는 입장에서 잔업까지 할 수는 없었다. 일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 보고 싶은 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일이 끝나면 총알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최대한 배려해주기도 했지만, 딸은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냈다.

공장에서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안일을 할 사람은 우웬 씨밖에 없다.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딸을 보는 일만큼은 아무리 힘들어도 기꺼이 했다.

▲우웬티양 씨와 딸

■산재 피해·의료보험 사각지대

고맙게만 생각했던 사장님은 우웬 씨가 산업재해를 당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자동차 부품을 절삭하는 기계(CNC)옆에서 부품 포장을 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그만 60kg짜리 부품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손이 깔려버렸다. 병원에 갔더니 전치 12주라고 했다. 진료한 의사는 우웬 씨에게 뭉개진 부위를 잘라야 한다고 했지만, 무서웠던 우웬 씨는 예후가 어떻든 상관없으니 자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걱정이었다. 사장님은 수술비 정도만 주겠다고 했다. 친절했던 사장님이 다른 사람인듯 했다. 전치 12주의 입원비, 요양 기간 수입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니 우웬 씨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당황한 가운데 방법을 찾으려 수소문하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알게 됐다.

선교센터 박순종 목사와 당시 선교센터에서 일을 도와주던 베트남 출신 빅한(53) 씨에게 상담했더니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산재 신청했더니 치료비에 요양급여도 나왔다. 입원 기간 딸을 돌보지 못하는 점이 문제였다. 우웬 씨 친구가 종종 챙겨주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얼마 동안 딸은 하교 후 집 대신 병원으로 왔고, 같은 병상에서 잤다. 치료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한 달 입원을 끝으로 퇴원해 나머지 치료는 통원 치료를 받았다.

우웬 씨 부상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았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점은 문제였다. 다른 치료를 받거나, 딸이 종종 아프면 간단한 진료를 받는데도 큰돈이 들었다. 하루는 딸이 열이 나 병원에 갔더니, 치료비가 30만 원이 청구됐다. 베트남 농촌지역의 수입에 비하면 훨씬 많은 돈을 한국에서 벌고 있지만, 특히 의료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나갔다. 한국에서 받은 급여를 아껴 부모님에게 보내고 싶지만, 생활비, 육아 비용, 의료 비용을 내기에도 벅찼다.

출생신고도 안된 딸의 모국은 어디인가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말···”물 바다”
일시보호해제 후 우웬 씨는 강제출국 될까

우웬 씨는 딸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딸은 똑같은 미등록 신분이 된다. 다만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신고해 출생증명서를 받을 수는 있었다.

딸에게 베트남은 상상 속의 나라다. 대구에서 나 대구에서 자란 딸은 한국말을 더 잘한다. 스스로 외국인이라는 정체성도 갖고 있지 않고, 외국인이라서 차별을 느낀다는 인식도 없다. 학교를 다니며 ‘다문화’라는 단어를 듣긴 했지만, 친구들이나 친구들 부모님도 구김 없이 대해 큰 문제 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딸은 베트남 하면 연달아 ‘물 바다, 물 천지’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집 아래에 물이 흐르는 장면이 연상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우웬 씨는 텔리비전에서 봤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다. 딸은 가본 적 없는 베트남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할머니는 보고 싶다. 딸은 여태 할머니를 납작한 휴대전화로만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영상통화에서 봤던 할아버지 얼굴은 가물가물하다. 우웬 씨 아버지는 2016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한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러 베트남에 갈 수 없었다. 우웬 씨는 기회만 된다면 딸에게 베트남을 보여주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딸이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우웬 씨는 좀더 공장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산업재해를 당한 뒤 자동차 부품공장을 나왔고, 회복한 뒤부터는 섬유공장을 다니고 있다. 다른 집 자녀들처럼 딸을 학원에도 보내고 싶었고, 딸이 원한다면 한국에서 대학교도 보내고 싶었다.

2021년 추석, 외국인보호소에 갔다가 다시 운 좋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우웬 씨는 조만간 자진해서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도 그저 기쁘기만 했다. 딸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웬 씨는 한국에서 좀더 체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웬 씨 나이 마흔넷, 딸은 아직 초등학생인데 아무런 기반이 없는 베트남에 가서 살 방법이 마땅찮다.

