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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암약해온 집단 텐 링즈의 수장 웬우(양조위). 양 팔목에 부른 열 개의 팔찌는 웬우를 늙지 않고 누구와 맞서도 지지 않는 힘을 준다. 그가 어떻게 열 개의 팔찌를 갖게 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텐 링즈는 돈과 권력을 좇는 웬우를 따라 비밀리에 정복 활동을 펼쳐왔고, 비밀리에 역사까지 바꿨다.
웬우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는 신들의 무술을 연마한다는 ‘탈로’를 꾸준히 찾았다. 마침내 1996년에는 그 위치를 대략 알아내 탈로로 향한다. 하지만 입구인 대나무숲에서 부하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웬우는 포기하지 않고 대나무숲 안으로 향했고 연못에 다다라 리(팔라 첸)를 만난다. 웬우는 리와 대결하지만 패배한다. 샹치(시무 리우)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첫 만남이다.
웬우는 리와 결혼해 샹치와 샤링(장멍)를 낳아 키우며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리의 마을에서 둘의 결혼을 반대한 탓에 리는 웬우를 따라나서며, 남편을 이긴 신비한 힘을 마을의 위대한 수호자에게 돌려주고 왔다고 한다. 웬우 역시 불멸과 힘을 주는 열 개의 팔찌를 벗어 놓는다. 하지만 웬우에 원한을 가진 범죄조직이 리를 해친다. 웬우는 복수에 눈이 멀어 보관 중이던 열 개의 팔찌를 팔목에 차고 복수에 나선다. 이 때문에 샹치와 샤링은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동양인 슈퍼히어로를 앞세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영화다. 평가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인피니티 사가로 불린 페이즈3까지 관객들이 크게 열광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불호’의 반응이 좀 더 두드러진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는 과거 홍콩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한 성룡식 액션과 유머의 그늘이 짙게 배어있다. 좁은 공간에서 지형지물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한 버스와 건물 외벽 액션 신은 그의 영화와 이질감이 전혀 없다. 성룡의 스턴트 팀 ‘성가반’의 스태프들이 대거 참여한 덕택이다.
영화 초중반 샹치의 유머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짓던 성룡과 닮았다. 배우 아콰피나가 연기한 케이티의 경우 시종일관 떠들고 눈치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성룡의 파트너와 빼닮았다. 이는 할리우드가 동양배우에게 원하는 딱 그 수준 이상으론 한 치도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중반 이후 탈로에서 이모 난(양자경)와 수련하는 이후로는 <와호장룡(2000년)>의 모습이 연상된다. 팔찌의 힘을 빌려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웬우가 태극권 같은 무술에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쿵후 철학이 그대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탈로가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묘사하고 그곳에서 주작, 구미호, 기린, 혼돈에서 모티브를 얻은 모리스 등 중국풍 상상의 동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 역시 중화권 무협영화의 배경과 다르지 않다. 중국 시장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MCU의 모회사 디즈니는 최근 부쩍 중국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부분 중국시장에선 호평을 얻었지만 대중성을 얻지는 못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중국 시장에 대한 노골적 구애가 엿보인다. 가족사의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부터 중언부언과 리우드식으로 변용된 홍콩 무협영화의 전통 안에서 아시안 스테레오를 벗어나지 못한다. 최악의 지점은 영화의 절정에서 <디 워(2007년)>가 보인다는 것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