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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관리 비용은 연간 82조 원에서 최대 246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 2013). 9년 전 판단임에도 최소치가 올해 우리 국방비 55조원 보다 훨씬 많다. 이 비용을 줄여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방안은 무엇일까.
사회적 갈등의 주된 원인은 불신이다. 불신은 분열을 야기한다. 친구 사이도 불신이 싹트면 소리 없이 멀어진다. 가정에도 불신이 생기면 파탄을 가져올 수 있다. 하물며 사회는 말해서 무엇하랴.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현재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군 공항 이전, 원자력 등 주요 국책사업은 갈등의 현장이다. 이러한 곳에 투입되는 사회적 갈등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이유 불문하고 이 비용을 줄여야 한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사회적 갈등 해소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13일 한미공동실무단은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경북 성주군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 무렵 우리 사회에 천안함과 세월호 등으로 ‘불신의 늪’이 형성되어 ‘사드배치’설만 나와도 해당 지자체장은 삭발을 하며 민심을 표출했다. 이 불신의 늪에서 괴담이 흘러 나왔다.
‘사드 전자파는 기형아를 만든다.
벌이 날지 못하여 참외농사를 망친다.
사드는 사람을 죽이는 사(死)드이다’.
순식간에 지역주민들에게 전파되었다. 성주군수를 비롯한 주민 100여명도 삭발까지 하면서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일부 주민은 혈서까지 썼다. 사드 전자파가 사람을 죽이는 사(死)드라는데 어느 누구인들 저항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산모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니. 국방부는 “전자파가 인체와 농산물에 이상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주 주민들은 ‘국방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았다.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았다.
필자는 군인으로서 사드 배치 발표 때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3년 7개월 동안 갈등 현장에서 보냈다. 주민들에게 들은 쓴 소리는 군 복무 33년 동안 들은 것보다 더 많았다. 그 만큼 깨우치기도 했다. 국방부를 대신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곤혹을 치를 때 마다 참외 비닐하우스로 들어가곤 했다. 거기에는 더운 공기로 숨이 막혔지만 숨통은 트였다.
한번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농부께서 “흙은 정직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하니까요”라며 “국민은 하늘입니다. 공직자는 국민을 섬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곁에 있던 아주머니는 “우리는 사드인지, 오드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다. 자식처럼 키운 참외를 지금 따야 한다”라고 거들었다.
숨막히는 찜통 비닐하우스에서 우리 사회에 ‘불신의 늪’이 생긴 이유를 알았다. 불통의 환경에서 자라는 불신이 쌓여 ‘늪’이 된 것을 보았다. 성주군에 ‘사드 배치’를 발표하기 전, 공직자 중 그 누구도 군민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발표 당일 국무총리가 직접 성주군에 와서 그 이유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분노했다. 그 현장에서 필자는 ‘불통은 불신을 부르고 소통은 신뢰를 부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불신이 어둠이라면 소통은 빛이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빛을 비추면 되듯이 불신을 몰아내기 위해 신뢰를 쌓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신뢰를 쌓는 과정은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을 닮아 있다. 먼저 불신의 땅을 신뢰의 터전으로 일구어야 한다. 그 다음에 신뢰의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간에 적극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이다. 물론 정직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규범을 지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뢰의 씨가 자라서 꽃을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렇듯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내하며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신뢰를 쌓는 이유가 있다. 갈등관리 비용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다. 신뢰기반의 사회를 만들어 우리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데 있다.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