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정치인 권영진, 게이머 이준석

09:18
Voiced by Amazon Polly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의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정치인의 큰 역할이고 내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고 일해 왔다.” 4월 4일 오전 탈시설장애인자조모임 IL클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권영진 대구시장의 말이다.

▲2022년 4월 4일 탈시설탈시설장애인자조모임 IL클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권영진 대구시장

이 자리에 참석한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는 서로 지향하는 가치와 성향이 다를지라도 대화하고 협의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보수정치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민제 사무국장은 서울에서 이동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장연과 함께하고 있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이기도 하다.

대구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여러 번 권영진 대구시장과 갈등했다. 2018년 5월 31일 대구시장 선거 첫 유세가 열리던 날, 권영진 시장은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부딪혀 넘어졌다. 앞서 장애인단체는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며 대구시청 앞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충돌 사건 이후 장애인단체와 골이 깊어졌지만, 권 시장은 당선되고 첫 기자간담회에서 “장기농성하는 것은 안타깝다. 그분들이 요구하는 부분을 최선을 다해 정책에 반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해 11월 대구시와 장애인단체 간 합의가 이뤄졌다. 탈시설 의사가 있는지 묻는 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희망원 거주인도 다른 시설로 강제 전원하지 않게 됐다.

장애인단체의 끈질긴 운동의 영향이 컸지만, 권영진 시장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권 시장은 대구시가 당장 요구안을 다 수용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립을 지원하는 복지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15년 제1차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계획을 수립해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등 기반 마련을 시작했다. 2020년부터 제2차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계획을 수립했다.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 거주인 중 일부가 탈시설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곡절을 겪었지만, 대구시는 2019년 4월부터 대구사회서비스원이 희망원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권영진 시장은 갈등할지언정 혐오하지 않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시정 8년 동안 본인이 추진했던 정책 중 상당수는 여론에 의해 그 뜻을 접었다. 팔공산 구름다리, 제2대구의료원 추진도 애초 의견과 방향이 바뀌었다. 한계는 있었으나 대구시민원탁회의, 대구시청 신청사 공론화도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홍의락 경제부시장에게 권한을 맡겼고, 당내에서 5.18 망언이 나오자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

시민 앞에 서는 일을 피하지 않았고, 사회적 합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게이츠 해고노동자, 장애인들이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고 이를 “비문명적 불법 시위”라고 혐오하지 않았다. 물론, 언쟁을 벌이다 시의회 회의장을 떠났던 일, 비판하는 대구MBC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그렇지만 권영진 시장은 갈등의 조정자, 중재자라는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었다.

이런 권영진 시장과 비교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인이 아니라 ‘게이머’ 같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3월 31일 SNS에 “1. 이준석은 장애인을 혐오하는가. 2.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토론. 3. 서울지하철 출근길 투쟁은 적절했는가. 토론자는 박경석 대표가 직접 나오시지요. 아 진행자는 김어준씨 제안합니다”라고 썼다. 갈등을 해결하고, 장애시민이 온전히 시민권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정치라는 게임에서 이기는 게 목표처럼 보인다.

대구시장은 박근혜, 윤석열과 얼마나 친한지 증명하는 자리도, 시정 개혁 방향을 묻는 기자에게 ‘못된 질문’이라며 비꼬는 자리도 아니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이준석 대표가 아닌 권영진 대구시장 8년을 참고하길 부탁드린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