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13일 오전 2시 45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장병하 애국지사가 향년 93세로 작고했다고 밝혔다. 장병하 지사가 작고하면서 생존 애국지사는 15명(국내 12명, 국외 3명)만 남게 됐다. 대구에는 이제 권중혁(100) 지사 한 분만 남게 됐다.
1928년 안동에서 태어난 장병하 지사는 1943년 8월께 경북 안동의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독립회복연구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의 제8~10회 학생들이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공사에 동원되었을 때, 그곳에서 조직한 항일결사체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였다.
장병하 지사를 포함한 단원들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단원 전원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장 지사는 총궐기 주도 혐의로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이 되면서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정부는 1999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생전에 장병하 지사는 “당시에는 20세가 되면 모두 일본 군대에 끌려갔다. 이러나저러나 일본 놈들의 총받이가 될 텐데, 기왕이면 일본과 싸우다 죽자고 결심해 독립운동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관련기사=92세 생존 독립지사의 바람, “남북 하나 될 때까지 독립운동”(‘19.9.22))
또, 장 지사는 “우리가 어디 분단된 나라 얻을라고 독립 운동 했겠어요.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이 통일되면, 남한하고 북한하고 차별 없이 한 덩어리가 돼서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우리가 마음이 안 맞고 대립해서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생깁니다”라고 말해왔다.
장병하 지사는 지병으로 대구 달서구 상인동 자택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대구동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17일(금) 오전 7시 발인 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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