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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이 넘지 못하는 문턱이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제한되어 왔던 이곳에 관심이 뜨겁다. 어떤 정치인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강화 이전에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옳다. 하지만 누구도 장애인을 황무지로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탈시설’ 요구에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요구가 포함된다. 그 준비를 해야 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지만, 지금껏 정치는 그 의무를 외면했다. 정치가 사라진 비문명의 황무지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는 한쪽에 헌법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한쪽에는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① ‘기환이 엄마’ 앞에 놓인 선택지
② 발달장애 아들과 황무지를 개척한 33년
③ 벼랑 끝 발달장애인 부모
④ 경북에서 장애인 자립하기
김신애(54) 씨는 경북 울진에서 발달장애인 딸(26)을 평생 길렀다. 발달장애에다 뇌병변, 뇌전증이 있는 딸은 ‘먹는다’는 개념을 알지 못해, 다섯 살 때부터 위루관을 통해 경관식으로 식사해야 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 신애 씨는 좋은 시설이 있다는 소식에 입소를 위해 경산의 한 시설을 방문했지만, 그길로 울진에 되돌아와 평생을 딸과 함께 살았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 하더라도, 딸의 상태에 맞춰 제대로 돌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됐다.
딸은 일반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여전히 지역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경북 울진은 대도시처럼 교통이나 의료 인프라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작은 마을이어서 갖는 장점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딸을 알고, 의료진이나 응급구조사도 사정을 알고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신애 씨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장애인부모회 활동에 나섰다. 발달장애인이 나이를 먹을수록 정규 교육과정이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부족한 현실이지만, 경북은 기존의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대도시보다 장애인 자립생활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구하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좀더 예산을 들이고, 노력한다면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애 씨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에 참석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김신애 씨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거주시설 안의 장애인은 지역에 있는 장애인보다 훨씬 자유와 권리를 제약받고 있다”며 “거주시설에 자녀를 보낸 부모 입장도 이해한다.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서로 싸움을 붙이고 있지만, 정부가 제 역할만 한다면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충분히 자립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신애 씨는 대도시와 다르게 경북 시·군 단위 특성상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고 지적한다. 지역이 넓은 데다 인적 자원이 부족해, 자립생활에 필수적인 장애인 활동지원사도 여유롭지 않다. 공공의료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았다.
대구경북 장애인 거주시설 실태는?
경북, 시설 장애인 사망자 81% 질병사
대구, 시설 장애인 사망자 93% 질병사
시설 거주인 68%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입소
“경북, 전담부서·로드맵 마련 필요”
2020년 12월 기준,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1,539곳에 장애인 2만 9,086명이 거주 중이다. 이중 대구 51곳 1,415명, 경북 93곳 2,554명으로 경북이 대구보다 약 1.8배 더 시설 거주 장애인이 많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시설 거주인 61%가 남성, 39%가 여성이며 평균연령은 39.4세, 평균 입소 기간은 18.9년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거주인은 대체로 노화보단 질병으로 사망한다. 장혜영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2021년 대구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사망한 거주인 29명 중 27명(93.1%)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경북은 사망 거주인 27명 중 22명(81.5%)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거주 장애인에게 충분히 인권적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 시설에 입소하는 장애인도 스스로의 의사가 아닌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입소가 결정되고 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사업 최종보고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책임연구원 조한진)에 따르면, 지역 분포와 규모를 고려해 무작위 추출한 45개 장애인 거주시설 거주인 467명을 조사한 결과 317명(67.9%)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입소했다고 응답했다.
지자체마다 정책 추진 여건에도 편차가 있다. 대구시는 장애인복지과 현원 19명 중 3명이 장애인 자립생활 관련 전담부서(탈시설자립지원팀)에 배정됐지만, 경북은 장애인복지과 13명 중에서도 탈시설·자립과 관련한 전담 인원은 없다. 대구는 장애인 탈시설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행하고 있지만, 경북은 탈시설 관련 별도 중장기 계획도 아직 없다.
자립생활 지원 정도도 대구와 경북의 차이가 보인다. 대구는 자립생활지원센터 7곳, 자립생활 주택 44곳(체험형 14곳·정착형 30곳)을 운영 중이지만, 경북은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4곳, 자립생활체험홈 4곳(경주 1곳, 경산 3곳) 주택 3곳(포항 1, 문경 1, 울진 1곳)을 운영하고 있다.
경북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과 관련한 FGI(Focus Group Interview) 분석을 진행한 김동화 경북행복재단 정책대응팀장에 따르면, 장애인 자립지원을 위해 체험홈 확대, 경제·이동·활동지원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동화 팀장은 2020년 보고서 ‘경상북도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현황 및 체계 구축 방안’을 통해 ▲조례 제정·개정을 통한 탈시설·자립지원 강화 ▲자립지원 중장기 계획 수립 ▲전담 공무원 증원 ▲자립정착금 확대·활동지원 추가급여 확대 ▲자립 주거 정책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동화 팀장은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조례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 입장에서 사업을 새롭게 한다든가, 예산을 확보하려고 해도 근거가 없으면 사업 계획을 세워도 예산 배정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선도적인 지역과 비교해서 자립을 지원하는 전담 조직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상북도는 지리적인 면에서도 넓고 인프라가 부족해, 자립을 지원할 체계나 자원이 없다시피 한 곳도 있어 대구에 비해 어려운 조건”이라며 “주거 공간 확보에 비용 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겠지만, 관건은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을 도시 생활권 내에 확보해야 하는 점이다. 장애인도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우선 경북도 권역별로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전담 조직이 만들어져서 단계적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경북과 유사한 조건인 전북에서 탈시설 운동을 했던 김병용 전주시 인권담당관은 “경북도 전북과 마찬가지로 산지고, 시설도 많은 편이다. 농촌 사정은 도시 사정과 다르기 때문에 운동 또한 도시중심의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과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유리한 측면도 있다”며 “주거 문제에서 활용할 자원이 더 많다. 비용도 적게 든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개념이나 내용이 불충분한 상황도 아니라서, 유리한 상황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병용 인권담당관은 “복지부든 자치단체든, 실효성 있는 탈시설에 대한 프로세스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탈시설 목표를 세우더라도 실제 공무원 조직 안에서는 ‘설마 그만큼 탈시설 하겠어, 나가서 당장 어떻게 하려고’라는 식으로 지금 당장 나서야 할 문제가 아니고 느슨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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