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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이 넘지 못하는 문턱이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제한되어 왔던 이곳에 관심이 뜨겁다. 어떤 정치인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강화 이전에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옳다. 하지만 누구도 장애인을 황무지로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탈시설’ 요구에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요구가 포함된다. 그 준비를 해야 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지만, 지금껏 정치는 그 의무를 외면했다. 정치가 사라진 비문명의 황무지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는 한쪽에 헌법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한쪽에는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① ‘기환이 엄마’ 앞에 놓인 선택지
② 발달장애 아들과 황무지를 개척한 33년
③ 벼랑 끝 발달장애인 부모
④ 경북에서 장애인 자립하기
⑤ 장애인 시설 원장이 말하는 탈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자 중에서도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해 시설에 입소 중인 장애인의 탈시설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장애인 거주시설 원장인 박종욱 사회복지사다.
박종욱 원장이 근무하는 천혜요양원은 대구 사회복지재단 청암재단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청암재단은 천혜요양원과 청구재활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최초로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곳이다.
2005년 재단 내 거주시설에서 장애인 인권침해·비리 사실이 밝혀진 뒤 공익이사제가 도입됐고, 이후 재단 스스로 시설 거주인의 탈시설을 추진해오기도 했다. 재단은 거주인의 실질적인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시설 내부의 자립 생활 준비 과정, 시설 외부 지역사회 내의 자립생활 체험 과정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40여 명의 거주인 자립생활을 지원했다.
재단은 2018년 노조와 함께 거주시설 폐지 선언에도 나섰다. 당시 이들은 폐지 선언 이유로 “지속적 탈시설 추진 속에서도 시설 구조 그 자체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폐지 선언 이후에도 내부 반발 등의 문제로 특별한 진척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시설 내부에서 종사자에 의한 장애인 인권 침해 사실 등이 대구시 조사로 확인되면서, 대구시는 재단의 거주시설 한 곳을 폐지하고 재단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관련 기사=청암재단 종사자 장애인 폭행, 대구시 조사결과 사실로(‘22.2.22))
지난 7일, 경북 경산시에 있는 천혜요양원에서 만난 박 원장은 장애인 거주시설 차원의 탈시설에 대한 준비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지역사회가 탈시설한 장애인이 안정적인 자립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충분히 해야 하며, 정부나 자치단체가 탈시설에 노력하는 시설과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종사자 처우 문제 등 현실적인 과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박 원장은 “시설은 시설대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대로 자원을 투자해 장애인 탈시설을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 시설은 시설 내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약 40명이 탈시설하고 자립생활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시설에서도 이런 과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차원에서는 장애인 자립생활에 활동지원사가 꼭 필요한데, 이 서비스를 충분히 갖춰야 하고 동시에 활동지원사의 역량 또한 충분히 검증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가 생기고 요구가 나와야 들어주는 방식 말고, 탈시설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조사하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종사자에 대해 처우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 인터뷰 전문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천혜요양원에서 거주 중인 장애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중증 지적장애인 스물다섯 분이 계신다. 대부분 20년 이상 장기 거주한 분들로, 무연고자 이거나 직계존비속이 부양 능력이 없어서 입소했다. 실비입소자(입소 대상은 아니지만 입소 욕구에 따라 비용을 내고 입소한 사람)는 없고, 전부 보조금이 지원되는 분들이다. 2000년도 이전에는 올림픽 즈음1 오시거나, 대구시립희망원에서 넘어오신 분들도 있고, 2000년도 넘어서는 가정에서 감당하다가 포기하고 버려지는 분들도 있다. 희망원에서 넘어온 분들은 처음에 우리 요양원에 왔을 때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관리번호가 있어서, 장애인 연금 혜택도 못 받는 경우가 있었다. 2006~2007년 무호적자 호적 찾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가족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에 있다가 오는 경우는 가정에서도 도저히 돌봄을 제공할 여력이 안 되는 경우다.
