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토론왕 이준석에게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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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람들이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한 끝에 대통합에 이르렀다는, 그런 달달한 사건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느 입장이 상대의 입장을 압도하는가 하는 역학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토론은 토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토론의 결과 박경석이나 이준석이 설득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박경석은 그 자리에서 이준석이 아닌 렌즈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 ‘장애인 이동권’ 이슈가 전례 없을 정도로 뜨거운 화두가 됐다. 아. 이렇게 토론할 수도 있구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출연한 JTBC 토론 방송 ‘썰전’ 화면 갈무리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차별 없이 함께 살자는 요구다. 지하철은커녕 마땅한 이동 수단조차 없는 농촌 지역에서 그 논의는 까마득하다. 농촌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의료 접근권, 교육권, 주거권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정치가 관심 두지 않는 동안 이 모든 짐은 장애인의 가족에게 떠넘겨졌다.

얼마 전 장애인 부모들을 인터뷰했다. 자녀를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냈거나 보내야 할 상황의 장애인 부모들은 자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게 된 무거운 짐 때문에 극단적 상황에 놓였다. 자녀가 나이 들수록 자녀에게 지원되는 공적 돌봄은 줄어들고, 세월이 가며 체력도 경제적 사정도 나빠진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시설을 선택했다. 장애인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발달장애인 부모가 견디다 못해 자녀를 시설에 보내거나, 자녀를 살해한 뒤 법정에 서는 사회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박경석을 비롯한 여러 장애인이 해 왔다. 정치가 먼저 공감하고 아파해야 할 이야기 아닌가.

이준석은 토론 이후 “정책은 디테일에 있다”며 버스는 저상화하고 철도는 고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예전부터 장애인들이 하던 요구라고 초를 치고 싶진 않다. 다만 디테일한 정책 만들기에 쏟는 관심만큼 장애인이 처한 현실에도 진정어린 공감부터 해주길 바랄 뿐이다.

뇌혈관 기형이라는 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으로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뜨거운 투쟁 이후 돌아왔을 때, 조용한 방에서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할, 장애가 주는 고독이 있지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으니, 힘냅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