마침 2022년 1월부터 법무부는 외국인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대상을 확대하는 정책을 한시적으로 펼쳤다. 이에 따라 종전에는 국내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외국인 자녀에게 임시 체류 자격을 부여하던 것을, 체류 자격 부여 대상을 확대해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자녀 등에게도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한 체류자격 부여 대상이 되는 아동의 부모에게도 양육을 위한 한시적 국내 체류를 허용하도록 했다.

우웬 씨는 대구이주민선교센터의 도움을 받아, 딸이 한국에서 학업이라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출입국에 체류자격 부여 신청을 준비 중이다. 또한 아동의 양육을 위한 체류자격외활동허가 신청도 준비하고 있다. 받아들여질지는 모른다. 허가되지 않는다면 우웬 씨는 당장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가야 한다. 허가되더라도 여전히 문제도 남는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대략 6년, 그 뒤 우웬 씨는 베트남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한국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딸에게 귀환은 우웬 씨가 귀환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도 우웬 씨는 한국 사회가 조금씩 변해 왔던 것처럼, 미래의 한국은 더 나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웬 씨는 베트남에 돌아간 뒤 딸이 혼자 남는다 하더라도 잘 헤쳐 나갈 것을 믿는다. 우웬 씨가 혼자 지은 딸의 베트남 이름은 쑤원 구잉, 어두운 밤에 피는 베트남 꽃 이름이다.

“고등학교 졸업은 할 수 있겠죠. 가능하다면 대학까지도 한국에서 다녔으면 좋겠어요. 저는 결국 베트남 돌아가겠죠. 그래도 아이의 미래는 아이가 직접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혼자 살게 되면 걱정이 되겠지만, 그래도 한국은 계속 바뀌어 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를 일이에요.”

▲대구평화교회(대구이주민션교센터) 고경수 목사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한 우웬티양 씨

법무부, 체류 자격 부여 대상 약 3,000명으로 파악
추가 제도 시행 계획은 없어
이주 아동 보호 개선 “환영”, 하지만···
“이주민 정책 패러다임, 포용적으로 바뀌어야”

우웬 씨 사례에서 보듯, 이주민 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문제는 중첩된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려움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기존 제도가 이주민을 활용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어 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아동, 특히 우웬 씨처럼 부모가 미등록 상태에서 출생해 아동 또한 미등록 상태에 있는 경우 체류 요건 완화 등을 통한 인권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자격 부여제도 부존재로 인한 인권침해’ 진정을 검토한 결과 법무부에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관련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2020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03만 명 중, 미등록 외국인은 39만 2,000명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미등록 외국인이 39만 2,000명이지만, 체류지 현황 파악이 어려워 지역별 분포는 가늠하기 어렵다. 등록된 외국인 기준으로는 전체 114만여명 중 대구에 2만 7,000여 명(2.4%) , 경북에 5만 2,000여 명(4.5%)이 체류하고 있다. 2020년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5,867명, 출국 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2,062명이다.

법무부는 2022년 1월 기준 외국인 등록번호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을 3,196명으로 파악하고 있어, 이번 법무부 제도개선 대상이 되는 학생을 3,000여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체류 요건 완화 외 다른 제도 개선 사항에 대해 법무부는 “기존 제도를 개선해 확대 시행했고, 현재 추가로 개선을 검토 중인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제도 개선은 학계나 지역사회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제도의 근본적 변화로 보긴 어려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이주민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일 변호사는 2021년 11월 법무부가 주최한 이민정책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에도 발표자로 나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일 변호사는 “법무부에는 이미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을 관리한다는 의미의 외국인 정책은 있지만, 이민 정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 사회가 처한 인구감소 등의 문제, 인권 보장의 문제에서 언젠가는 이민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 변호사는 “외국인 정책의 시각은 외국인을 분절화해서, 노동자는 저임금 노동력으로 잠깐 쓰는 존재, 결혼이주여성은 아이를 낳아 주는 존재로만 여겼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 정부는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살면서 자긍심을 느끼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울리는 나라가 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 자격 문제도 좀더 포용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변호사는 “지금 제도는 한시적으로 개선한 건데, 이 제도를 활용해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는 사람을 막자는 취지다. 그보다 이제 한국은 한국에서 영주하고 싶은 사람, 한국도 필요한 사람을 포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