천혜요양원은 지역에서 관심도 많은 시설이고, 지역사회에서 이사진에 참여도 했다. 그런데도 시설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인력 지원에 분명 한계는 있다. 지원되는 보조금 대부분을 인건비로 쓰고 있지만, 그래도 직원들이 24시간 지켜야 하니 낮에 프로그램을 집중하고 저녁에는 안전사고 대비를 하는데, 그게 지금 있는 인력만으로 충분히 하기에는 한계가 있긴 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고가 난 적도 있다. 이용자끼리 다툰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시설로선 (입소 장애인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도 노동자인데 근로기준법을 초과해가면서 사랑과 봉사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사진 구성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이든 공식기관의 조사를 받으려 한다. 우리 시설처럼 내부적 반성이 없는 곳이라면, 시설이란 구조 자체는 감시가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보조금 사용이나 거주인 인권 측면에서 문제가 더욱 쉽게 벌어질 거다.
청암재단은 거주인 자립생활 지원에도 적극적인 곳이다. 이를 준비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나?
현실적으로 중복장애이면서 최중증인 경우에, 이분이 앞으로 자립생활을 한다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다. 만약 자립한다면 주택이라든지, 활동 지원 서비스를 충분히 확보하는 등의 충분한 준비가 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이 있는데, 활동지원사의 실질적인 역량도 충분히 검증돼야 한다는 점이다.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은 사회복지 전공을 한다든가 자격을 갖추는데, 활동지원 하는 분들이 그만한 체계적 교육이나 역량을 갖는지 살펴보고, 더 전문적이기 위한 교육과 같은 과정이 필요할 거 같다.
지역사회에서 정착해 자립생활 하는 게 당연히 좋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빈 부분을 정부에서도 임대주택이라든지 좀 더 이런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면 또 그거대로 지역 사회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정부나 자치단체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탈시설을 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산을 책정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무슨 사건이 생기고 장애인 단체에서 요구하면 조금씩 들어주는 수준밖에 안 되는 거 같다. 탈시설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전수조사하고, 탈시설이 가능하고 의지가 있는 분들부터 시설 밖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위한 지역사회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에 있는 시설은 기능을 변환한다든지 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종사자 처우 문제도 중요하다. 지금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아무래도 조건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방침에 따를수록 고용불안이나, 근로조건 후퇴 같은 불이익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는 인센티브를 준다든지 하는 방안도 있어야 한다. 지금 청암재단 시설 폐쇄를 추진하고 있는데, 물리치료사, 운전기사, 사무원, 안전관리기사와 같은 직종들도 전부 유지할 수준으로 지원하지 않을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청암재단은 거주인 탈시설을 선언했다. 지금은 과도기고, 시설로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우리 재단에서는 시설 내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자립 준비홈’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자립 준비를 한 다음, 시설 바깥에 있는 생활실로 나가서 다시 자립생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다음 세 번째 단계로 IL센터(자립생활지원센터)를 통해 자립에 나선다. 우리 시설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달에도 세 분이 자립했고, 이번달에도 세 분이 자립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약 40명이 자립했다.
이런 과정이 우리 시설뿐 아니라 다른 시설에서도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하다. 그런데 잘 안 하려고 한다. 3년마다 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 항목에 탈시설과 관련한 항목이 있긴 한데, 큰 의지는 없다.
거주인과 종사자 처우를 아우르는 방안이 필요한 건데, 어떠한 지원이 필요한가?
탈시설 계획에 맞추기만 요구하면서 그를 위한 지원이나 인센티브가 없다면 종사자 입장에서 힘이 빠진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탈시설에서 그런 부분이 와닿지 않는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그 때문에 직원 고용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인 거다.
시설 종사자도 참여하는 협의체가 잘 구성돼서, 이야기를 통해 현실적 어려움을 해소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없다. 대구는 탈시설을 위한 전담팀도 있는데, 과연 거기서 시설 간담회라든지, 시설 방문이라든지 그런 방식으로 시설의 어려움을 듣고 지원 방안을 찾아보고 있나. 서로 협력하는 체제로 해서 장애인도 지역사회에 나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들이 좀 더 구축됐으면 좋겠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